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인한 집채만한 파도가 17일 오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미포해안도로를 덮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17일 새벽 3시부터 태풍경보가 발효된 부산지역에서는 초속 20m의 강풍을 타고 4~5m 높이의 거센 파도가 해운대백사장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치면서, 호안도로 1.2㎞에 걸쳐 긴급히 쌓아 놓은 모래방벽이 위태롭게 파도를 막아내고 있다.
부산지역 곳곳에서는 강풍에 간판이 떨어지고 가로수가 쓰러져 행인 안전을 위협했다.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일부 지역은 암흑천지가 됐다. 출근길 시민들도 바람에 날리는 우산을 부여잡고 힘겹게 발걸음을 뗐다. 주요 간선도로마다 빗길에 미끄러진 차량들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부산, 만덕터널 생태통로 옹벽 붕괴 경남, 11곳 도로 통제 수만 가구 정전 제주·전남 등 주택 붕괴 침수 잇따라
16일 낮 12시 51분께 부산 서구 서대신동 한 2층 상가 건물에서는 강풍에 떨어진 4m 크기의 간판이 행인을 덮쳐 고 모(73) 씨가 얼굴이 찢어지고 팔과 목 등에 타박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어 이날 오후 10시30분께 만덕동 만덕1터널 인근 생태통로 옆 옹벽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쏟아져내렸다. 토사가 길을 가로막으면서 생태통로의 통행이 통제됐지만, 터널 통행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17일 오전 7시28분께 사상구 모라동의 한 주택에서는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주택 지붕을 덮쳤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배후도로에서 가로등이 강풍에 쓰러졌고, 북구 만덕동에서는 가로수 2그루가 강풍에 뿌리째 뽑히는 등 강풍 피해가 속출했다.
전신주가 쓰러지고 전선이 끊어지면서 정전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20분께 부산 영도구 청학동 영도구청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서 1시간여 동안 업무가 중단됐고, 부산 남구 대연동 남부경찰서 일대도 30여분 간 정전 피해를 입었다.
동래구 연안교와 세병교 등 상습 침수지역의 도로 교통이 한시적으로 통제됐으며,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밀집한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일원 호안도로도 월파 우려로 차량 운행이 일시 통제됐다.
경남 · 울산
17일 오전 경남지역은 태풍 '산바'의 직접 영향권에 들기 시작하면서 도로 11곳이 통제됐으며, 오전 10부터는 부산~김해경전철의 운행도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폭우가 쏟아진 16일 오후 8시 30분께 거제시 거제면 한 주유소 인근 왕복 4차로인 시도 2호선 주변 경사면이 붕괴되면서 토사 100㎥가 쏟아졌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거제면에서 고현 방향 차로의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17일 오전 9시 30분 현재 도로가 통제되는 곳은 거제시와 양산, 함안 등 11곳이다.
또 창원~밀양을 연결하는 국도 25호선 구간 중 창원시내 토월 IC 부근 일부 도로에서 토사가 무너져 오전 9시 40분부터 양방향 통행이 중단됐다. 이와 함께 마산만에 건설된 마창대교도 바람에 의한 일부 영업시설 파손으로 오전 10시부터 양방향 통행이 통제되고 있다.
부산~김해경전철도 오전 10시부터 운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부산~김해경전철운영㈜ 관계자는 "초속 30m의 바람이 불어 오전 10시부터 운행을 중단했다"면서 "바람이 25m 이하로 내려가면 바로 운행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전철은 지난해 개통 이후 바람 등 재해로 인해 운행을 중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경남에서는 17일 오전 9시 현재 경남 거제와 고성 등지서 1만 5천여 가구의 전기 공급이 끊겼다.
경남도와 한국전력은 태풍의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정전 지역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감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신주가 쓰러지거나 전기줄이 끊어진 곳에는 접근을 삼가해 줄 것을 당부했다.
울산 중구 태화동 지하노래방을 비롯해 병영 1동 주택과 북구 진당동 주택이 침수됐다. 또 중구 동천 지하차도 내에 주차한 차량 19대도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밖에 북구 모듈화산업단지 내 높이 5m, 길이 10m 가량의 경사면이 무너져 내렸다.
한편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신포동, 동서동 일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마산 앞바다의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사업은 해일 발생과 오탁방지막 등의 유실이 우려되면서 작업이 일시 중단됐다. 마산만 일대 아파트와 상가 등에는 지하층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모래를 담은 1만 개의 마대를 비치해 놓고 있다.
경북 · 제주 · 전남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17일 한반도에 상륙해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와 침수, 정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0시께 경북 포항시 장기면 오포리에서 절개지가 무너지면서 주택 1채가 파손됐다. 이 사고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추가 붕괴를 우려해 인근 주민 10여명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제주에서는 북부와 산간을 중심으로 많은 비를 뿌려 16일 오후 8시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주택이 침수된 것을 시작으로 60여건의 침수 피해가 접수됐다. 이날 오전 서귀포시 하효동 일대 7천여가구가 5분 이내의 순간 정전을 겪는 등 도내 1만여가구가 한때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다.
전남지역에서도 모두 3만9천 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 현재 목포 1만호, 여수 6천600호, 고흥 7천500호, 강진 1만3천호, 보성 700호 등 모두 3만 9천 가구에서 정전이 이어졌다.
제주공항에서는 이날 정오까지 모든 항공기 운항이 통제돼 국내선 113편과 국제선 2편 등 모두 115편의 결항이 확정됐다. 제주와 다른 지역을 잇는 5개 여객선 항로와 제주 부속 섬을 연결하는 뱃길 운항도 이틀째 전면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