'여성 5인방'이 만든 교육용 보드게임 '호이호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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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00만 시대, 한국어가 어렵고 재미없게 느껴지시나요? "그건 교과서의 딱딱한 문어체 때문이죠"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를 신나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혈 여성 5인방이 뭉쳤다. 이들은 최근 초등학교 사회 과목과 보드게임을 결합한 '호이호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 왼쪽부터 배정선 대표와 이은정·류희주·배윤경 연구개발이사. 임경희 연구개발이사는 중국 현지 한국어 강의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 강원태 기자 wkang@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말보다 쓰기 및 읽기가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성 결혼이민자들도 마찬가지야.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 대부분은 너무 딱딱하니 흥미도가 떨어져." "이주 노동자들은 어떻고. 현실에서 쓰이는 '진짜'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데 정작 교과서에는 질리도록 쓰는 '문어체 말'만 있어 얼마나 불평한다고."

외국인 100만 시대. 이주민이 크게 늘면서 한국어 학습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지만 정작 이들이 재미있게 한국어를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이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여성 5인방이 뭉쳤다. 한국어 콘텐츠 업체 '한이재미'(www.hanijemi.com) 배정선(39) 대표와 이은정(39)·류희주(38)·임경희(37)·배윤경(36) 연구개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어 과정 다양하지 않아 불만

이들이 모인 계기는 남다르다. 이들 대부분 부산외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과정'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어 교사 2급 자격증을 습득했다. 이들은 부경대 언어교육원을 비롯해 중국 칭다오 등지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석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거나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만난 인연이 한데 모인 셈이다.

외국인 대상 한국어 강사 뭉쳐
콘텐츠 업체 '한이재미' 결성
정부 지원금 받고 개발 박차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입주
한국어 교육 메카 자리매김 포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들이 의기투합한 데는 한국어 학습이 재미가 없다는 데 있었다. 특히 다문화가정은 한국어가 서투른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쉽게 한국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복지관 등에서 한국어 강좌를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엄마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한국어에 어려움을 겪으니 자연스럽게 학교 성적이 나빠지고 결국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있었다.

배 대표는 "아이들은 물론 결혼 이민자인 엄마들도 제각기 한글 습득 수준이 다른데 학습 과정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다양한 욕구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1년여 자원봉사를 한 류 이사도 학습 과정의 단순화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발음과 듣기, 보고서 만들기 등 실용적인 과정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필요 없는데도 한국어 수업이 별로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TOPIK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봤다. 배우는 데 재미가 없으니 학습 성취도는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와함께 다문화가정에서도 자녀 성적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아이의 성적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대부분 어학 과정이 일회성에 그치는데다가 지원조차 미흡해 포기하는 사례를 많다는 것이다. 배 이사는 "각자 현장에서 느낀 한국어 지도 과정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한국어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자는 뜻에 한마음이 됐다"고 웃음지었다.

"직접 교육 프로그램 만들자" 의기투합

이들 5인방은 아예 직접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해 초 의기투합했다. 우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참고했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과목은 국어와 사회였다. 특히 사회 과목은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와 이해도가 한참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템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은 뒤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교과서 분석부터 나섰다. 교과서 내용을 철저히 파악한 이들은 곧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보드게임을 접목하면 학습이 보다 즐거워질 것 같았다. 서너 달에 걸친 연구 끝에 사회 과목과 인기 보드게임을 접목한 학습 아이템을 개발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각자 수백만 원씩 사업자금을 추렴했지만 아이템을 실제로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중기청 창업 맞춤형 지원사업에 도전했고, 지난해 6월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정부지원금 5천만 원이 생기자 개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 역시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특히 보드판을 영구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천을 사용했는데, 카드를 끼울 수 있는 자리를 비닐로 감싸려다보니 칸마다 일일이 손수 박음질을 해야 했던 게 가장 어려웠다. 난이도별 질문이 담긴 문제 카드를 만드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초에는 플라스틱 통에 종이카드를 끼우려고 했으나 규격에 맞는 틀을 제작하는 공장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종이카드 박스로 방향을 바꿨다. 배 대표는 "우리 생각을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장을 찾아내는 단계부터 힘들었다"면서도 "1년 가까이 노력한 끝에 물품이 만들어지고 특허도 출원해 대단히 뿌듯하다"며 기뻐했다.

다양한 한국어 학습법 개발 계획

이달 중순께 비로소 교육용 보드게임 '호이호이' 시제품을 완성해낸 이들은 이르면 오는 5~6월께 완성품을 판매한다는 목표로 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직책 가릴 것 없이 함께 일에 매달린다고 했다. 이달 초 블로그를 통해 모집한 체험단에게 보낼 시제품 200여 개를 온종일 함께 포장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달 초까지 체험단으로부터 각종 후기를 받아 언급된 문제점을 적극 수렴하기로 했다.

이들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이호이를 방과후교실에서 활용 교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알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인 호이호이를 시작으로 학년별 시리즈 보드게임 제작에도 곧 들어가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어 학습 동영상도 체계적으로 만들어 올릴 방침이다. 배 이사는 "한국어 학습 관련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어 스마트폰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한국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보다 많은 이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여성경제인협회 지원센터에 첫 둥지를 틀었던 이들은 올해 초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입주기업에 선정돼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더욱 투지가 불타올랐다. '한국어 교육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이들은 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많은 한국어 강사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석박사 과정을 밟은 고학력 소지자들이 대부분인 한국어 강사들의 경우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완성품 2천 개 생산이라는 목표가 소박할 수도 있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많은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명감으로 일하는 많은 한국어 강사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한 도약, 열심히 지켜봐 주세요!" 051-610-1235. 윤여진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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