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바다와 명화 10 / 달리‘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vs 피카소‘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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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죽음, 그리고 운명으로 다가온 질서

달리‘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

카탈로니아 지역은 스페인에 속해 있으면서도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대결에서도 늘 엿볼 수 있듯이, 카탈로니아 지역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가 속한 카스티야 지역과 구별되는 독자성과 자주성을 쟁취하려고 늘 애써왔고 오늘날에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이러한 카탈로니아 특유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매혹적인 도시이다. 가우디의 건축물로 인해 잊혀지지 않을 도시 경관을 선사하는 이 아름다운 도시는 현대 서양 미술사에 깊이 각인된 두 명의 천재적인 미술가를 자랑하고 있다.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그 이름이 잘 알려진 이 미술가들은 바로 피카소와 달리이다. 이들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함으로써, 중앙이나 권력에 예속되지 않는 카탈로니아 문화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 불안과 혼동, 호기심과 꿈

화가, 작가, 영화 제작자, 퍼포먼스 예술가, 보석 디자이너... 달리라는 예술가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듯이,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교묘한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1950)는 보통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달리의 다른 그림들에 비해 훨씬 서정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소녀라고...>라는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실제로는 <바다 그림자 아래 잠든 개를 보기 위해 물의 표면을 들어 올리고 있는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라는 아주 긴 제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제목은 불안과 혼동, 호기심과 꿈이 뒤섞인 시기인 어린 시절을 완벽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카다케스의 해변인데, 아버지의 별장이 있어 달리가 어린 시절 자주 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해변의 하얀 암벽과 심연의 바다에 경이감을 느껴 카다케스에 늘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한편, 달리는 어릴 때 세상을 떠난 형으로 인해 평생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였다. 그의 이름이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달리의 아버지는 달리에게서 늘 죽은 아들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소녀라고...>는 이와 같은 특별한 가족 상황 속에서 죽음과 성에 대한 희미한 자각이 시작되는 어린 달리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스텔 톤의 밋밋한 화면과 공중에 떠 있는 어린 달리는 공간 감각이 상실된 꿈의 세계를 관람객이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꿈의 세계에서 얇은 천처럼 네모나게 절단된 바다는 달리의 무의식과 의식을 분할하는 특별한 경계선처럼 변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달리가 살짝 물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호기심과 긴장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잠자는 개는 어린 소년이 발견하게 되는 죽음으로도, 소년의 성에 대한 최초의 자각으로도 해석된다. 이처럼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역의 작은 마을이었던 카다케스는 달리를 통해 성과 죽음, 그리고 운명이라는 인류 공통의 근원적인 문제를 성찰하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서양 예술의 원형 풍요함과 역동감 오롯

이미 1917년 당시에 입체파 화가로서 명성을 쌓은 피카소는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장 콕토와 함께 로마와 지브롤터 해협을 방문한다. 그는 이 고전미술의 본 고장에서 예술의 원형을 발견하고 후에 이를 화풍에 반영하게 된다. 이 시기에 가장 실험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던 피카소의 이와 같은 변절(?)은 시대적인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 당시 입체주의는 독일계 화상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이유로 “독일예술”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전후의 반독일 분위기와 함께 고전적인 질서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서양 미술계에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가 단순히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피카소의 새로운 그림들은 지중해에서 서양 예술의 원천을 다시 찾고자 노력한 그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비평가들에 의해 “뚱뚱한 여자들의 시기”라고 불렸던 당시의 그림들은 모두 화폭이 터져나갈 정도의 거대한 여인들로 가득 차 있다. 장 콕토는 이 시기의 그림에 나타나는 피카소의 여인들에 대해 “두툼한 손과 암소의 눈을 가진 헤라들이 그림의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1922)은 바로 이 시기의 피카소의 화풍을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통해 고전주의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는 피카소의 천재성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은 헐렁하고 주름진 옷을 걸치고 있음으로써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피카소‘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
그러나 이 그림에서 우선 느낄 수 있는 점은 이와 같은 고전주의의 영향보다 기묘한 불일치감이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그 육중함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의 왼쪽의 여인이 보여주는 머리를 젖히고 있는 동작은 고전주의 회화나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고전주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절제감보다는 오히려 역동감과 활달함을 느낄 수 있다.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오른쪽 여인의 팔이 신체적 비례에 맞지 않게 더 길고 굵게 묘사된 것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인의 길어진 팔은 더 멀리 더 빨리 나아가려는 질주의 쾌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고전주의의 완벽한 비례와 질서감에서 벗어나 여인들의 질주가 나타내는 풍부한 운동감과 자유로움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그림은 러시아의 디아길레프 발레단이 프랑스에서 공연했을 당시 무대 오프닝의 커튼의 그림으로 선보여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실제 피카소는 러시아 발레리나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두 여인의 모습이 그토록 가벼워보이는 것은 발레리나의 동작과 흡사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처럼 <해변을...>은 피카소가 시도했던 “고전적인 질서의 회귀”가 자기만의 독창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고전주의 회화와 조각이 보여주는 질서에 감춰진 율동감을 드러내어, 서양 예술의 원형이 간직하고 있었던 풍요함과 역동감을 우리의 눈앞에 선사하고 있는 특별한 마술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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