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사투리 보존 사례] 제주 조례 이어 진주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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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남도 억양이 들릴 듯한 와보랑께박물관 마당의 사투리 현판. 와보랑께박물관 제공

지역언어 혹은 사투리의 보존 노력은 국내 여러 지자체와 프랑스 등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선 제주특별자치도는 2007년 9월 '제주어 보전 및 육성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언어를 보전하기 위해 제정한 첫 조례다. 2000년대 들어 '국제도시 제주' 논의가 영어 공용화 논란으로 번지면서 '영어〉표준어〉제주어'의 언어 위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제주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사투리 연구와 심포지엄 등으로 확산되다 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조례는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도민의 문화 정체성과 관련 있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는 전래 언어'를 '제주어'로 명명했다. 또 조례에 따라 제주어보전육성위원회와 제주어연구소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이 조례에는 언어 간 자유경쟁 체제 속에서는 지역언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이 담보되기 어려우므로, 보호·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광안리 수영구문화센터 벽면 장식
프랑스, 7개 지역 언어 공인 사용


제주도의 이런 분위기는 경남 진주시에도 번졌다. '니가 글쿵께 나도 글쿠제'처럼 서부경남 전래언어도 난해한 사투리로 평가받는다. 2011년 8월 진주시의회가 진주 사투리 보존을 위한 조례안을 발의하자 진주시는 조례를 제정하지 않더라도 보존이 가능하다며 행정력 낭비를 우려했다. 진주시 허종현 기획계장은 14일 "현재는 시의회가 심의를 보류해 둔 상태로 지금까지 후속 논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누비는 이방인에 대한 불만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경남 통영시 동피랑마을 사투리 간판. 부산일보DB
제도적 지역언어 보장까지 나아가진 못했지만 지역언어가 관광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부산 수영구는 대표적 관광지인 광안리의 수영구문화센터 벽면을 사투리로 장식하고 있다.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 이진경 작가가 출품한 '부산갈매기가 그냥 갈매긴줄 아나?'를 기증받고, 몇 가지 사투리를 더해 40여 개의 문장을 내걸고 있다. 수영구 관계자는 "외지 관광객들이 문화센터 사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재미있어 한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군에는 '와보랑께 박물관'이 있다. 이 지역 출신으로 제주와 부산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향한 김성우(66) 씨가 2000년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지역 토속품을 모아 박물관을 열면서 사투리를 끼워 넣었다. 박물관에는 김 씨가 직접 채록한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 책이 있고, 건물 주변에는 사투리 문장을 정겹게 써 놓은 나무 표지판도 걸려 있다. 김 씨는 "오시는 분들이 민속품보다 사투리를 더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외지 관광객이 늘자 2010년 박물관 건물을 증축할 때 강진군이 2억 원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프랑스에선 언어와 정치지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문화 다양성 보장의 선례를 만들었다. 20개 언어가 사용되는 다언어국가인 프랑스는 7개의 지역언어가 공인돼 공용어인 불어와 함께 사용된다. 이 가운데 켈트어군에 속하면서 불어와 전혀 다른 체계를 갖고 있는 브르타뉴어는 가장 성공적인 지역언어 보존사례로 꼽힌다.

이 지역에서는 70여 년 전부터 지역 문화분권 운동의 중요한 목표로 지역언어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뤘다. 민간단체 주도로 교육기관 설립과 교육과정 확대를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결국 지역언어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

미국 주도의 획일적 세계 정치·경제질서에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 프랑스가 대외적으로 문화 다양성을 표방했기 때문에 국내 언어환경의 다양성 보장이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호진 기자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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