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인+간)] 강남스타일 좌파 교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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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부터 못 속이는 '부산갈매기' "비판하는 진보학자가 나의 자리"

지난달 31일 부산역의 한 카페에 앉아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조국(사진 위) 교수. 그는 같은 날 모교인 부산 중구 혜광고등학교 앞 산복도로에 서서 고향 마을을 바라보며 한참을 추억에 잠겼다(아래). 이재찬 기자 chan@

2012년 8월 31일 오후 부산역. 태풍이 스쳐간 뒤 더없이 화창한 날, 커피를 손에 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강남 좌파'라 불리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48) 교수다.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 이마를 덮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는 습관이 있는 그를 두고 누군가는 '향기 나는 남자'라 했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뼛속까지 '부산 사나이'라니! 30년 서울 생활에도 부산 악센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자이언츠를 열렬히 응원하는 진정한 '부산 갈매기'이기도 했다. 35만 트위터 친구들에게 열정적으로 생각을 쏟아내지만, 정작 자기 이야기에는 한없이 수줍기만 하다. '서울대 법학과 82학번' 조 교수의 아버지는 지금 위독하다. 지난 5월부터 5개월째 부산 모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다. 부산역의 한 카페에서, 또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와 함께 했다. 그 사이에 모교인 혜광고와 산복도로를 거닐 때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 정말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남자들의 시샘을 살 만한 외모, 누구 덕인가요?

-하하.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고요. 전 아버지를 닮았어요. 키도 그렇고. 담배 많이 피우는 것 빼고는. 제 동생은 담배를 피우는데, 저는 냄새가 너무 싫었어요. 담배는 입에도 안 댔습니다.


■ 학교 다닐 때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던데.

-조금 괴롭긴 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대학 들어가니까  요즘 말로 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 불편했어요. 우유 초코파이 같은 게 도서관 책상에 쌓이는 겁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보면 쪽지가 있거나 해서, 행동에 늘 신경 쓰이고 거북했지요. 아차 하면 바람둥이 소리 듣겠다 싶었어요. 너무 경계했는지 몰라도 냉정하게 외면했어요. 오히려 외모가 스트레스고 콤플렉스였던 겁니다.


훤칠한 외모? 외려 콤플렉스였어요 
책상에 수북이 쌓인 우유·초코파이 
바람둥이 소리 안 들으려 경계했죠 

부모님 졸라 2년 일찍 입학했지만
'거인야구' 좋아하는 개구쟁이였어요 
개구멍으로 구덕야구장 드나들었죠


■ 헤어스타일이 멋지신데, 어떻게 신경 쓰시죠?

-동네 미장원에 몇 년째 저를 담당하는 미용사가 계세요. 그냥 알아서 해 주시는 거죠. 나이가 좀 드니까 주변에서 2 대 8 가르마도 하지 마라 하시고, 복장은 늘 지적 대상이죠. 왜 배바지를 입느냐는 등. 허허.


■'강남좌파'란 별명이 마음에 드세요?

-제가 사는 곳이 서초구니까 강남3구에 사는 건 맞고, 좌파도 맞네요. 원래 강준만 교수가 비꼬는 말로 쓴 건데, 처음엔 좀 거북했어요. 지금은 '나도 강남좌파다'라고 나서는 분들이 나오고 있어요. 인식이 많이 바뀐 거예요. 우리 사회에 강남 좌파뿐 아니라 강북 좌파, 부산 좌파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부유하면 보수고, 가난하면 좌파라는 건 너무 기계적인 거죠.


■ 최근에 야권 통합해도 박근혜를 못 이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일부 언론이 현장에 오지도 않고 앞뒤를 잘라 버린 거예요. 정확히 '수권 세력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야권 단일화해도 진다'는 겁니다. 진정성을 보면 박근혜 후보가 이기기 힘들다고 봅니다. 야권 단일화는 필요조건이고, 거기에 수권 세력으로서 '권력을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나눠먹기 식 정치로는 '안철수도 똑같네'라는 말을 들을 거란 겁니다. 무도하고 무능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려면 정권 교체는 꼭 이뤄져야 합니다.


농활 갔더니 고향집에 경찰 찾아와
끌려가서 맞고 소지품 검사 당해
후배 박종철 죽음, 큰 충격이었죠

사람·돈 머물려면 지방분권 힘써야
젊고 진보적 부산시장 탄생하길
저는 부산에 안 살아 자격 없어요


■ 자,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어릴 적 모습이 궁금하네요.

