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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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동서대 교수·영문학

영국 런던의 킹즈 크로스(King's Cross)역.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 외에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9와 3/4 플랫폼! 독자 여러분은 혹여 이 단어의 의미를 기억하고 계시는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인공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나기 위해 돌진하는 비밀의 통로이다. 실제 킹즈 크로스 역 벽 한 쪽에 자리 잡은 9와 3/4 플랫폼을 찾은 해리 포터 팬들은 저마다 벽에 반쯤 박혀 있는 카트를 미는 시늉을 하며 즐거워한다. 해리 포터의 이야기가 덧입혀짐으로써 평범한 플랫폼 한 벽면이 아주 '특별한'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해리 포터로 유명해진 킹즈 크로스 역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것이다. 평범한 장소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 민담 속 이야기, 또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 허구적 사실 등이 덧입혀짐으로써 특별하고 의미 있는 장소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스토리텔링 산업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유럽 도시들의 경우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구 시가지가 있게 마련이고 그 구석구석마다 맛깔난 이야기들이 자리잡고 있어 여행객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만들고 추억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스토리를 찾아 고심하고 있고, 상품 판매에도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시도되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 역시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열심히 스토리텔링에 힘쓰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 9월 '부산스토리텔링 세계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시는 올해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스토리텔링 활성화 기반 조성,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상품 개발, 스토리텔링 산업화 지원, 스토리텔링 홍보마케팅 강화 등 4개 분야 27개 과제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도시를 알리는 스토리텔링의 원재료로서의 '이야기'란 관점에서 볼 때 부산은 지극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1960, 70년대에 개발이란 미명하에 아쉽게도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산의 시간성과 지역성을 드러내는 곳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켜켜마다 묻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시간성과 지역성을 보다 매혹적으로 만든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의 귀한 흔적이 남아 있는 해운대나 임진왜란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동래 지역은 물론,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동광동 40계단이나 영주동 산복도로 등은 역사와 인간이 만들어낸 생생한 물리적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생한 부산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다음 과제이다. 시에서는 이를 위해 스토리텔링 민간사업 지원과 스토리텔링 문화콘텐츠 공모전 개최, 관련 커뮤니티 활동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부산의 문화콘텐츠들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다만 한 가지 되짚고 싶은 점은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잘되어 있는지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해운대를 들어 보자. 동백섬 안내판에는 최치원 선생의 호에서 해운대라는 지명이 나왔고 그가 바위에 새겨 놓은 글자에 대한 소개가 간단히 언급이 되어 있을 뿐이다. 해변가에 자리 잡고 있는 황옥공주 상에 대한 유래 역시 단 두 줄에 그친다. 공감이 되지 않는 의례적인 설명에 그치다보니 황옥공주 상은 영 생뚱맞은 조형물에 그치고 만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관련 상품 통해 구체적 이미지 만들어야

좀 더 자료를 발굴하여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도 좋고, 황옥공주의 애련한 그리움을 보다 구체적으로 스토리텔링화하여 소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알림은 물론 관련 상품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덧 해운대는 단순히 여름 한 철 붐비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천 년의 시간이 묻어 있는 유서 깊은 곳,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매혹적인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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