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만든 새해 가족 달력] "내년에도 크게 웃자" 열두 달, 한 장 한 장 미리 새긴 가족의 행복
입력 : 2012-12-14 10:27:57 수정 : 2012-12-14 14:29:59
자기들 손으로 만든 달력에 아이들 스스로 놀라고 또 즐거워했다. 가족끼리의 추억을 떠올리고 새해의 다짐을 하는 데 가족달력은 좋은 수단이 됐다.계사년 새해가 바다 저 너머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조만간 해운대 앞바다 수평선 위로 쨍! 하고 떠오를 겁니다. 새해엔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까, 어디를 가볼까, 슬슬 그런 계획을 세울 때지요. 기자의 식구들도 며칠 전 밥 먹다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 툭 튀어 나온 제안이 '가족달력을 만들어 보자'였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게 아니라 달과 날을 꼭꼭 짚어가며 한 해 계획을 세우고 다짐도 해 보자는 것이었지요. 남이 만들어 놓은 달력을 그대로 이용하기보다 우리 손으로 만들면 훨씬 멋진 달력이 될거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 달력 제작 툴을 공짜로 얻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가족달력'을 검색해봤습니다. '스냅스'(www.snaps.kr) 같은 관련 업체가 수십 군데 줄이어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일정한 양식에 따라 사진 삽입하고 기념일 등을 기입해 전송하면 업체 측에서 깔끔하고 세련된 달력으로 만들어 택배로 보내줍니다. 편하긴 한데 돈이 들더군요. 크기에 따라 1만~3만 원대 정도였습니다. 큰 부담은 아니었으나 나중에 편집·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자, 그랬습니다. 좀 어설퍼도 말입니다.
컴퓨터 '엑셀 툴'로 만들기 작업
매달 추억이 깃든 사진 선정
필요한 기념일 생일 등 적어놓고
여러 장 출력해 방마다 붙여놔
쉽게 만들어질 줄 알았습니다. '한글' 같은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이나 엑셀 프로그램만 있으면 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맙소사! 달력 형태로 표물 만들고, 요일 맞춰 날짜 기입하고, 공휴일 지정해 넣고, 음력 표기하고…. 그냥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으로 날짜와 공휴일 등을 지정해주는 일정한 툴(tool)이 있어야 했습니다. 컴맹에 가까운 기자로서는 처음부터 가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엑셀 좀 다룬다는 아내도 고개를 가로 흔들더군요.
관련 툴을 올려 놓았으니 내려받아 가라는 인터넷 블로그도 몇 찾았지만, 내려받기도 까다롭고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에잇! 그냥 컴퓨터 '달인'인 지인에게 부탁했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안되니 엑셀 달력 툴 좀 만들어주쇼."
한 시간이 채 못돼 이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엄청 편한 것이었습니다. 날짜, 요일, 공휴일, 음력 등이 정확히 지정돼 있는, 달력 형태로 거의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사진만 정해진 공간에 파일을 끌어와 붙이고, 기념일 등을 기입하면 됐습니다. 역시 달인이라 하니, 그 지인 말이, 컴퓨터 웬만큼 다루는 사람은 쉽게 만든다 했습니다.
■ 우리 항상 행복하자!
탁상용 달력 정도 크기? 위 절반 부분에 사진을 넣고 아래 절반은 날짜로 있는, 그렇게 A4 용지 크기로 출력할 수 있는 툴이었습니다. 식구들이 컴퓨터 앞에 모였습니다. 먼저 어떤 사진을 넣을까, 의논했습니다. 해당 월에 가장 추억 짙은 사진을 선정해 넣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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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 표지. |
표지 사진. 요즘 한창 레고 놀이에 빠져 있는 초등 2학년 아들은 레고 사진으로 하자, 아이돌 그룹 '비스트'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한 중2 딸은 비스트 사진으로 하자, 말이 많습니다. "표지 사진이니 각자 것 말고 가족 전체 걸로 하자" 정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의 사진을 넣기로 합니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사진 폴더를 검색합니다. "봄은 초록빛이어야 해." 딸이 말합니다. 마침 지난 봄에 경남 고성 공룡박물관에서 찍었던 사진의 초록빛이 좋습니다. 두 아이와 아내가 서로 안고 있는 사진. "여름은 바다." 아들도 거듭니다. 지난해 여름 제주도 함덕해수욕장 사진이 시원합니다. 가을엔 추석이 있지요. 애들이 한복 입고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겨울 사진은 눈 쌓인 어느 절에서의 것을 사용합니다.
4장의 사진을 올려놓고 보니 그럴 듯합니다. 달력 제목도 달기로 합니다. 요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아들은 '패밀리 달력'으로 하잡니다. 가족은 아는데 달력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아직 모르나 봅니다. 누나가 싹 무시합니다. '행복한 우리 가족'으로 하잡니다. 애들 엄마가 '우리 항상 행복하자'가 낫겠다고 합니다. 투박하지만, 다들 그게 좋겠다 해서, 그리 정합니다. 다시 보니 역시 그럴 듯합니다.
