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부산 등대] 6. 다대포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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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목소리까지 큰 '多大 등대' 밤바다 찾은 사람 눈빛마저 맑게 만들어

다대포등대는 다른 방파제 등대보다 부지런하다. 사람도, 배도 분주히 불러들이고 내보낸다. '많고 크다'는 '다대'에 있어서일까. 고혹적인 붉은 등대 외관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등불도 8초에 세 번이나 깜빡여 앞바다를 오가는 고기잡이배며 낚싯배를 들고나게 한다. 사진=박정화 사진가

많고 크다, 다대

다대포등대는

말 많고

큰소리 내는 등대

했던 말 또 한다

다대포등대가 하는 말은

눈으로 듣는 등대

듣고 있으면

눈이 다 멍하다

넘어가는 해가

등대에게 붙잡혀

들은 말 또 듣고 있다

등대 꼭대기에 딱 걸려

등불이 되었다

-동길산 시 '다대포등대'



등대는 외골수다. 고집불통이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누가 듣든 듣지 않든 속에 담아 둔 말을 하고 또 한다. 지치기도 하련만 눈치가 보이기도 하련만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다. 저런 고집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내가 하는 말이 옳고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르다는 자신감. 자신감이 있기에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등대가 하는 말은 질리지 않는다. 듣고 또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 등대가 하는 말은 누구를 다치게 하는 말이 아니라서 누구를 헐뜯는 말이 아니라서 듣기가 편하다. 말은 적어도 말만 꺼내면 누구를 다치게 하고 누구를 헐뜯는 사람에 비하면 등대는 오히려 과묵한 편이다. 오히려 말이 없는 편이다.

눈빛을 보면 진정성이 담긴 말인지 아닌지 안다. 진성성이 담긴 눈빛은 맑고 깊다. 상대까지 맑고 깊게 한다. 등대 눈빛은 등불. 맑고 깊은 등불이고 진정성이 담긴 등불이다. 등불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등대를 닮는다. 그래서 밤배의 눈빛이 맑고 깊다. 그래서 밤바다를 찾은 사람의 눈빛이 맑고 깊다.

다대포등대도 말 많은 등대. 말 많고 목소리 큰 등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책잡지 않는다. 꼬투리 잡지 않는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진정성이 담긴 까닭이다. 그 진정성에 이끌려 낚시꾼이 찾아오고 그 진정성에 이끌려 넘어가는 해가 등대 꼭대기 머물다 간다. 등대 꼭대기 머물며 등불이 된다.

"낱개라서 낫개 아입니까." 다대포등대 가는 길, 방파제 입구에 낚싯배 매표소 컨테이너가 보인다. 여기서 배를 타면 나무섬 형제섬 외섬으로 간다. 매표소 이름은 낫개낚시터선착장. 매표소에 들앉은 사람에게 왜 낫개냐고 묻자 저기 저쪽 다대포구에서 낱개로 떨어져 나온 포구라서 그렇단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이길우(58) 씨다. 낚시꾼을 태우고 다니는 은성호 선장이다.

등대는 방파제 끝자락에 있다. 붉은 등대다. 흰 등대가 있는 반대쪽 방파제는 다가가기 난망할 만큼 멀다. 등대 명칭은 다대포어항 방파제등대. 1997년 12월 19일 첫 점등했으며 홍등이 8초에 세 번 깜박인다. 해도 표기는 Fl(3)R8s다. 방파제등대가 대개 5초에 한 번, 6초에 한 번 깜박이는 걸 감안하면 깜박이는 횟수가 잦다. 다른 등대보다 두 배 세 배는 말이 많다. 참고로 영도등대는 18초에 3번을 깜박인다.

등대로 가려면 파래 내음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방파제 여기저기 널브러진 밧줄에 달라붙은 파래가 후유후유 내뿜는 내음이 발걸음을 착착 감는다. 지금은 한창 파래철. 낙동강 민물과 태평양 바닷물이 교차하는 이 일대 파래는 최상품으로 꼽힌다. 다대포 앞바다에 그물을 띄우고 양식한다. 방파제 널브러진 밧줄이 파래 양식용 밧줄이다.

등대는 고혹하다. 립스틱 짙게 바른 듯 붉고 진한 맵시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선뜻 안아 보기는 좀 그렇다. 안아 보려다 안길 것 같고 안기면 숨이 탁 막힐 것 같다. 얼굴은 고혹한데 몸피가 육중한 이국 여인을 대하는 느낌이다. 등탑은 2층 구조다. 철제 출입문이 1층에도 있고 2층에도 있다. 1층 출입문을 열어 2층으로 올라가고 2층 출입문을 열어 등롱으로 들어간다.

등롱은 지난주에 언급했다시피 등이 있는 곳. 어두워지면 빛을 내보내는 등명기가 등롱 안에 있다. 다대포등대 등롱에는 등만 들앉은 게 아니다. 지는 해도 등롱에 들앉았다가 빠져나간다. 등대에 불이 들어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 그 틈을 타 지는 해가 등불 노릇을 한다. 태양열 충전기가 해 지는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서 있다.

바다는 바쁘다. 배가 연이어 다닌다. 방파제 이쪽으로 오는 배는 대부분 낚싯배. 주말이라 낚시꾼도 많고 낚싯배도 많다. 특수임무유공자회 재난구조단 배도 보인다. 방파제 저쪽으로 가는 배는 다대포로 가는 배. 다대포는 기장 대변과 함께 국가에서 관리하는 어항이다. 국가 어항답게 규모가 크고 들고나는 배가 많다.

다대포라고 하면 딱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애매하다. 그만큼 다대포는 범위가 넓다. 해수욕장도 다대포고 몰운대도 다대포고 섶다리 개펄도 다대포다. 방파제 저쪽으로 가는 배는 다대포 어항으로 가는 배. 다대포 어항은 어딜까. 수협 뒤 수산시장 겸 포구가 다대포 어항이다. 자갈치보다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봄 도다리 여름 농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 등등.

"호롱불이 들어온 것 같네요." 지는 해가 등롱에 쏙 들어간 등대를 배경으로 중년 부부가 서자 박정화 사진가가 셔터를 누른다. 중년 부부 부인과 박 사진가는 부민초등학교 동창이다. 등대 배경 부부 사진은 처음이라며 이혜영 동창이 낯을 붉힌다. 남편 박영택 씨는 시적이다. 해를 호롱불로 읽어내는 시선이 온화하다. 거제 삼성중공업 출신이라 등대 왼편에 보이는 조선소 육중한 구조물이 골리아스 크레인인 것도 알고 그게 무엇을 하는 건지도 안다.

방파제 낚시꾼이 잡아내는 고기는 농어. 연거푸 두 마리를 잡아낸다. 두 마리 다 새끼다. 방파제 담벼락은 온통 전화번호. 낚시꾼이 전화를 걸면 짜장면도 갖다 주고 치킨도 갖다 주고 왕족발도 갖다 준다. 나도 번호 하나쯤은 남겨 두고 가야겠다.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나를 부를 수 있는 전화. 아무나 걸면 안 되니 번호는 암호로 해 두자. 등대만이 알아보는 번호. 지는 해만이 알아보는 번호. 가는 길. 다대현대아파트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아파트 샛길로 내려가면 된다. 동길산·시인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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