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사진의 대가 최민식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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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8시 40분, 생애 마지막 찰나. 사진가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라 불리며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 주었던 그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사진) 씨가 부산 남구 대연동 자택에서 85년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 속에 다시 출사 길에 오른 것이다. 대한민국 사진계의 큰 별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12일 오전 별세·향년 85세
사진집 '인간' 14권까지 내
소외된 사람 담기에 주력
15일 대연성당서 장례미사

고인은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학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며 끝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10월 노환으로 몸져누운 뒤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의 외동딸은 "아버지가 지난해 과로를 하신 것 같다. 사진 하느라 늘 미안해 하시면서 평생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인자한 분이셨다"고 눈물지었다.

최민식은 1928년 3월 황해도 연백군 연안의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자동차 기능공으로 일하다가 화가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1957년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을 다니던 그는 헌책방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편집한 사진집 '인간가족'과 마주한다. 그는 "온몸이 감전된 듯한 감동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사진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최민식은 부산에 돌아와 독학으로 사진을 익혔다.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밤낮없이 시장통이며, 골목을 누비었다.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1967년 영국 사진연감에 스타 사진가로 선정돼 작품이 게재되면서 '제대로 스냅숏을 하는 인물 사진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최민식의 렌즈는 늘 가난한 자와 아픈 자, 소외된 이들에게 향했다. 흑백 사진의 주인공은 '자갈치 아지매'부터 거리의 아이들, 비린내 나는 손을 뒤로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 등 늘 우리 곁의 '아웃사이더'였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얼굴이 너무 알려져 변장을 하고 셔터를 누르기도 했고, '거지 사진'을 찍고 다닌다는 이유로 수도 없이 끌려갔다. 뷰파인더에 정신없이 '인간'을 담다가 자갈치에서 구포까지 걷기 일쑤였다.

사진을 제외한, 최민식의 유일한 즐거움은 베토벤을 듣고 느끼는 것이었다. 강의에서든 사석에서든 "귀 멀고 어려운 상황에서 위대한 예술혼을 탄생시켰다"고 베토벤을 극찬했다. 직접 베토벤을 그려 놓기도 했다.

최민식의 '부산, 1985'(사진 왼쪽)와 '부산, 2003'. 작가는 부산 중구 남포동 부산극장 앞길에서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청년이 부산일보를 팔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부산, 1985'를 2007년 1월 부산일보사에 기증했다. 부산일보 DB

최민식은 그렇게 55년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작품을 쏟아 내며 사진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14권에 달하는 사진집 'HUMAN(인간)'과 저서 20여 권을 세상에 남겼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해외 개인 초청전을 15차례 열었고, 한국사진문화상(1974년)과 문화훈장(2000년)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가 마지막까지 손질한 15번째 사진집 '인간'이 곧 유작으로 출판된다.

그는 2007년 부산시립미술관에 사진 70점을 기증했고, 국가기록원에도 필름과 작품, 카메라 등 13만 점을 기증했다. 국가기록원은 나머지 유품과 기록물을 모두 보관할 예정이며, 그를 '민간기증 국가기록물 1호'로 지정했다.

사진집 '인간'의 서문에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 작가정신이며, 가난한 사람들…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다. 나의 사진은 가슴 저미는 향기가 묻어나는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이다"라고 썼다.

평소 고인과 진솔한 교분을 나누던 예술계와 종교계 인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채희완 교수는 "진실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선생은 늘 이야기하셨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5월 본보의 심층인터뷰 '人+間' 취재진에게 그는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평화와 행복, 사랑을 위해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어. 난 요즘도 매일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 길을 걸어."

유족으로는 부인과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남구 용호동 부산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15일 오전 6시 30분 대연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른 뒤 경북 국립영천호국원에서 영면한다. 051-933-7485.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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