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지리산 자락, 소리가 자라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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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매화정국악연수원에서 '꿈나무 명창'들이 판소리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훅 불면 날아갈 듯이 여리고 자그마한 아이가 부채를 펴 든다.

"아아아~으으으~/았다 내 배 갈라라/나 였다 배 갈라라/똥 밖에는 든 것 없다/내 배를 갈라 니 보아라~."

'수궁가 중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을 듣다가 갑자기 고막이 '쩡'했다. 청송 주왕산 주산지 한 자 두께 얼음이 우는 것인 양 힘찬 소리 한 줄기가 온몸을 후벼팠다.

키 144㎝. 몸무게 고작 28㎏의 작은 체구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김나윤(12·산청 신안초교 5년) 양의 상청이었다.

박추자 명창 운영하는 '매화정국악연수원'
방학 맞이해 학생 20여 명 합숙하며 '열공'
전라도 아닌 경상도서 영그는 '판소리' 꿈



■ 경남 산청에 둥지 튼 동편제


방학을 맞아 국악연수원에서 합숙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김병집 기자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 시골 초등학교 여학생이 전국 어린이 판소리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고 했다. 전라도도 아닌 경상도 산골짜기에서 웬 판소리? 궁금증을 못 이겨 찾아간 곳은 매화정국악연수원.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합숙을 하며 소리공부를 하고 있다.

일곱 살짜리 서희부터 고등학생 수지까지 스무 명이 넘는 어린 소리꾼들이 판소리 5마당과 거문고, 가야금, 북장단을 스승인 박추자(60·여) 명창에게 배우고 있다.

나윤이는 지난해 11월 전북 고창의 동리국악당에서 열린 전국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보다 앞선 8월엔 어른도 하기 어려운 수궁가 완창을 서울국립국악원에서 해냈다. 무려 3시간이 걸렸다.

나윤이에게 물었다. "그 긴 이야기를 어떻게 다 외웠지?" 나윤이가 말했다. "음률을 익히면 외워져요."

매화정에는 나윤이 말고도 판소리를 제대로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

중학교 1학년 유시은(14)은 태어날 때부터 소리하기 좋은 탁성을 타고 났다. 응애응애 하는 울음소리부터 그랬단다. 박 명창은 "시은이의 탁성은 상청과 하청을 모두 잘 맛보게 하는 소리"라고 칭찬했다. 시은이는 수궁가 완창은 물론, 지난해 보성서편제 소리축제에서 중등부 대상을 차지한 꿈나무 명창이다. 당시 고등부 대상을 차지한 경남예고 정서희도 박 명창의 제자다.

시은이는 "아이돌 노래는 재미 없어요. 우리 소리가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꾸며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 명창은 "거제에 사는 이해인(신현중 2년)도 무용을 하다가 구음의 매력에 빠져 소리를 배운 지 두 달이 되었고, 김은서(산청중 2년)는 소심한 성격이 발랄해졌다"고 제자 자랑을 했다.

조선 철종 때 어전명창(임금 앞에서 소리하는 명창)이던 송흥록의 동편제 수궁가를 박양덕 명창으로부터 전승한 전남 고흥 출신의 박 명창은 "판소리는 계명으로 치면 하나의 음에서 세 음이나 나올 만큼 깊은 음"이라고 했다. 때론 아랫배에서 나는 깊은 소리를 뽑기 위해 제자들의 배에 띠를 묶고 훈련을 하기도 한다.

박 명창은 "영·호남의 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한이 웅숭깊은 우리 소리를 제대로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소리를 제대로 배워 장차 자기만의 득음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판소리에는 애절한 인생이 담겨

국악연수원에서는 판소리 뿐만아니라 북과 가야금, 민요 등 국악을 함께 배운다. 김병집 기자
전라도 출신의 박 명창은 일곱 살에 소리를 처음 접했다. 소리를 정식으로 배우던 여섯 살 위 언니를 따라 귀동냥을 했는데 저도 소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배웠다. 14살이 되던 해엔 언니를 따라 서울로 갔다.

산청 출신으로 국악예술학교 교장을 지낸 국악인 기산 박헌봉 선생이 운영하던 국악학교에 언니가 입학했다. 어머니는 '너도 여기서 살아라'며 낯선 정릉 땅에 박 명창까지 떼 놓고 갔다. 울며 뒤쫓아 가는 어린 딸에게 어머니는 흙을 뿌렸다. 그렇게 국악학교에서 허드렛일도 하며 소리를 곁눈질했다. 기산 선생이 어여삐 여겨 가끔 소리 공부를 시켜 주었다. 그 인연이 박 명창을 산청에서 뿌리내리게 했다.

