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교수 배낭에 문화를 담다] <11>미얀마 ⑤인레 호수, 파고다의 숲을 지나서 다시 호수로 가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 발로 노 젓는 인타 족 등 135개 소수민족의 삶터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인레 호수를 떠나지 않는 인타 족. 인레호수에서 한쪽 다리로 배를 젓는 인타 족 뱃사공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여행자들에게 버강을 떠난다는 것은 135개에 달하는 미얀마 소수민족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미얀마의 소수민족들은 에라워디 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을 제외하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져서 샨 주, 라카인 주, 몬 주, 친 주, 카야 주와 같이 자기 민족의 이름을 붙인 주에서 산다. 버강에서 껄로, 따웅지, 낭쉐를 거쳐 인레 호수로 걸어서 가면 여행자들은 미얀마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버강에서 껄로, 따웅지를 거치면서 여행자들은 산악지역에서 사는 소수민족들인 싼 족과 더누 족, 빠오 족, 빠다웅 족 등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여행자들은 조그만 도랑에 흐르는 맑은 물로 농사를 짓는 갓 늙어버린 사람들과 쟁기를 끄는 물소들, 축사를 마루 아래 둔 채 그 위에서 생활하는 항상가옥,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낡고 작은 교회,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파고다들도 만난다. 그러다가 도시를 걸어가면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면서 사람과 화물이 뒤섞여 곧 넘어지거나 주저앉을 것 같은 낡은 트럭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태워 경이롭게 보이는 버스들, 먼 곳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꽁초만을 피워대면서 그저 말이나 소가 가는대로 따라가는 듯한 우마차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은 또 이름도 모르는 열대 과일들, 화려하면서도 탐스러운 꽃들, 먹을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음식들도 만난다. 그러다가 한국 여행자임을 알고는 철지난 텔레비전 연속극을 이야기하고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는 어여쁜 여인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는 뜻밖에 찾아오는 행운! 다비드 르 브르통은 말하지 않았던가.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고 세계를 완전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며, '걷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고.

껄로와 따웅지를 거쳐서 낭쉐로 이동하면 여행자들은 곧 인레 호수와 만나게 된다. 낭쉐는 인레 호수 곁에 자리잡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호숫가 마을 낭쉐는 인레 호수로 가는 기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노부부들이나 홀로 배낭을 멘 여행자들에게 낭쉐 그 자체가 안식처이다. 낭쉐에서 여행자들은 걸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한다. 마을에는 야다나 만 아웅 파고다, 독립기념탑, 전통 인형극장, 레스토랑, 여행자 카페, 인터넷 카페, 밍글라 시장과 그 옆에 있는 좌판 노점상들 등 여행자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스쳐가는 여행자들은 하루 이틀 동안 인레 호수를 보고는 낭쉐를 떠난다. 그러지 않고 하루라도 더 머물러 있는 여행자들은 낮에는 파고다와 기념탑을 돌아다니다가 해질 무렵부터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혹은 재래시장이나 좌판 노점상에서 식사를 하고, 때로는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드물게는 전통인형극장에서 문화를 받아들인다.

머물러 있는 여행자들은 인레 호수를 보고는 특별한 볼거리 없는 마을 길을 할일 없이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그 마을의 꾸밈없음에 젖어든다. 어린 스님과 함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행인이 들여다보자 겸연쩍게 슬쩍 웃으시는 노스님, 개울에서 양치질을 하는 중년 남자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빨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아낙네들, 다나까(가루분의 일종)를 얼굴에 아무렇게나 바르고 영문글자로 덮인 웃옷과 털바지를 입고는 거리를 쏘다니는 아이들, 나무 그늘에 그냥 주저앉아 울음 한 번 울지 않고 먼 곳만 바라보는 물소들. 이런 광경들은 세련되고 정형화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뭔가 모자라고 허술하지만 도시의 세련되고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여행자들은 잊힌 옛날의 촌스러움을 추억하면서 더욱 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간다. 낭쉐의 촌스러움은 여행자들에게 추억과 회상, 자아의 확인, 내면으로의 침잠을 통하여 낭만을 불러 일으킨다.

낭쉐에서 여행자들은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로 들어간다. 인레 호수로 들어가면서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호수로 일하러 가면서 갈매기 모이를 던져 주는 사람들을 태우고 물보라를 튕기며 가는 보트와 그 뒤를 펄펄 날아가면서 보트를 감돌고 휘도는 갈매기 떼다.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를 머리에 이고서 여행자들은 호수에 비친 하얀 구름 너머 인타 족 사람들을 만난다. 인타 족은 대부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인타 족 사람들은 수상 가옥으로 이루어진 마을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그 사람들은, 마치 카누 같이 날렵하고 작은 배를 타고 똑바로 선 채 한 발로 노를 저어가면서, 노로 호수의 표면을 힘껏 때리면서, 그물을 던지면서, 대나무 통발을 그물처럼 쳐서 물고기를 잡거나 해초를 건져 올린다. 또한 대나무들을 엮어 밭고랑처럼 만들어 물 위에 띄우고 흙을 뿌린 뒤 토마토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들을 재배하거나 물레와 베틀로 무명이나 비단을 짜거나 배를 타고 관광선들 사이로 다니면서 물건을 팔기도 한다.

인타 족과 함께 여행자들은 링을 평생 목에 감아 목을 길게 늘인 빠다웅 족과 귀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여 귀를 늘어뜨린 사람들도 만나기도 한다. 인타 족이든 빠다웅 족이든 그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파고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자들도 파웅도우 파고다, 응아페 짜웅 사원, 쉐 인 떼인 파고다 유적지들, 5일장으로 열리는 인 떼인 시장을 둘러보기도 한다.

낭쉐와 인레 호수에서 여행자들은 미얀마 연방을 이루고 있는 소수민족과 그 삶의 모습을 본다. 여행자들은 그 이면에서 현재 진행 중인 민족 갈등, 관광객을 위한 전시용으로 끌려 온 소수민족 사람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파고다의 숲을 지나서 호수로 가지만, 여행자들은 그 호수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다수의 폭력과 소수의 절규를 어찌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민병욱
교수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