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부산 등대] 2. 송정등대
입력 : 2013-01-03 08:04:24 수정 : 2013-01-03 14:30:38
마주 본 적백 쌍둥이 등불 정면충돌 피하자는 소통의 언어
송정방파제 등대는
두 그루 해송
소나무 향내가 난다
송진이 묻은 듯
만져보면 끈적거린다
방파제 끝에 서서 심호흡하면
절반은 갯내가
절반은 솔내가
내 안에 해송을 키운다
소나무 가지 같은 빛줄기
밤바다에 늘어뜨리고
나이테가 동해
막 뜨는 해를 닮아가는
송정등대 두 그루
- 동길산 시 '송정등대'

등대는 소통이다. 등대 존재감은 소통에 있다. 등대의 언어는 그래서 소통의 언어다. 소통을 전제로 한 언어는 상대를 배려한다. 그리고 분명하다. 이중적이지 않다. 생각해 보라. 상대보다 나를 먼저 배려한다든지 겉말 다르고 속뜻 다르면서 어떻게 소통을 이끌어 낼 것인가. 배는 등대의 배려로 나아갈 길을 찾고 등대의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를 통해 두려움 없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등대의 언어는 크게 다섯 가지. 빛과 색과 형상과 소리와 전파다. 배는 이 다섯 가지 등대의 언어를 숙지해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정한다. 사람마다 나름의 어투가 있고 나름의 억양이 있듯 등대 또한 나름의 어투가 있고 나름의 억양이 있다. 등대를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등대를 아는 사람은 그 어투 그 억양으로 어디에 있는 등대인지 알아채고 등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챈다.
송정등대는 쌍둥이다. 흰 등대와 붉은 등대가 양쪽 방파제 끝에서 마주 본다. 1999년 세워져 연륜은 짧지만 원통형 몸매가 우람한 게 보호수 나무 같다. 등대 한가운데를 싹둑 베면 나이테가 층층이 둘러쳐졌을 것 같다. 뭍에서 보면 흰 등대는 오른쪽에 있고 붉은 등대는 왼쪽에 있다. 해운대 3포 하나인 청사포에 가도 그렇다. 오른쪽 등대는 희고 왼쪽 등대는 붉다. 송정이나 청사포뿐 아니라 어딜 가도 그렇다. 왜 그럴까.
희고 붉은 색 역시 등대의 언어다. 상대를 배려하고 분명하기에 색깔 역시 잘 뜨이고 분명해서 희고 붉다. 배도 자동차처럼 우측으로 통행한다. 그래야 정면충돌을 피한다. 바다로 나가는 배는 뭍의 오른쪽 흰 등대에 붙어서 나가고 들어오는 배는 바다의 오른쪽 붉은 등대에 붙어서 들어온다. 1년 365일 그 자리 그저 있는 것 같아도 등대는 어느 하루 어느 촌각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교신하며 끊임없이 교감을 이뤄 낸다. 등대는 소통이다.
"여긴 되게 따뜻하네." 이십 대 초중반 두 아가씨가 발을 동동 구른다. 엄동 추위에 몸이 얼어붙은 낌새다. 등대 테라스로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와선 햇살 잘 드는 자리에서 멈춘다. 시멘트 계단은 딱 열 계단. 테라스엔 난간이 있고 나무 돌듯이 등대를 돌게 돼 있다. 낙서가 간간이 보인다. 1년 뒤 다시 오자는 언약이 철석같고 이 글 보거든 연락해 달라는 호소는 애탄다. 소금기가 묻어 하나같이 끈적대는 언약이고 하나같이 끈적대는 호소다.
등대는 일자형 원통. 몸매가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고 이웃집 아주머니다. 꼭대기에 피뢰침이니 태양열 충전기니 전등이 달려 있다. 전등은 5초에 한 번 깜박인다. 등 색깔은 녹등과 홍등. 흰 등대에선 녹등이 켜지고 붉은 등대에선 홍등이 켜진다. 여기 뱃사람들은 흰 등대, 붉은 등대라 부르지 않고 녹등, 홍등이라 부른다. 등대도 보관하고 배도 갖고 다니는 해도엔 FlG5s, FlR5s로 나와 있다. Fl은 플래시 약자. G는 녹색, R은 붉은 색. 다른 숫자 없이 5s만 있으면 5초에 한 번이란 표시다.
