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 칼럼] 협동심은 본능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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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은 "우리 몸속의 미세한 세포마저도 모두 자치적 유기체며, 자치적 유기체(세포)는 서로 협동하며 상부상조한다"고 말했다. 매우 개성적인 몸의 세포가 유기적으로 협동하지 않으면 몸이 한시도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를 떠올리면 쉽게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인류 사회는 인체에 내장된 이타적인 유전자가 조성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생물학자 해밀턴은 협동하는 자와 배반하는 자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컴퓨터 토너먼트 게임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협동적 행위가 배반성 행위보다 장기적으로 사람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또한 우리 뇌는 무려 30여 년 동안 특정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도움을 받은 사람을 기억하려는 일종의 '은인 기억 메커니즘'이 뇌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됐다. 5명이면 충분하다. 현재 전국에서 대리운전자, 동네 가게 주인에서부터 막걸리 제조업자, 생태농업인,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인들이 결성을 서두르고 있다. 다윗들이 힘을 모아 '사익'을 추구하는 공급자 중심의 골리앗 사회경제 체제에 작은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이다. 1주1표인 상법상 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 의결권은 1인1표여서 민주적이다. 대형마켓에서 껌 한 통을 사면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생협에서 사면 조합원과 지역에 고스란히 몫이 돌아온다. 잃어버린 '경제 권력'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음료브랜드 선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감귤 재배 농가들이 도매상 횡포에 맞서 결성한 협동조합이다. AP 통신 역시 미국의 1천500여 개 언론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언론협동조합 형태다. 국제협동조합연맹에 가입돼 있는 협동조합 수만 70만 개 이상이다. 한국의 협동조합 비율은 3% 미만이다.

'사소한 개인들' 권익 보호 협동조합 운동
거대 구조 속 '따뜻한 사회적 경제' 돌파구

이탈리아 볼로냐 시는 협동조합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볼로냐 시는 현재 유럽에서 높은 소득과 낮은 실업률을 자랑한다. 그 비결은 협동조합에 있다. 8천여 개의 협동조합과 40만 개의 중소 영세기업이 지역 경제에서 거의 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에도 별다른 해고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협동조합은 위기가 닥치면 내부 유보 자금을 활용해 해고를 막고 고용을 유지해 간다.

자본주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도 한때는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급진좌파들은 협동주의자들을 '프티부르주아'라고 부르며 사적 소유의 한 형태라고 비아냥거렸다. 또한 자본주의 진영은 "2천만 년 동안 개미집단이 진화를 못한 것은 사회주의자여서 그렇다"며 냉소적으로 몰아붙였다.

현대인들은 솔직한 욕구와 느낌이 무시당하고 심지어 조작되기도 하는, 비인간적 커뮤니케이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사회적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해방'과 같은 추상적 계급구호만 외쳐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내면 속의 복잡한 감정과 의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표출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적인 '토론'과 '소통'을 일궈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또한 단순한 외침보다는 경제적 이해 관계가 작동하면서 시민들을 공론의 장으로 유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 중심에 '공동체적인 삶'으로 복원시키려는 협동조합 운동이 있다. 이처럼 협동조합 운동은 경제적인 기여 외에도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학교'로서 사회적으로도 기여한다.

서울시는 올해를 '협동조합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정책을 구상 중에 있다. 하지만 부산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경제적 약자들이 독립법인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그런 만큼 세제혜택과 자금지원 같은 정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협동조합은 지난 160년여 동안 많은 위기의 도시를 살렸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함께'보다 '혼자'의 가치에 익숙해졌다. 그러고는 자본주의 작동원리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현실과 이내 화해한다. 협동조합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왜소한 혼자'들이 '협동주의자'가 될 넉넉한 품새를 갖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흔히 미래가 우리 곁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계된 미래사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협동조합이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생협운동, 로컬푸드, 공정무역, 지역통화와 같은 다양한 대안경제 운동들도 그러한 경우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바로 곁의 사람들과 장소에 의지하는 것보다 더 든든한 게 있을까.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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