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에 희망꽃도 '활짝'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마음이 샘솟는 물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해, 헛헛한 마음에 한 줌 희망이 되어 줄 그런 그림을 찾았다. 바로 '웃는 얼굴'이다.
서양화가 이순구는 웃는 얼굴만 그린다.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그는 꽤 유명한 작가다. 어떤 기분에서든 그림만 보아도 행복해진다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퍼 나르고 있어서다.
2005년 어느 날, 이순구의 어린 아들이 작업실에서 입을 한껏 벌리고 방긋 웃는 얼굴을 그렸다. 그게 아빠란다.
이순구 초대전, 28점 전시
26일까지 중동 갤러리 조이
대전에서 나고 자란 80학번 이순구는 한국 민화의 독특함에서 영감을 얻은 구상화나 디테일한 무늬 등을 그리는 실험에 천착하고 있었다. 무심코 보았던 아이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곧 그에게 일대 전환점이자 화두가 되었다.
이순구는 '웃는 얼굴'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6개월가량의 조사 끝에 세계적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림이 흔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기껏해야 웃음을 사회를 비판하는 도구로 쓰는 정도였다.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중동 '갤러리 조이(JOY)'에서 만난 이순구 작가는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웃는 그림만 그려서인지, 해맑게 웃는 얼굴이 살갑다.
"궁극적으로 변함이 없는 게 무얼까 고민했어요. 활짝 웃되, 맑고 밝게 웃는 얼굴을 그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스마일 마크를 형상화하는 것부터 출발했지요." 이후 그는 유명 배우는 물론 노인과 아이들까지 '참 웃음'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탄생한 이순구의 그림은 가지런한 치아와 잇몸, 목젖까지 드러내고 함박웃음을 짓는 소년, 형제, 자매, 오누이 그리고 가족이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껴안거나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실제 모델은 없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인물들이다.
'웃는 얼굴'에는 코가 없다. 한껏 웃고 있으니 눈동자도 없다. "어, 왜 코가 없어요?" 세상에 찌든 어른들은 몰라도 아이들은 그걸 단박에 알아챈다. 순박한 웃음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려 코를 없앤 것이다.
주인공은 꽃과 풀, 새와 나비, 하늘이 함께 어우러진다. 유화로 빚어낸 화사하고 밝은 파스텔톤 색감은, 가슴을 더없이 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 한다. 민화에서 영감을 얻은 새는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의미한다.
'웃음꽃-아하1'은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명상하는 자세로 앉은 아이가 깨달음을 얻은 듯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따뜻하고 잔잔한 물결이 가슴에 인다.
긍정의 힘이 작용했는지, 작가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암 투병 중인 자매는 홍천의 요양원에서 일부러 서울까지 전시회를 보러 왔고,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그림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연락이 왔다. 작가는 "새 그림을 그리면 이 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드리기도 한다"며 "더 밝은 작품을 위해 유머 코드를 넣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28점의 '웃는 얼굴'이 내걸린 이순구 초대전은 갤러리 조이의 개관작이자 작가의 부산 첫 전시회다. 갤러리는 '조이'라는 이름처럼 힐링과 기쁨, 행복을 특화한 전시를 해 나갈 예정이다. ▶이순구 초대전=26일까지 해운대구 중동 갤러리 조이. 051-746-5030. 박세익 기자 r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