흰 등대 정식명칭은 송정항 서방파제 등대. 붉은 등대는 동방파제 등대다. 송정항은 어딜까. 송정해수욕장 동쪽에 죽도공원이 있고 공원 옆으로 돌아가면 송정항이다. 명칭에선 규모가 크고 번잡한 항구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론 소박하고 한적한 포구다. 1톤과 2톤 사이 고만고만한 배들이 살갑다. 송정은 소나무가 있고 정자가 있음을 짐작케 하는 지명. 죽도 공원 입구에 세운 입석 한 대목이다. 송정이 왜 송정인지 알려 준다. '경주 노씨의 선조가 백사장이 내려다보이고 해송림이 울창한 언덕에 정자를 지은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송정 포구는 호수 같다. 방파제에 둘러싸여 잔잔하다. 송정천에서 떠밀려 온 낙엽이 떠다니고 물새들도 낙엽인 양 그 사이로 떠다닌다. 들리는 소리라곤 밀려온 파도가 더 이상 갈 데 없어 방파제를 두드리며 투정부리는 소리. 기장 방향 포장도로를 씽씽 내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리는 파도 투정 부리는 소리에 기가 죽어 등대 근처론 얼씬도 하지 않는다. 배가 들어오면 물새가 끼룩끼룩 눈알을 부라리며 날아오른다.
"3천5백이다!" 막 들어온 배는 1.29톤 연안통발어선. 뱃전엔 통발이 그득하다. 창 달린 방한모자를 눌러쓰고 발끝에서 가슴까지 올라오는 물옷을 입은 노부부가 선장이고 선원이다. 배에 실린 계량기로 잰 문어 무게가 3킬로5백이 나왔다며 선원 할머니가 선장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알려 준다. 소리가 나직하면 잘 들리지 않는 게 바다다. 지금은 오후고 아침에 잡은 문어는 10킬로. 그물망을 들어 보인다. 고동이 담긴 그물망도 보인다. 제사에 쓰는 밀고동이란다. 요즘은 물이 너무 차가워 고기는 잘 안 잡힌다고 푸념이다.
참고로 조업구역에 따라 바다는 3가지로 나뉜다. 육지와 가장 가까운 연안, 그다음이 근해, 가장 먼 바다가 원양이다. 육지에서 멀수록 배가 커지고 조업기간이 길어진다. 그러나 등대의 언어는 배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배려하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분명하게 말한다. 쉬운 듯 보여도 결코 쉽달 수 없는 처신이다. 한 해가 시작하는 이즈음. 등대를 마음 안에 들여다 놓으면 어떨까. 마음 안에 들여다 놓고 이 한 해, 등대를 닮아 가자고 작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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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등대는 흰 등대와 붉은 등대가 양쪽 방파제 끝에서 마주 본다. 바다로 나가는 배는 뭍의 오른쪽 흰 등대에 붙어서 나가고 들어오는 배는 바다의 오른쪽 붉은 등대에 붙어서 들어온다. 등대는 그 자리에 그저 있는 것 같아도 어느 하루 어느 촌각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사진=박정화 사진가 |
붉은 등대에서 흰 등대 가는 길. 노천에 간이탁자며 의자를 내다 놓고 해산물을 판다. 송정 해녀들 노점이다. 해녀 노점답게 자연산 해물 전문이다. 전복 소라 멍게 성게 군소 낙지 등등. 한 접시 1만 원, 2만 원이고 평일은 대체로 문을 닫는다. 죽도 공원 입구 여기저기 현수막이 펄럭인다. 해운대구청에서 이 일대 땅을 산 개인이 3층짜리 해양레저 시설을 짓는 중인데 그것의 문제점을 규탄해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들이다. 주민들 뜻에 어긋난 불통을 규탄하는 외침인 셈이다. 소통의 등대가 보기에 이 불통의 세상은 오죽 답답할까.
동길산/시인 dgs1116@hanmail.net
등탑은 '백홍녹황흑' 오색
색깔마다 고유 역할…요즘엔 다양하게
등대 등탑의 색깔은 모두 다섯 가지. 백색, 홍색, 녹색, 황색, 흑색이다. 단색만 쓰는 경우가 있고 하나 이상의 색깔을 같이 쓰는 경우가 있다. 색깔마다 고유의 역할이 있다. 같이 쓰는 경우도 색깔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
등탑 색깔 가운데 육지 기준 좌측과 우측을 나타내는 측방표지는 홍색과 녹색이다. 녹색은 먼 바다에서 보면 잘 뜨이지 않으므로 흰색을 쓰기도 한다. 녹등인 송정방파제 등대가 흰색인 것도 그런 연유다. 동서남북 방위를 나타내는 방위표지는 황색과 흑색을 같이 쓴다. 바탕색깔이 황이냐 흑이냐에 따라, 그리고 위나 아래나 가운데가 무슨 색이냐에 따라 배의 동서남북 진행방향이 달라진다.
이밖에 고립장애표지, 안전수역표지, 특수표지도 등탑 색깔로 구분한다. 그런데 좀 어렵다. 등대가 관광과 휴식의 대상인 일반인은 그냥 이것만 알자. 모든 유인등대는 흰색. 방파제 등대에서 흰 등대는 바다로 나가는 등대, 붉은 등대는 육지로 들어오는 등대! 노란 등대는 지나갈 때 각별히 조심해란 뜻. 공사구역이거나 해저케이블 등을 알리는 특수표지다. 최근엔 등대에 스토리가 가미되고 디자인이 가미되면서 고유의 역할에 관계없이 다양한 색깔을 섞어 쓰는 경향이다. 동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