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 이젠 꿈 깨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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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리처드 하인버그

문전성시를 이룬 '2012 연제구 취업박람회' 모습. 부산일보 DB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세계는 주기적으로 경제 공황을 경험했지만, 다시 일어서곤 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시작됐고 각국은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회복될 것으로 여긴다.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예전 같이 극복하리라 믿는다.

이런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책이 나왔다. 바로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라는 저서다. 탈탄소연구소 수석 연구원인 저자는 서문에서 단호하게 밝힌다.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 아니, 결딴났다.' 현재 경제 위기는 이겨낼지 몰라도 조만간 성장이 멈추는 시점이 올 것이란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위기 불러
석유 고갈도 성장 발목
광물·식량·물도 바닥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 결속 필요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리처드 하인버그
충격적인 발언인데, 저자는 조목조목 근거를 댄다. 그는 '세계 경제 위기'라는 광풍을 몰고 온 주범으로 부동산 거품을 지목한다. 이는 곧 신용 거품이란다. 현대인은 '부동산 불패'를 믿는 경우가 많다. 값이 뛸 것을 예상하고 돈을 빌려 주택이나 땅을 산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는 사람이 늘면 부동산 가격은 치솟는다. 구매자가 몰리고, 결국 자신의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한다.

문제는 이게 허상이라는 데 있다. 이자나 원금 상환 능력이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부동산을 팔 수밖에 없다. 매물은 많아지고, 부동산 가격은 내려간다. 이때 거품이 빠진다. 개인이 갚지 못한 부채는 금융권이 감당해야 하는데, 사회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개인 형편이 나빠지면서 소비가 줄고, 이는 경기 침체로 연결된다.

저자는 "국가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며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실제 사례를 제시한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1조 달러 정도를 퍼부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세금을 환급하고 해고를 막으려고 자금을 투입했지만, 기업과 가계 부채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구잡이로 예산을 투입할 수도 없다. 잘못하면 국가 부도로 이어져서다.

이쯤에서 저자는 금융 문제만 해결되면 경제는 성장할까, 라고 자문한다. 대답은 모두 예상하듯 '아니오'다.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축인 자원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 성장은 값싼 석유 득을 본 게 사실이다. 한데 석유는 이제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저자는 실제 예를 내놓는다. 미국, 인도네시아, 노르웨이의 석유 생산량은 줄었다. 대규모 유전은 점차 없어지고, 최근 발견된 유전은 소규모이거나 개발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뿐이다. 유전 발견 건수도 매년 감소하는 실정이다.

저자는 석유 고갈이 세계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한국 같은 석유 수입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석유 생산국이 자국 소비를 우선할 게 분명해서다. 수출용 석유 생산량이 급감하면 유가가 폭등할 건, 뻔한 일이다. 석탄과 천연가스가 어느 정도 석유를 대체하겠지만, 역시 유한 자원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낙관론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체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이에 대한 답변을 탈탄소연구소와 세계화국제포럼이 내놓았다. 두 단체는 지난 2009년 18가지 에너지원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이렇다. '대체 에너지원이 화석연료의 고갈을 완전히 상쇄할 어떤 시나리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저자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광물과 식량, 물 부족 현상도 세계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광물은 산업 경제의 토대를 이루고 물과 식량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결핍되면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증가하는 폐기물도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사실도 장기적으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해서 경제 성장이 멈추면 기존 금융 시스템 붕괴, 경제적 사회적 자유 침해, 세대 갈등, 부의 불평등 심화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저자는 예상한다.

저자는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저자의 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성장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는 성장 이후의 삶을 지탱할 새로운 시스템을 곰곰이 살펴본다.

부채와 자산을 일정하게 감축하는 방안, 대안 화폐 운동,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잣대인 GDP(국내총생산)를 대신할 국민총행복 도입 등을 검토한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역 차원의 공동체 결속력'이다. 성장 이후 세계를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 지금부터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야 앞으로 삶을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낫게' 꾸릴 수 있다.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노승영 옮김/부키/448쪽/1만 7천 원.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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