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부산 등대] 3. 민락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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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삐끗대는 바다, 눈빛과 소리로 흔들리는 쪽배 이끌어

민락등대(아래 사진)에서 바라본 광안리 앞바다. 맑은 날에는 광안대교와 주변 정경이 뚜렷하지만 비가 잦아 안개 짙은 봄이나 여름엔 광안대교 상판은 물론이고 주탑조차 안 보인다. 그래서 민락등대는 소리로 배를 인도하는 등대다. 사진=박정화 사진가

후 불어 안개를 걷어내면

당신과 나 사이

눈빛이 닿을 만큼 가깝다

당신에게 이르는 길

멀어서 먼 게 아니라

안개에 가려서 멀고

보이지 않아서 멀다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미워하며

당신과 나를 가로막는 안개

내가 불어대는 입김은

당신에게 내미는 손

더 늦기 전에

오해도 풀고 미움도 풀자며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동길산 시 '민락등대'


등대는 소리다. 안개를 가르는 소리다. 안개를 가르고 길을 내는 소리다. 등대가 터 준 길을 따라 배는 나아가고 마침내 궁극에 다다른다. 들짐승이 소리 내어 새끼를 품으로 불러들이듯 등대는 소리 내어 배를 궁극으로 불러들인다. 등대가 내는 소리엔 어미의 심정이 담겨 있다.

바다의 안개는 불협화음. 수온과 기온이 온도 차가 나면서 안개는 생긴다. 수온과 기온이 삐끗대면서 안개는 생긴다. 누가 봐도 표 나게 삐끗대면 안개는 진하고 표 나지 않게 삐끗대면 연하다. 걷어 내고 걷어 내도 갈 길을 가로막는 안개. 바다에서 안개는 낭만이 아니라 길을 막는 낭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안개가 생긴다. 때로는 진하고 때로는 연한 안개가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안개는 오해로 삐끗대면서 생기고 미워 삐끗대면서 생긴다. 안개에 갇혀 보면 안다. 얼마나 막막한지. 사람을 얼마나 처지게 하는지. 더 막막하기 전에 더 처지기 전에 누구는 손을 휘저어 안개를 걷어 내고 누구는 입김을 불어 걷어 낸다.

민락항 방파제등대는 소리를 내는 등대다. 소리를 내어 배를 불러들이는 등대다. 소리를 내는 이유는 여기 바다가 자주 삐끗대기 때문. 민락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산 이름이 백산인 것도 안개 탓이다. 안개가 끼여 늘 뿌옇다고 흰 백(白) 백산이다. 부산MBC 뒷산이다.

"광안대교 주탑도 안 보입니다." 등대 초입 부산해경 민락파출소에서 광안대교까지 거리는 900m 남짓. 주탑은 대교에서 가장 높이 치솟은 첨탑이라 몇 킬로 밖에서도 보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비가 잦아 안개 짙은 봄이나 여름엔 대교 상판은 물론이고 주탑조차 안 보인다는 게 민락파출소 김민식 경사의 전언이다. 안개는 주로 이른 아침에 낀다고 한다.

민락항 방파제등대로 가는 길. 여느 방파제등대처럼 붉은 등대가 왼편이고 흰 등대가 오른편이다. 김 경사가 보여 준 해도엔 각각 Fl(2)R6s5M, Fl(2)G6s5M으로 표기돼 있다. 붉은 등대에선 홍등이, 흰 등대에선 녹등이 6초에 두 번 깜박이며 광달거리는 5마일이란 뜻이다. 김 경사는 이 부근에서 14년을 산 반 토박이. 모르는 데가 없다. MBC 뒷산이 백산인 것도 알고 놀이시설 미월드 언덕이 점이대인 것도 안다.

파출소에서 나와 직진하면 붉은 등대 방파제다. 방파제 입구 전광판 자막이 주말의 명화 명대사처럼 인상적이다. '바다에서 사고 나면 122. 1 한 번, 2 두 번.' 방파제는 길고 열 몇 걸음마다 난간에 달린 표지판이 추락 위험을 경고한다. '삼발이'라 부르는 테트라포드를 겹겹이 쌓고서 지은 방파제라 난간 아래가 아찔하다. 삼발이를 딛고 챔질하는 낚시꾼도 아찔해 보인다.

