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병석에 누운 아내 '소중한 존재' 뒤늦게 깨닫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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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제공

외롭고 쓸쓸한 노년. 물론 젊은 시절은 불같았다. 하지만 일터에서 은퇴해 이젠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이가 없다. 그나마 의지할 곳이라면 가족들. 그들마저 외면한다면 노년은 방향타를 잃은 배나 다름없지 않을까.

모처럼 한국을 찾는 아이슬란드 영화 '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노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즈음에 다가온 '노인학 보고서' 같은 영화다. 젊은 시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데 헌신했지만, 은퇴 이후 가족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데는 실패하고 가족 안에서도 홀로 남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외롭고 쓸쓸한 노년의 삶
고통과 회한, 무상함 그려


영화의 제목처럼 활활 끓어 오르는 화산과 대피하는 장면들로 막을 올린 영화는 이내 섬을 떠나 아이슬란드 본토에 정착한 하네스(테오도로 줄리어슨)의 모습에 집중한다. 학교 수위로 37년 동안 일하다 은퇴식을 치른 날, 그는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귀향한 그는 아내 안나(마그렛 헬가 요한스토디어)에게 사사건건 면박을 주고 가족과 모인 자리에서도 함께 섞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부로 살던 옛날을 추억하며 낡은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갔다가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다. 집에 돌아온 하네스는 심경의 변화를 겪고 안나를 따뜻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다음 날 아내가 좋아하는 넙치를 구해와 오랜만에 오붓한 저녁 자리를 하게 되지만 갑자기 안나가 쓰러진다. 하네스는 뇌졸중으로 전신이 마비된 안나를 손수 병시중하기 시작하는데….

화산섬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남자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삶의 고통과 회한을 분출하는 용암과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삶에 대한 불만으로 매사 화만 냈던 그가 고칠 수 없는 병에 몸져누운 아내라는 소중한 존재를 뒤늦게 깨닫는다는 평이한 드라마다.

전반부는 은퇴 이후 가족과도 소통이 안 되는 고집불통 노인의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하기야 그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귀향했지만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과 남은 삶에 대한 공허함이 물밀 듯이 몰려드는 것.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가시 돋친 핀잔과 트집으로 화기애애한 가족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다.

그런 그에게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낡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홀로 낚시를 하던 중 배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해 구조대에 의해 겨우 목숨을 건진다. 오랜 풍상으로 힘없이 가라앉은 배는 어쩌면 사회와 가정에서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초라한 하네스 자신을 보는 듯하다.

이젠 말 한마디 못하고 병석에 누운 아내를 만나게 된 그.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용기를 내고 평생을 함께한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온 힘을 다해 극진히 보살피는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그래서 하네스는 노인들의 고독한 눈빛과 애잔한 뒷모습을 뭉뚱그려 놓은 듯한 인물처럼 다가오고, 노년의 부부가 맞는 고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첫 단편영화로 아카데미 최우수단편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일찌감치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아이슬란드 출신 루나 루나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2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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