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감정위원 "100년 안 된 위작" 일본 통보 받고 부랴부랴 경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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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난 국보급 불상 부산항 무사 통관 파장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국보급 불상들이 부산항을 통해 국내 지하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었던 내막에는 문화재청의 허술하고 비전문적인 감정 행태가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 한반도-일본 쓰시마
교류 보여주는 대표 유물

공항·항만 문화재 감정
비전문성·허점 그대로 노출

△불상의 가치=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쯤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조여래입상(높이 45㎝ 가량)은 1974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역시 일본의 중요문화재인 관음보살좌상(높이 60㎝ 가량)은 고려시대 말인 1330년에 제작된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껏 소장돼왔다. 이들 불상이 전래됐는지, 아니면 약탈 또는 거래로 반출됐는지 정확한 경로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반도와 쓰시마가 고대시대부터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불상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고 입을 모은다. 불상 전문가인 동아대박물관 정은우 관장은 "좌상의 경우 불상 안 복장유물에서 나온 발원문에는 불상 제작년도를 알려주는 연호와 함께 불상이 봉안됐던 서산의 옛 지명이 그대로 표기돼 있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불교미술의 한 전문가는 "동조여래입상은 당시 유행했던 여래입상 중 수작으로 크기가 다소 커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도 좋아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동조여래입상의 경우 일본에서 1974년 감정액이 1억엔으로 책정된 만큼 두 불상의 현재 국내 감정액은 최소 10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어떻게 반입됐나=쓰시마에서 불상을 훔친 절도단은 후쿠오카를 거쳐 발빠르게 불상의 국내 반입을 시도했다.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도난 사건 당일 오후 6시께 일본 후쿠오카에서 부산항으로 입국한 손 모(61) 씨는 두 불상을 가방에 넣어오다 X-Ray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세관은 철제 불상들을 적발해 손 씨를 휴대물품 검사대상자로 분류됐다. 세관은 곧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에 감정을 의뢰했다. 문화재감정관실은 "제작된 지 100년 이하의 위작"이라고 세관에 통보했다. 이에 세관은 두 불상의 현장 반출을 허락했다.

당시 감정을 맡았던 감정위원은 "100년 이상 됐는지 그 이하의 물품인지만 감정해 과세 기준을 세관에 통보할 뿐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에 따라 해당 물품이 문화재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며 "당시 불상에 흙이 상당히 많이 묻어 있었고 위작처럼 보였고 일본에서도 무사히 통관돼 들어온 것이어서 문화재라고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관계자는 "반입 과정에 대해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로 유입된 불상들은 현재 지하 암시장에서 은밀한 거래를 준비 중이다. 절도단이 서울의 골동품상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장물로 비싼 값을 받지 못할 것을 감안해 숨겨뒀다 유통시킬 여지도 충분하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 절도와 유통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10년으로 두고 있다.

△문제는 없나=문화재감정관실이 최고 가치를 지닌 두 불상을 눈 앞에서 보고도 문화재인지 판별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한 문화재 감정 전문가는 "우선 국보급 문화재 밀반출을 막지 못한 일본의 책임이 가장 크다"면서도 "그러나 불교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우리 선조의 불상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 것은 문화재 감정의 전문성 결여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망신 사례"라고 지적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감정위원이 불교미술을 전공하지 않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판단했다면 문화재청 자체 화상화면을 활용해 감정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일부 문화재 감정위원들이 문화재 밀반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서 제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밀반출은 엄격한 검사와 감정으로 사전에 차단해야 하지만 문화재 반입에 대해서는 여느 나라처럼 우리도 문호를 열어두고 있다. 반입 물품을 감정하는 주목적은 제작된 지 100년 이상인지 가려내 관세 부과 대상인지 아닌지를 세관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성 기자 n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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