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부산 영어마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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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동서대 교수·영어학과

몇 주 전 언론 보도에 나온 경기도 양평 영어마을의 무등록 불법 고액 캠프 유치 적발 건은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울 강남의 한 학원이 영어마을에서 여름방학 두 달간 1천600만 원짜리 미국대학입학시험(SAT) 캠프를 운영하다 관할 교육청에 적발된 것이다.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파주 영어마을에서도 사설학원이 두 달간 1천500만 원짜리 불법 영어캠프를 하다 적발된 적이 있었다.

타 시·도와 달리 모범적 운영 흑자 기조

영어마을이란 공항이나 음식점, 은행, 병원 등 일상 생활시설을 가상으로 꾸며 놓은 일종의 영어 체험학습장을 지칭한다. 2000년대 초반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 해외 영어연수 열풍이 불자 이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영어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현재 전국에는 총 32곳의 영어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어마을의 적자 운영 실태는 어쩌면 건립 초기부터 예상되어 왔던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최소 50억 원에서 최대 1천억 원을 들여 지자체들이 조성에 나섰던 영어마을은 경기도만 하더라도 10군데에 육박하고, 서울의 경우에도 4군데나 된다. 이들 대부분은 대도시 근교 방대한 부지에 대규모 시설과 다채로운 영어 프로그램을 홍보하여, 건립 초기에는 수많은 방문객의 유치에 성공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도심에서 떨어진 대형 영어마을은 접근성의 문제로 점차 방문객 수가 줄어듦은 물론 막대한 관리 비용 또한 발목을 잡았다. 전시 효과에 치중한 영어마을의 난립은 결국 운영난을 불러왔고 급기야는 편법까지 끌어들이는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총체적 운영난을 겪고 있는 전국의 영어마을들과는 대조적으로, 부산의 부산글로벌빌리지와 사상구 국제화센터 두 곳은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 영어 체험학습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각각 부산진구와 사상구에 위치한 부산의 영어마을은 무엇보다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성 높은 점이 타 시·도 마을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2009년에 문을 연 글로벌빌리지의 경우 규모는 파주 영어마을의 1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방문객이 파주 영어마을의 배가 넘었다고 한다. 50여 가지 영어체험 학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빌리지는 개원 첫해를 제외하고는 계속 흑자를 냄은 물론 95% 이상의 프로그램 만족도 및 재등록률을 자랑하고 있다.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고 있으면서도 부산시와 시교육청이 긴밀한 협조하에 공동관리를 하고 있는 점 또한 다른 영어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2010년에 개관한 사상구 국제화센터는 규모면에서는 글로벌빌리지보다 작지만 사상구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영어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국제화센터는 개관 이래 현재까지 3천여 명의 저소득층 자녀에게 수강료를 지원하는 등 교육복지를 실행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동아시아 영어교육 새 모델 제시 기대

부산의 영어마을은 인근 동아시아 지역에 영어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시도까지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년 전부터 소수의 일본 학생들이 방학 중 글로벌빌리지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부산시의 자매도시인 후쿠오카의 중학생 70여 명이 하계캠프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부산 방문 시 글로벌빌리지를 참관하였던 다카시마 소이치로 후쿠오카 시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결정된 것으로, 무엇보다 글로벌빌리지가 보유하고 있는 다채로운 시설 및 양질의 영어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엄청난 유학비용 초래는 물론 '기러기 아빠'라는 희대의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한국의 영어 교육 현장. 해외 영어연수의 대체 및 보완수단으로 떠올랐으나 운영난에 허덕이는 타 지역 영어마을과 비교할 때, 알찬 교육 프로그램과 탄탄한 기획력, 그리고 실질적인 교육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부산의 영어마을은 본보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어마을의 지속적인 성장에 힘입어 향후 부산이 동아시아 지역에 영어교육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기대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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