"아빠! 몇 마리야?" 흰 등대 방파제 난간에 붙어 서서 남자아이 둘이 연신 아빠를 채근한다. 큰애는 올해 초등생이 되고 동생은 연년생이다. 파도가 넘실대는 맨 아래 삼발이에서 낚시하는 아빠는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는다. 큰애가 스마트폰을 켜 몇 신지 보여 준다. 4시 46분. 1시부터 낚시했는데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저런다고 고자질하듯 일러바친다. 바로 앞은 광안대교. 교각과 교각 사이로 바다에 뜬 부표가 보인다. 네 시간이 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낚시꾼을 용용 약 올리며 간들댄다.

민락등대는 개성이 뚜렷하다. 원통형 2층 구조이며 층층마다 팔각 난간을 쳤다. 등대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2층에 나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철제사다리가 노출돼 있고 빛을 발산하는 옥상 등명기 역시 노출된 상태다. 창문은 따로 내지 않아 밋밋하다. 대신 우직해 보인다. 등탑은 밑에서 보면 벙거지를 쓴 형상이다. 벙거지는 도둑 잡던 군졸이 쓰던 모자. 덕분에 등대가 듬직하면서 고풍스럽다.

흰 등대는 난하다. 검정스프레이로 낙서질을 해 댄 바람에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낙서에도 품격이 있을 텐데 매를 좀 맞아야겠다. 등대를 우롱한 죄. 등대를 찾은 사람을 우롱한 죄. 그렇게 봐서 그렇겠지만 광안대교 너머 수평선도 낙서. 하늘과 바다 정중앙 길게 그어 놓은 한 줄짜리 낙서다. 품격이 있어서 선이 단아하다. 흐트러짐이 없다.

방파제 내항은 민락포구. 수협위판장과 활어판매장이 포진한 포구다. 포구에서 횟감을 사 초장집으로 가거나 횟감과 초장과 야채를 사 한국 최초 수변공원이란 데 가 보자. 수변공원은 날씨가 좋고 놀기가 좋은 날은 인산인해다. 아니, 인해인해다. 태풍 매미가 물고 온 큼지막한 갯바위가 명물이고 광안대교 불꽃축제가 명물이다. 웨딩사진을 찍으면 배경이 멋지게 나오겠다. 사진에서 갯내가 물씬 나겠다.

광안대교 상판에 불이 들어온다. 다리에 단 등대, 교량등이다. 여기 방파제서 보이는 교량등은 셋. 홍등이 둘이고 녹등이 하나다. 양옆 홍등과 녹등은 한 번씩 깜박이는 반면 가운데 홍등은 Fl(4)R8s다. 8초에 네 번을 달아서 깜박인다. 배가 이리로 오면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다. 생은 고해. 오늘 여기를 사는 우리는 고난의 바다에 떠다니는 쪽배 같은 존재다. 우리에게도 저런 신호등이 있으면 좀 좋을까. 생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할 때 홍등 녹등 번갈아 깜박이며 인도해 주면 좀 좋을까.

동길산/시인 dgs1116@hanmail.net



시야 안 좋으면 '음파 표지'로 알려 줘

"빼~" 나팔관 소리 멀리까지 울려

항로표지는 운항하는 배가 지표로 삼는 국제적 해양교통시설이다. 항로표지는 간편하고 누구나 식별이 쉬우며 일정한 장소에서 정확하게 운영하는 등 몇 가지 기본요건을 갖춰야 한다. 종류는 다섯 가지. 야간에 불빛으로 등대 위치를 알려 주는 광파표지, 주간에 형상과 색채로 알려 주는 형상표지 등이 있다. 불빛도 잘 안 보이고 형상도 잘 안 보일 경우 소리로 알려 준다. 이를 음파표지라 한다.

음파표지는 날씨에 좌우된다. 안개가 끼거나 눈, 비 등으로 시야가 가릴 때 음파표지를 쓴다. 소리를 내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보편적인 게 전기폰. 설치가 간편하고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 전기에너지를 음파로 바꾸어 나팔관 소리를 낸다. '빼-' 소리가 길게 난다. 사이렌 소리를 공기압축으로 내면 에어 사이렌, 전동기로 내면 모터 사이렌이다. 압축공기로 피스톤과 실린더를 작동해 소리를 내면 다이아폰이다.

부산의 등대는 소리를 어떻게 낼까. 오륙도등대는 45초에 1회 5초간 전기폰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3해리 거리까지 소리가 닿는다. 3해리는 약 5킬로. 영도등대도 마찬가지다. 가덕도등대는 다른 건 같은데 거리가 좀 짧다. 2해리다. 안개가 짙게 끼는 민락 바다 등대는 안개신호소를 부설해 소리를 낸다. 동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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