-동대신동 동신초등학교 옆에서 태어났고, 서대신동 구덕초등학교 뒤에서 자랐어요. 어쨌든 대신동에서 나고 자랐어요. 학교도 구덕초등-대신중-혜광고 순으로 다 그 동네예요. 구덕야구장에서 야구 할 때는 표 안 끊고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하하. 어릴 때 제가 매우 개구쟁이였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더니 얌전한 모범생으로 변했답니다.

'수박 철모'를 쓰고 놀던 개구쟁이 꼬마 조국.

초등학교 때 '급장당선 기념' 표를 달고 선 조국.


■ 공부는 어릴 때부터 잘했나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일찍 들어간 건 공부 잘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사라져서 학교 보내 달라고 졸라서였어요. 고등학교 때는 전교 1~2등을 다퉜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10등 근처였나 봐요. 고교 전까지는 공부를 많이 안 했어요.


■ 두 살 일찍 간 학교에서 괴롭힘은 안 당했나요.

-중·고등학교 입학 초기에 친구들은 말 높여라, 나는 싫다 이런 옥신각신 말싸움이 있었어요. 대학 들어와서도 최연소 입학이라니까 삼수한 대학 동기는 다섯 살 차이 나는 형이었어요. 키가 커서 다행이었죠. 나이 어리고 이름이 특이하니까 선생님들이 학년 초에 저를 항상 기억했어요. 과목마다 선생님이 저를 불러 질문을 해요. 이름 때문에 공부를 잘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 아무리 모범생이라도 야한 책·영화는 봤겠지요?

-하하, 그게…. 중학교 때부터 보기 시작했죠. 모범생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나요. 아주 조야한 책들을 친구들이 갖고 오면 돌려봤죠. 그것보다는 학교 뒤 대신공원을 주말에 가면 메추리알 까먹고, 산에 다니는 게 재미있었어요. 지금도 참 그립네요. 책에는 좀 빠져 있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손바닥만 한 삼중당 문고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를 키운 상당 부분은 삼중당 문고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늠름한 모습으로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한 중학생 조국.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찾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 서울대 법대는 언제부터 꿈꿨습니까?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래희망을 판사라고 써놓았더라고요. 아버지는 저보고 상대를 가라 하셨어요. 근데 방송에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드라마를 했는데, 제가 완전히 빠졌어요. 결과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일종의 환상을 갖게 됐죠. 어떤 선생님은 저보고 육사 스타일이라 했었어요. 하하. 아찔하죠? 어쨌든 제 스타일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맞았던 것 같아요.


■ 입신양명을 위해 법대를 선택한 건 아닌가요.

-인간으로서 그런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부자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은 완전히 실망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사복 경찰이 들어오고, 학생회실 옆에 경찰 방이 따로 있었어요. 농촌 봉사활동 갔다가 고향 집에 갔더니 서울대 담당 경찰이 와 있었어요. 이게 뭐냐 싶었죠. 형사소송법에는 고문 금지 원칙이 있는데, 저부터도 아무 일도 없는데 경찰서 끌려가서 맞고 소지품 검사를 당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법시험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육법당(당시 육사와 법조인이 가득한 민정당을 비꼰 말)이 될 수는 없었어요.


■ 세상에 눈을 뜨게 된 사건들이 있을 텐데요.

-중3 때 인문계 갈 친구가 상고를 택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얼굴이 확 달라졌어요. 실수였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으면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고1 때 부마사태를 직접 거리에서 경험했습니다. 충격이었죠.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되니까 일부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어요. 이런 일들이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 롯데 야구단을 좋아하시는 게 이해되지 않는데요. 롯데도 재벌이지 않습니까?

-제 트위터를 잘 보시면 '거인'이라고 하지 롯데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이언츠는 롯데 것이 아니라 부산시민의 것이라 생각해요. 롯데의 행태에는 불만이 많지만 야구 자체는 사랑하는 이중감정이 있어요.


■ 경상도 억양을 그대로 쓰시네요. 그게 단점이라는 서울 사람들도 있던데요.

-이게 접니다. 지방 사람인 걸 잊지 말자 그런 생각도 있고. 부산 억양이긴 해도 표준어를 쓰려고 합니다. 일부러 억양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은 "그 외모, 스펙에 말마저 서울말이면 진짜 재수 없을 것 같다"고 하고, 서울 사람들은 "넌 말만 하지 마라. 점수 깎인다" 그래요.


■ 교수님은 학생운동 할 때 어느 노선이었나요?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진보를 '종북'이라 싸잡아 비난하는 분들도 있던데.

-제가 대학 다닐 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삼민투란 걸로 다 묶여 있었어요. 나중에 갈라졌어요. NL 중에서도 주사파(주체사상파)-NL이 나중에 대세가 되었는데, 대학원 때 주체사상비판이라는 책을 가명으로 냈어요. 필자가 10명 정도인데, 수령론 비판을 제가 쓴 거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지금 저보고 종북이라고 그러면 저는 '참 웃긴다' 그러죠. 결국 제 성향이라면 범PD라 할까요.


