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유럽 예술영화, 중남미는 '풍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는 아시아 이외 국가의 다양한 영화도 초청한다. 올해는 중남미 영화가 강세다. 유럽은 경제 위기로 문화 전반에 대한 정부 지원이 급감했다. 이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예술영화가 타격을 입었다. 반면, 중남미 영화산업은 급성장하는 추세다. 중남미 국가는 3년 전부터 착실하게 영화산업에 투자해왔다.

이수원 BIFF 프로그래머는 "정부 지원으로 힘을 얻은 중남미 영화의 약진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안드레스 부르고스 바예호 감독이 만든 콜롬비아 영화 '소피아와 고집 센 남편'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인은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미루기만 한다. 참다못한 부인이 혼자 바다를 보러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인간 군상을 그렸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노인 이야기를 동화처럼 때로는 유쾌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중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동화같은 노인 얘기 '소피아…'
노예제 고민하는 소년 '해변'
라틴 포크 어머니 '…비올레타'
집단 따돌림 '에프터 루시아'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등
정부지원 속 영화산업 급성장

 

해변

또 다른 콜롬비아 영화 '해변'도 영화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후안 안드레스 아랑고 감독이 만들었는데, 신인 감독이 만든 첫 장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콜롬비아 노예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10대 소년이 노예제라는 과거와 유러피안 드림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무늬를 넣는 흑인 머리 스타일에 그들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노예가 됐을 때 다시 고국을 찾아올 수 있도록 이발기로 머리에 지도를 새겨 넣은 게 시초였단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문화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고 말했다.

천국에 간 비올레타

'천국에 간 비올레타'는 칠레 영화다. 안드레스 우드 감독이 만든 음악영화다. 라틴아메리카 포크의 어머니로 불리는 실존 인물 비올레타 파라의 일대기를 그렸다. 올해 1월 선댄스 영화제 드라마 대상을 받았고 영화계의 호평을 받아 현재 전 세계를 돌며 상영 중이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서구와 타협하지 않는 라틴 정신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멕시코 영화 '애프터 루시아'는 미셸 프랑코 감독이 연출했다. 10대 성장통을 그린 작품이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집단 따돌림의 잔인함을 담은 영화"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찍은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끝 장면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대중이나 관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감독은 자신만의 결론을 낸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집단 따돌림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찍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북미 초청작 중에는 영화 '스틸'이 눈길을 끈다. 마이클 맥고완 감독이 만든 캐나다 영화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노부부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집을 새로 짓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집 짓기를 어려워하는 남편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늙은 아내가 가슴을 짠하게 한다.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신혼부부가 반드시 봐야 할 감동적인 영화"라고 말했다.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미국 영화다. 벤 르윈 감독이 연출했는데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뤘다. 바로 장애인 성 도우미가 영화를 이끄는 주체다. 장애가 있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가 성관계를 소망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배우 헬렌 헌터가 전문적인 성 도우미로 나와 열연했다.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룬 뛰어난 영화"라고 말했다.

유럽영화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있다. 크리스티안 펫졸트 독일 감독이 만든 '바바라'다. 동독 여의사가 서독으로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이 최종 결정을 내릴 때까지 줄거리가 관객을 빠져들게 한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예술적으로 찍었지만, 대중적인 흡입력도 강한 영화"라고 말했다.

김종균 기자 kjg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