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역사]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파사건(198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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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10일 밤 11시 38분,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 정박 중이던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폭발했다. 두 차례 폭발음이 울리더니 선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배는 그대로 침몰했다. 선장과 승무원 10명은 긴급 피신했으나 사진작가 페르난두 페레이라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은 폭탄에 의한 테러였다. 프랑스의 소행이 유력했다. 당시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그해 8월에 남태평양 뮈뤼로아 환초에서 예정된 프랑스의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항해 중이었고, 뉴질랜드에 잠시 머물던 상황이었다. 뉴질랜드 경찰은 며칠 뒤 위조 스위스 여권을 소지한 프랑스인 부부를 체포했다. 그들은 곧 프랑스 정보기관인 대외안전총국(DGSE) 요원임이 밝혀졌다. 때마침 종적을 감춘 그린피스의 한 단원도 DGSE의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뒤이어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1면에 DGSE의 소행이 확실하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처음 범행을 부인했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총리가 사과하기에 이르렀고, 국방부장관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DGSE 국장도 해임됐다. 정보요원 2명은 뉴질랜드 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린피스 측에는 배상금 8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린피스가 오늘날 세계 최대의 환경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희생 덕분이었다. 197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12명의 환경보호 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조그만 반핵단체 그린피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사건 20년 만인 2005년 폭로된 사실에 의하면, 사건은 당시 대통령 미테랑의 승인 하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정광용 기자 kyjeong@

△신라-백제 황산벌 전투(660.7.9)

△서울대 제1회 졸업식(1947.7.11)

△시인 파블로 네루다 출생(1904.7.12)

△조선체육회 설립(1920.7.13)

△북한-미국 2차 고위급회담(1993.7.14)

△대만, 38년간의 계엄령 해제(198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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