■ 박종철 열사가 고등학교 후배지요?

-종철이가 혜광고 1년, 대학은 2년 후배였습니다. 제가 대학원 때인데,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여러 사람이 죽었지만 직접 아는 사람이, 그것도 학생운동을 쉬고 있던 아이가 그렇게 되니,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 사노맹 사건 때문에 5개월간 구속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주도한 백태웅 선배가 법대 1년 선배고, 동성고 나온 부산사람이었어요. 사노맹 이름만 보면 거창해 보이지만, 내용과 강령을 보면 요즘 진보 정당과 큰 차이가 없어요. 저하고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자본주의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도와줬어요.


■ 사노맹 사건 직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죠. 혹시 도피한 건 아닌가요?

-전혀. 유학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버클리에 간 이유는 진보적 학풍 때문이었어요. 학교에 파란색 네모에 NL이라 쓴 주차공간이 눈에 띄었는데, 노벨수상자 전용이었어요. 이외에 어느 고위직도 전용 주차장을 주지 않았어요. 학문에 대한 존중, 공부에 대한 투지가 생기더라고요.


■'경계에 숨어서 말만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프로 활동가 혹은 정치인으로 나설 생각은 없나요.

-저는 진보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독립적 지식인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진보적 학자라는 것이 따로 필요하겠구나, 앞으로 민주화가 되면 법으로 싸울 테니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죠. 저는 정치에도 안 맞는 사람 같아요. 정치인의 삶을 지켜보면 제가 원하는 게 전혀 아닌 것 같아요.


■ 정치를 하라는 요구에 '정치근육이 없다'고 고사하셨는데, 지금도 없나요.

-왜 없겠어요.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공격을 받고 근육이 생기죠.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는 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의미였어요. 여러 가지로 저와 제 주변을 공격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의 정치근육을 키워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 몇 점짜리 아빠, 남편, 아들인것 같습니까?

-(한참 고민하다가) 주변에선 제가 가정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학점을 매기면 B플러스나 B제로? 저의 희망을 아이한테 투영을 하면 안 되는데 자꾸 그렇게 되어서죠. 아들로선 C플러스 정도인 것 같아요. 아들뿐 아니라 손자 손녀 얼굴을 보시는 기쁨이 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어요.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 한국의 보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저는 한국의 보수가 메르켈 수상이 있는 독일 기민당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정당인 데도 기민당은 노동과 복지, 환경 다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핵발전소도 문을 닫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대체로 이승만 박정희의 보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보수의 핵심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복지 제대로 하려면 독일의 메르켈이 될 거냐, 신자유주의 그 자체인 영국의 대처가 될 거냐 선택해야 합니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의 선택을 보면 메르켈 흉내는 내겠지만 정책은 제대로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정수장학회 같은 과거사도 논란이던데요.

-박근혜 후보가 장학회는 법적으로 내 것이 아니라 말하는 걸 듣고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장준하 선생이나 인혁당 사건 같은 자신의 과거를 모두 피해가고 있어요. 아버지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어요. 측근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결단해야 할 일입니다.


■ 그런데 부산은 왜 이 모양일까요.

-저는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 부산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에 올인 해 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짝사랑을 받은 정치 세력은 안타깝게도 철저하게 수도권 정당입니다. 야도였던 부산이 여도가 되면서 수도권 중심 정당, 보수 세력의 볼모가 된 겁니다. 부산 사람의 정체성은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사람과 돈이 부산에 있어야 합니다.


■ 나이가 들어서라도 고향에서 시장 해보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저는 부산시장 자격이 없어요. 시장은 부산에 살아야죠.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젊고 진보적인 부산시장이 탄생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청년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권력자가 그 요구를 반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공무원 시험 같은 것 말고 사회적 기업 같은 다른 쪽에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20년 뒤, 68세 조국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 조용한 외국에 1년에 한 달 정도, 가족과도 떨어져 혼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요. 이기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때는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어 있겠지요. 분명 그럴 겁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약력

1965년 부산 동대신동 출생

구덕초등→대신중→혜광고

1982년 서울대 법대 최연소 입학

1985년 서울대 법대 학술지 편집장

1986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91년 서울대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년 울산대 법학과 전임강사(최연소)

1997년 미국 UC버클리 로스쿨 법학박사

1999년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2000년 동국대 법학과 조교수

2001년 서울대 법대 조교수

2002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2009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년 '진보집권플랜' 출간

2011년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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