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서울말 들었을 땐 '어느 정도 상류층?'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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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학교의 사용 실태

2011년 11월 부경대 '표준어 구사능력 향상과정'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하며 부산 사투리를 표준어(서울말)로 교정하고 있다. 부경대 제공

부산 사투리는 부산에서 어느 정도 사용되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젊은 엄마들이 많이 찾는 백화점 일대와 신세대들로 붐비는 대학가, 미래 부산 사투리 사용 세대가 모인 초등학교를 찾아 실태를 짚어 보고 속내도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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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서울말을 들었을 때 느낌이요? 아, 저 사람은 서울물 좀 먹은 사람이구나. 즉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아니면 서울에 있는 직장(대개는 대기업)에 다니다(본인 혹은 남편이) 왔거나, 서울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계층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상류층에 속한다는 느낌?"

지난 8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에서 만난 주부 김효은(35) 씨는 같은 문화센터 강좌를 듣는 다른 엄마들의 말씨를 잣대로 계층 구분 짓기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서울말, 서울 소재 대학… 한국에서 서울이 표상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정도 상류층을 의미하잖아요, 특히나 지방에서는."

이 때문에 베이비시터를 구할 때도 아이가 서울말을 배울 수 있도록, '이왕이면' 서울 사람을 구했으면 좋겠다는 게 요즘 엄마들의 바람이다.


베이비시터 서울 사람 선호
서울 출신 교사 학부모에 인기
센텀 초등생은 서울말 통용
취업 면접 사투리 쓰면 불리
사투리 교정 클리닉반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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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인 송진경(41·가명) 씨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재미로라도 부산 사투리를 쓸라치면 바로 아이를 꾸짖는다. 서울 출신인 남편의 영향을 받아 송 씨 또한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고 있는데 아이가 어디선가 투박한 말투를 배워 말하는 게 영 못마땅해서다. 송 씨는 딸아이가 사투리를 써도 "넌 예쁜 얘가 왜 그렇게 사투리를 써"라며 바로잡아 준다.

송 씨는 어려서부터 '교양 있는' 말투를 익히는 것이 아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송 씨는 "언어를 꼭 지역적 조건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 마냥 수동적으로 따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혹시나 서울말을 쓴다고 친구들이 따돌리거나 놀리지 않느냐고 묻자, 송 씨가 대답했다. "요즘 센텀초등 다니는 얘들 중에 사투리 쓰는 얘들 거의 없어요."

서울 태생인 센텀초등 학부모 정소정(32) 씨는 "학부모 중에 오히려 부산 분들이 저보다 더 서울말을 잘 쓰시는 것 같다"면서 "그분들의 경우 본인은 물론 자녀들도 서울말 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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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5일 오후 해운대 센텀초등 앞. "너 와이파이 아니야?", "나는 안 사 줘?" 보통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이라면 "야, 니 와이파이 아니가"가 자연스러웠을 테지만 아이들의 언어는 '니'가 아닌 '너'로 바뀌어 있었고 끝말 억양은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학교 앞에서 만난 윤호준(10) 군은 "학교 안에서 친구들과 얘기할 때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제부터냐고요? 그냥 태어날 때부터요." 언제부터 서울말을 썼는지, 누구에게서 배운 말인지를 묻자 전예림(8) 양은 "그냥 처음부터"라고 대답했다. 해운대 해강초등 앞에서 만난 장지영(8) 양은 "주로 기분이 좋거나 설명을 할 때는 서울말을 쓰고 화날 때는 사투리를 쓴다"고 말했다.

해원초등 정문수 교감은 "학부모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교사는 서울 출신 교사"라면서 "공개 수업을 하면 서울말을 쓰는 교사는 수업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실에서도 서울말을 쓰는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는 것처럼 인식된다"고 말했다. 정 교감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만난 교사들 상당수는 본보 기획기사의 취지와 사투리 보전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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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현장에서는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지역 대학인 부경대, 동아대 등에서는 사투리 교정 클리닉반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동아대의 경우 지난달 8일부터 3주 과정으로 사투리 교정 클리닉반을 운영했고, 부경대도 지난 2011년 표준어 구사능력 향상과정을 3기까지 진행했다.

사투리 교정 강좌를 수강한 여대생 진민주(20·동아대 2년) 씨는 "선배들 얘기론 취업 면접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투리를 쓰면 옆 사람들이 웃어버려 부산 출신들은 위축되는 반면 다른 경쟁자들은 오히려 긴장을 풀고 더 실력 발휘를 해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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