■ 1월 달력만 만들면 절반은 성공!시작이 절반이라, 1월이 중요합니다. 1월 달력이 잘 돼야 전체 달력이 잘 될 겁니다. 1월을 대표하는 사진! 뭘로 할까 의견을 모아 보지만 분분합니다. 올해 달력을 들춰봅니다. 1월 것을 보니 마침 그때 온 가족이 포항에 갔었다고 표기돼 있네요. 호미곶, 바닷물 속에 거대한 사람 손 조각이 있지요? 그걸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폴더에 있습니다. 딸은 얼굴이 퉁퉁하게 나왔다고 불만입니다만, 그걸로 정했습니다. 사진을 보던 애들 엄마가 말합니다. "포항 갔을 때 좋았는데, 구룡포 과메기, 아, 지금이 제철일 텐데, 먹고 싶다." 애들도 "맞다. 그랬어" 그럽니다. 또 가자 그럽니다. 사실 그때 구룡포 과메기 참 맛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주말에 또 가게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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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의 달력. |
1월 각각의 날에 뭔가 기록할 것을 찾습니다. 애들한테 은근히 기대하는 게 있습니다. 기자의 생일이 1월에 있거든요. 그런데, 딸이 대뜸 외칩니다. "1월 5일, 요섭 오빠 생일!" 요섭은 그룹 비스트의 멤버입니다. 딸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콱 서러워집니다. 딸 녀석은 아빠보다 요섭이 더 중요한 겁니다! 끄응. 눈치를 챈 딸 녀석은 "아빠도 중요하긴 중요하지" 씩 웃습니다. 그 모습이 더 얄밉습니다. 밉다 하니 더 미운 짓을 합니다. 1월 5일 칸에 '요섭 오빠 생일'을 기입하고 끝에 하트(♥) 표시도 넣자 합니다. "아빠는 그런 거 못한다"하니 자기가 할 줄 안다며 마우스 들고 뚝딱뚝딱 하더니 떡 하니 하트 표시를 집어 넣네요. 거참!
새해 1월에 뭐할거냐니 아들은 딱지치기 챔피언이 되겠답니다. 반에서 자기 실력이 제일 좋다나요. 딸한테 물으니 "내 방 치울거야" 그럽니다. 잘됐다 싶어 핀잔을 줍니다. "아니, 방은 매일 치우는 거지 무슨 날 잡아 치우냐, 왜그러냐 여자가." 녀석은 혀만 쏙 내밀고 맙니다.
애들 엄마는 1월 중순에 스키장 가자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 가족과 벌써 말을 맞춰 놓았답니다. 그러자 했습니다. 아들한테 방학동안 격투기 배워 보라고 하니 아내가 펄쩍 뜁니다. 그 잔인한 걸 뭐하려고 애한테 배우게 하냐는 거지요. 다음에 또 꼬여 보기로 합니다.
■ 모처럼 온 가족이 크게 웃었다!1월의 것을 마무리하니 다른 달의 것은 쉽게 만들어집니다. 월별로 사진 뽑아 올리고, 제삿날 기록하고, 가족들 생일 찾아 적고…. 생일을 찾아 적다가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7월에 기념해야 할 생일이 몰려 있는 겁니다. 애들 엄마, 딸, 아들이 7월 중반에 몰려 있고, 애들 고모 생일까지 7월 초에 들어오는 겁니다. 딸 녀석은 "두준 오빠 생일도 있어"라고 합니다. 두준도 그룹 '비스트' 일원입니다. 또 얄미워졌습니다.
내년 설날이 2월 10일입니다. 아들은 "설날 때 세뱃돈 10만 원 목표"라고 합니다. 그 돈으로 뭐할거냐니, 아빠 막걸리도 한 병 사드릴 거라고 합니다. 기특! 그런데 딸이 또 얄미운 소리를 합니다. "야, 그거 19금이야." 아들이 어리둥절해하며 "19금이 뭐냐"고 하니 "애들한테는 술 안판다고" 그럽니다. 좋아질 수가 없는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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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출력했다. 컬러 프린터가 아니라서 흑백으로 나왔다. 오히려 더 좋았다. |
마침내, 12월까지 달력이 완성됐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달력이 만들어진 겁니다. 보기에, 좋습니다. 애들도 손뼉 치며 좋아라 합니다. 달력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할머니 것까지 식구들 것 하나씩 다 출력했습니다. 하나씩 가지자는 것이지요. 큰 방, 할머니 방, 애들 방에 하나씩 붙여 놓았습니다. 컬러 프린터가 아니라 흑백입니다. 모양새도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습니다.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해 놓았으니 필요하면 컬러든 장식이든, 언제든지 새로 뽑아낼 수 있거든요.
가족달력을 만들어보니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달력에 가족 사진이 있으니 보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만들면서 가족끼리의 지난 추억도 새록새록 되살아 났습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크게 웃었습니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