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바다를 맛보다 / 생선회는 칼 맛
한국스타일 일식집 '진수사'
생선회는 칼 맛으로 먹는다. 다소 질이 떨어지는 생선이라도 칼질을 잘하면 자연산 고급 회에 손색없는 맛이 난다. 동래의 ‘진수사’는 칼질을 잘하는 ‘한국 스타일’의 일식집으로 소문이 나서 찾아갔다. 진수사 박명호(42) 대표는 사람을 보고 그때그때 회 써는 스타일을 달리한다니(물론 단골일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진정 칼의 고수이다.
진수사는 특이하게도 일식집에서 쓰케모노(채소절임) 대신 장아찌 류를 고집한다. 곰삭은 장아찌를 한입 하며 “이건 일식이 아니므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안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어찌 된 일인지 애피타이저로 장아찌가 쓰케모노보다 입맛에 잘 맞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일식은 너무 재료에 집착, 획일화되어 아쉬웠다. 영문도 모르고 “이랏샤이마세” 외치는 게 다가 아니다.
일식에 한국식의 장아찌나 나물, 채소를 곁들이는 방식이 박 대표의 요리 스타일이다. 그는 산초와 나물이 많이 나는 경남 산청 출신. 어릴 때 먹었던 나물과 채소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요리에 반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여름 진수사에서 ‘여름철 보양 음식의 지존 흑산도 참민어 방금 입하’, 이런 문자가 여러 번 왔다. ‘복더위에 민어찜은 일 품, 도미찜은 이 품, 보신탕은 삼 품’이라는 말을 공연히 배워서 결국 못 참고 뛰어나갔다.
그날 그렇게 질 좋은 민어회는 부산에서 처음 구경했다. 등살, 뱃살, 꼬리 살을 어루만지듯이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각각 달랐다. 정말 잊지 못할 부위는 부레였다. 맛은 아주 담백했는데 질겅질겅 씹히는 식감은 꼭 추잉검과 마시멜로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민어 부레를 롯데에서 만드는 것도 아닌데, 생선에서 그런 식감이 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민어는 여름 최고의 생선인데도 부산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른다. 진수사가 흑산도에서 민어를 가져다 민어회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3년째. 그 비싼 민어회가 안 팔려 눈물을 머금고 버리기도 많이 했단다. 3전4기, 진수사 민어회는 결국 올해에 홈런을 날렸다. 특히나 민어의 부레 생각만 하면 가는 여름의 발목을 잡고 싶을 정도였다.
떠나는 인연이 있으면 새로 오는 인연도 있다. 가을을 기다렸던 이유는 ‘우럭보양탕’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우럭이 들어간 보양탕, 이게 말이 되나? 움푹하게 팬 뚝배기에 문제의 음식이 들어왔다. ‘가을의 전설’ 송이가 일단 향기로 인사를 한다. 보양탕에는 오가피, 인삼, 대추, 헛개나무, 송이가 기본으로 들었다. 싱싱한 우럭이 주연, 활전복은 주연급 조연이다. 생선이 들어갔는데 진한 옻닭 백숙 같은 맛이 난다. 뭐 이런 요리가 다 있을까. 비린내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백옥 같은 우럭의 살은 뒤늦게 입안에서 부서진다. 산산이 부서진 우럭의 살이여!
나중에야 이해가 되었다. 기름이 많은 우럭은 역시 기름이 많은 닭처럼 고소한 맛을 낸다. 하지만 우럭보양탕은 콜레스테롤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칼로리까지 낮으니 금상첨화다. 처음부터 이 맛이 난 것은 아니다. 우럭보양탕을 개발한 지 3년째인 올해 드디어 깊은 맛을 내게 되었다. 밥을 지을 때도 뜸들 시간이 필요한 이치와 같다.
박명호 대표. 칼질의 고수 박 대표가 출발은 중식이었다니 의외다. 박 대표는 경남 양산에서 누님이 하는 중국집에서 요리 인생을 출발했다. 중식도 센스있게 아주 잘했던 모양이다. 어느 누구보다 먼저 짬뽕에 왕새우를 넣어 인기를 끌었다. 양산이 한참 개발되던 무렵이라 사무실 여는 곳마다 찾아가 선점을 했더니, 감당 안 될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단다. 하루는 유명한 일식집에 짜장면 배달을 갔다 일식 요리사의 하얀 요리복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그 길로 중식을 때려치웠단다. 일식 요리사가 참으로 멋있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일식과 참 잘 맞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식에 국한되지 않고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힘이 있는 요리를 하고 싶다니, 또 어떤 음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된다. 지난번에 천일염으로 꼼장어를 구우면 정말 고급스럽다고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어떤 맛일지, 천일염 꼼장어가 머릿속을 마구 헤엄쳐 다닌다.
우럭보양탕 1인분 2만 원, 생선회 코스 5만 원부터. 영업시간 낮 12~오후 11시. 부산 동래구 명륜동 433의 14. 051-557-0676.
사진= 울이삐 (busanwhere.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