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명예퇴직한 김정희(56·가명) 씨. 처음에는 함께 명예퇴직한 동료들과 산행을 다니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재취업을 하려 하자 택할 수 있는 직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했다. 결국 직장을 구하는 대신 손녀를 돌보게 된 김 씨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새 직장을 찾는 중·노년층이 늘고 있지만, 취직의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다. 중·노년층의 성공적인 재취업, 좋은 방법은 없을까.
# '눈높이'를 과감하게 낮춰라중·노년층이 전직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 부족'이다. 과도한 업무와 실적 압박 탓에 명예퇴직 또는 퇴직을 앞두고 있어도 재취업 준비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취업시장에 나서는 중·노년층이 상당히 많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40대의 경우 68.1%, 50대의 경우 69.2%가 별다른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직에 나선다.
과거 직급·처우 과감하게 잊고 새 출발 필요
취업 지원 기관 '훈련 프로그램' 지속 활용을
정부·부산시 지원 제도 등도 꼼꼼히 살펴보길별다른 준비없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든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직종 역시 그리 많지 않다. 부산광역시 고령인력종합관리센터 김주영 팀장은 "어느 정도 노후생활이 보장돼 있다면 노인일자리사업 차원에서 마련된 일자리 상담사와 법률 상담사, 외국어 봉사 등 사회봉사 분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계가 직결된 경우라면 남성은 경비직과 주차관리직, 여성은 호텔 룸메이드가 다수를 이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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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취업 준비 교육 중 올바른 인사 자세 배우기 모습. 부산광역시 노인취업교육센터 제공 |
전직에 실패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도한 눈높이'. 중·노년층 대부분은 자신의 직급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니던 중·노년층일수록 퇴직 사실을 지인들에게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누구였는데'라든지 '내가 한때 어땠는데'라는 생각을 해서는 재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연령이 높을수록 취업시장에서 불리하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40대의 경우 6.3개월, 50대는 8.8개월로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재취업 기간이 길어진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경력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더욱 구직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명예퇴직이나 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한다면 과거 직급이나 처우를 과감하게 잊어야 한다. 노사발전재단 부산전직지원센터 김경량 소장은 "전직은 인생의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눈높이를 조절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무료 전직 지원 서비스 등 적극 활용을재취업할 직종에 따라 준비 기간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퇴직 6개월~1년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전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과거 직위나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할애해야 한다.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 사진 등 기본적인 서류는 미리 챙겨놓자. 준비 없이 무턱대고 전문기관을 찾아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요구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노동부 지원 전직지원센터에서 운영 중인 '전직 지원 서비스'는 6개월간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 취업 관련 교육·상담 및 컨설팅, 사무공간 제공 등 구직 전반에 걸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구직활동에 요긴하다. 특히 MBTI 성격검사와 직업흥미 검사, 버크만 진단 검사, 직업가치관 검사를 통한 자기진단은 평소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선호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업무의 종류, 직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새로운 직업을 찾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취업 지원 기관들의 훈련 프로그램 정보를 지속적으로 탐색해 본인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듣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의도 빼놓을 수 없다. 특강 등 강의 대부분은 전문가들이 주제에 맞는 실전 노하우로 채워지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담당 컨설턴트와 충분히 상의해 재취업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좋겠다. 이들로부터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새로 배우고, 일대일 모의면접을 통한 면접 연습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복장과 말투, 본인의 장단점 등을 파악하는 비디오 코칭 프로그램도 실전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정부 지원 제도 등을 꼼꼼하게 찾아보면 다양한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부산광역시 고령인력종합관리센터에서 운영 중인 '시니어 인턴십'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호텔, 푸드 코트 등을 중심으로 3개월간 인턴을 거치면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원해 볼 만하다.
준비과정을 거쳐 면접에 나섰다면 복장과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옛 직위보다 낮은 면접관이 나왔다고 해서 말을 편하게 하거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면접을 보게 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질문에 대한 답 대신 그동안 이뤘던 업적을 장황하게 열거하는 것도 바로 불합격이다. 부산광역시 노인취업교육센터 강영주 과장은 "권위 있는 인상 대신 부드러운 웃음으로 면접을 보는 것이 좋다. 정장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너무 편한 복장으로 단정한 인상을 주지 못하면 합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기업도 적극 나서야중·노년층이 재취업에 성공하려면 기업의 지원도 절실하다. 기업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직지원서비스를 마련해 놓으면 퇴직 후에도 재취업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전직지원센터의 경우 담당 컨설턴트가 일대일로 배정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구인 기업이 원하는 요건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 이용할 만하다. 퇴직 또는 퇴직을 앞둔 직원이 재취업 시장에 원활하게 재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전직지원센터가 대신 하는 셈이기 때문에 기업은 보다 수월하게 퇴직(예정) 노동자의 실업시간을 줄일 수 있고, 노동자의 사기도 고취시켜 퇴직(예정) 노동자들을 미래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최대 6개월간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며, 부산·울산·경남의 경우 부산전직지원센터(051-860-1300)와 울산전직지원센터(052-277-9984), 경남전직지원센터(055-283-3251)에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