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단, KTX '중간역 증설' 문제 제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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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과 통합 염두 주도권 노린 신경전?

경부고속철도 신경주역(경북 경주시)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KTX 열차. 부산일보DB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철도공단)이 연초부터 고속철의 중간역 문제를 들고 나왔다. 철도건설을 전담하는 철도공단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고속철 정차역 증가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을 놓고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철도공단은 8일 자체 연구보고서를 통해 국내 고속철도 KTX의 역간 거리가 너무 짧아 개선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간역이 너무 많아 운영속도와 비용, 운행시간 등에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보고서를 놓고 코레일과의 통합논의가 나오는 시점에다 중간역 신설이 정부의 정책적 판단으로 이뤄진 점 등을 감안할 때 통합에 앞서 사실상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역간 거리 평균 46㎞
선진국 78.5㎞의 58.6% 수준
"고속철 아닌 저속철
최소 57.1㎞는 돼야" 주장

"역 신설 민원 대처" 해명에도
저속철 해결 방안 제시 못해
코레일 흠집내기 지적도


△고속철 역간 거리, 선진국의 59% 수준=철도공단은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고속철 역간 거리는 평균 46㎞라고 밝혔다. 이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선진국 평균 78.5㎞의 58.6% 수준에 불과한 것. 국내 다른 일반·광역철도가 선진국의 79~84%선인 것과 비교해도 짧은 편이다. 대표적 사례는 경부고속철 천안아산역~오송역(28.7㎞)과 신경주역~울산역(29.6㎞)이 꼽힌다.

연구보고서는 오송역, 울산역 등 추가역 신설에 따른 역간 거리 단축으로 인해 건설·운영비의 대폭 증가와 함께 운행시간도 22분이나 지연됐다고 했다. 서울~부산 간 논스톱 운행시간이 1시간56분에서 2시간18분으로 바뀐 것. 중간역 정차시엔 논스톱 운행과 비교해 최대 1시간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이처럼 고속철 운행속도가 늦어지면서 대중교통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표정속도'가 선진국의 78%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게 철도공단의 설명. 표정속도는 출발역에서 도착역까지 소요시간(정차시간 포함)으로 주행거리를 나눈 수치다. 표정속도가 빠를수록 승객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 KTX는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고속철의 표정속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본보가 올 1월부터 운행되는 KTX 경부선의 상·하행 기차시간표를 분석한 결과, 부산~서울 기준으로 상·하행선 각 70편 중에 중간 정차역이 3곳 이하인 열차는 각각 5편에 불과했다. 중간에 5곳 정차하는 곳이 상행선은 31편, 하행선은 25편으로 가장 많았다. 심지어 6곳 이상 정차하는 열차도 상행선 14편, 하행선 17편에 달했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6곳에 중간 정차하는 열차의 경우 많게는 3시간13분까지 걸렸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오락가락하는 운영원칙이 한몫했다. 지난 1995년 당시 오명 건설교통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2002년 완공예정인 경부고속철 중간역을 천안, 대전, 대구, 경주 4개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고속철 중간역은 4개 이하가 경제적'이라는 기술조사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그러나 이후 지역별 민원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2003년 충북 오송과 경북 김천·구미, 울산 등 중간역 3곳이 추가됐다. 정차역도 총 11개 역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최근 지역별 정차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경기도 수원과 영등포, 행신, 부산 구포와 경남의 밀양, 경북 경산에서도 열차가 멈춰 서고 있다. 이 때문에 승객들 사이에선 "고속철이 아니라 저속철이다. 예전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와 뭐가 다르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중간역 신설로 인한 운행시간 지연과 관련, 2003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중간역 추가를 발표하면서 "고속열차 운행방식을 중간에 2개역 정차하는 열차, 3개역 정차하는 열차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할 경우 운행시간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2~3개역 이하로 정차하는 KTX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지방 중소도시나 공단지역에서 정차해달라는 민원 영향도 있지만 코레일 측이 적자보전 차원에서 정차역을 확대한 것도 한몫했다.

△철도공단, 문제점만 지적한 배경은=이번 연구를 시행한 배경에 대해 철도공단 산하 녹색철도연구원 측은 "적정 역간 거리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고속철 건설시 역 신설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해 소모적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마다 정차역 신설 민원이 많은 상황에서 한 번 정리한 정도로 해석해달라고 했다.
철도공단 측은 중간역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열차 최고운행속도, 표정속도, 수요 및 사업비 기준으로 적정 역간 거리를 산정한 결과, 고속철도는 최소 57.1㎞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보다 평균 11.1㎞ 늘어나야 한다는 것. 철도공단은 이번 보고서를 내면서 저속철 해결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철도운영은 코레일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코레일 관계자는 "10년 전 철도공단이 중간역 신설에도 관여했는데 이제와서 잘못됐다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철도공단 이사장의 지시로 이뤄진 이번 보고서를 놓고 코레일과의 통합이 논의되는 시점에 이뤄진 '코레일 흠집내기'라는 얘기도 있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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