박 명창은 지난 2003년 제30회 춘향 국악대전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명창은 자타가 인정해야 주어지는 칭호로 전국 규모의 공인된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야만 붙일 수 있다.

대상을 받은 이듬해 진주에서 산청군 단성면 길리 매화정 인근 마을에 자리를 잡은 박 명창은 영남의 판소리 꿈나무들을 키우고 있다.

박 명창의 인생은 어찌 보면 아프다. 서울서 만나 결혼한 장교 출신의 신랑은 겨우 39세이던 자신을 두고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이후 부산에 내려와 살다 진주로 적을 옮겨 소리에만 의지했다. 진주에는 아직 그의 국악학원이 있다. 지금까지 길러낸 제자만 800여 명. 잘 배운 제자들은 각종 판소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스승에게 보답하고 있다. 아이들은 2010년에만 전국 소리대회에 나가 27회의 상을 받는 등 해마다 20회 이상의 상을 스승에게 안겨주고 있다.

박 명창은 "산청 원지에서 주말이면 아이들이 소리를 배우러 오는데 부모들에게 자가용을 태워 주지 말라고 했다"며 "버스를 타고 마을 앞에서 내려 고갯길을 넘어오며 강아지 이름도 부르고 풀이름도 새기는 게 다 소리 공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리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인성이 먼저이기에 그렇다. 박 명창은 주말이면 아이들과 메주도 밟고 감도 따고, 여름에는 논에 물도 대면서 사시사철 소리와 삶을 같이 배우고 또 가르친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인 박성희 명창은 "판소리 이론을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도 광대의 제1 조건을 '인물새'로 꼽았다"며 이는 소리를 잘하려면 행실이 반듯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판소리에는 전설이 흐른다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살아있는 예술인 판소리에는 들어보면 신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동편제 명창 송흥록이 진주 촉석루에서 춘향가 중 옥중가를 부르는 데 귀곡성을 내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촛불이 꺼지면서 귀신 우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 왔다고 한다. 송흥록은 경상도 장단인 '메나리조'를 전라도 민요에 접목하기도 했다. 박기홍 명창은 조선 고종 때 사람으로 함양·진주, 경북 청송 등지에서 살았다. 적벽가를 잘 불렀다. 당시 경북 선산군수가 인사를 오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아 박기홍에게 소리를 시켰다. 관운장의 호통 대목을 듣던 군수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져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비롭고 기이할 뿐 아니라 판소리에는 삶이 녹아 있다.

박성희 명창은 "제비 몰러 나간다~란 광고로 잘 알려진 박동진 명창은 살아 생전 15분 소리를 하시면 10분은 그 자리에 올 때의 풍경이라든지 있었던 일들을 엮어 재담을 하셨다"며 판소리의 생명력은 '현재성'에 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소리판이라고 했다.

귀명창(좋은 판소리를 가릴 줄 아는 '듣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기로 이름난 대구·경북 지방에서 유독 판소리가 성행했던 것은 판소리의 전국화를 말해 준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일종의 판소리 등용문이었고 내로라하는 전국의 소리꾼들은 이곳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송흥록도 애초 이 무대에 섰다가 핀잔을 받고 나중에 더욱 정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득음의 경지를 '한을 뛰어넘는 소리'로 전한다. 광대 유봉은 딸 송화에게 '서편제와 동편제를 넘어서는 소리를 하라'고 말했다.

한국의 소리는 명창으로부터 명창에게 이어진다. 어느 명창이 자기만의 특징적인 소리를 완성하는 것을 '더늠'이라고 하고 어떤 명창이 제대로 짠 판소리 한 마당 전부를 '바디'라고 한다. 그래서 누구의 제자라는 표현을 달리하면 '명창 누구의 바디를 물려받았다'고 표현한다.

한국의 판소리는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 하며 더늠이 생기고 바디가 만들어지고 있다. 경상도사투리 영남판소리 바디도,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바디, 대중적인 K팝 같은 바디의 탄생도 말도 아닌 게 아니라 가능한 미래다. 판소리는 살아 있고, 꿈나무 명창들은 판소리와 더불어 무럭무럭 자란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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