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맥주, 바람만 스쳐도 아픈 통풍에 독?
입력 : 2012-06-25 09:41:16 수정 : 2012-06-25 14:26:36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난다. 무슨 소리냐고? 감수성이 뛰어난 거냐고? 아니다. 바로 통풍(痛風)을 앓고 있는 분들 이야기다. 통풍,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것은 지병인 통풍 때문에 지휘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나폴레옹은 아파서 울고, 분해서 한 번 더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산이 체내에 쌓여 통증 유발
흔히들 통풍을 일러 '왕의 병'이라고 한다. 이를 뒤집어 '병의 왕'이라고도 한다. '왕의 병'이라 함은,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병의 왕'이라 함은, 말 그대로 그 고통이 여느 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기 때문이라고.
통풍 원인 퓨린 많이 함유
건강한 식습관 만성화 막아
굳이 술 마신다면 증류주
'왕의 병'이라 불리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통풍은 식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퓨린 성분의 대부분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을 통해 체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핵산의 구성 성분인 퓨린은 체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요산을 만든다. 요산은 혈액 내에 존재하며 콩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요산이 비정상으로 많이 생성되거나, 콩팥의 요산 배출 능력이 떨어지면 체내에 요산이 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혈액의 요산이 6.8㎎/dl 이상일 경우 '고요산혈증'이라 부른다. 이 정도가 되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
신체 말단부위는 혈액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통풍이 발생하기 쉽다. 사진은 통풍으로 인해 부어오른 손가락. |
체내에 요산이 축적되면 바늘 모양의 뾰족하고 긴 요산 결정이 관절 안에 생기는데, 이 결정체가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이것이 통풍이다.
#엄지발가락 통증으로부터 시작통풍은 주로 손발의 끝부분에서 일어난다. 손과 발과 같은 신체 말단부는 중심보다 혈액의 온도가 낮기 때문에 요산이 녹지 않고 결정을 이루기 쉽기 때문이다. 관절 부위가 붓고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그 중에서도 엄지발가락의 통증이 대표적이다. 전체 통풍 환자의 절반 정도가 엄지발가락 통증으로 증상이 시작될 정도다. 그 외에도 발목이나 무릎 관절, 손가락 및 손목 관절 등의 통증이 많다.
 |
전체 통풍 환자의 절반이 엄지발가락 관절 통증에서 증상이 시작된다. |
환자의 대부분은 40대 이후의 남성이다. 남자가 많다는 것은 요산이 생성되는 여러 원인 중 호르몬적인 요인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확한 것은 아직 판명되지는 않고 있다. 한편 여성은 폐경기 이후 발생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처음 증상이 발생한 후 일 주일 이내에 저절로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당수 환자들이 통증을 무시하고 생활하는 경향 또한 많다. 그러나 수 주 혹은 수 개월 후 더 심한 증상으로 되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모른 척 넘길 일은 아니다.
 |
통풍으로 부어오른 엄지발가락 관절. |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급성 통풍의 시기가 지나면 요산의 결정이 관절 연골을 파괴하면서 만성적인 통증을 느끼게 된다. 급성 통풍을 제때 치료하지 않을 경우 70% 이상이 만성으로 진행된다.
#혈중 요산 줄이는 약물 투여일반적으로 통풍은 완치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조기에 질병을 발견해 적절하게 약물 치료를 시행하고 체중 조절, 운동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만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급성 통풍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낄 때는 콜치신과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냉찜질과 부목 고정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콜치신은 급성 통풍의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으며, 염증을 억제하는 작용이 우수하다. 그러나 속쓰림,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어 많은 양을 장기간 쓸 수는 없는 약이다.
만성적인 통풍으로 진행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혈중 요산의 양을 낮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요산을 빨리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약물, 혹은 요산이 덜 생기게 하는 약물을 치료에 이용한다.
요산의 배설을 촉진하는 약물로는 프로베네시드나 설핀피라존이 있다. 콩팥의 기능에 이상이 없고 결석이 없는 경우에만 처방이 가능하며 하루에 물을 1.5L 이상 마셔 소변량을 유지해야 한다. 요산이 덜 생기게 하는 약물로는 알로퓨리놀이 있는데, 신부전이나 결석이 있어도 사용 가능한 약물이다.
일상 생활에서 갑자기 통증을 느낄 경우 냉찜질로 응급 처치를 한 후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만일 기존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라면 의사와 상담해 약물 복용량을 늘릴 필요도 있다.
#술 고플 땐 그나마 증류주·와인을거듭 말하지만 통풍은 식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통풍의 치료, 예방에도 식이요법이 주목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요산 생성의 원인인 퓨린 함량이 높은 음식물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반인 기준 하루 퓨린 섭취량을 150㎎ 이하로 정한다.
퓨린 함유량이 많은 음식으로는 육류가 대표적이다. 또한 육류의 내장도 마찬가지. 바다 쪽으로 넘어가면 대합, 홍합, 굴, 가리비, 바닷가재, 새우와 같은 해산물과 청어, 고등어, 참치, 멸치 등의 생선이 퓨린 함유량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채소류 중에서는 아스파라거스나 시금치, 버섯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기름에 굽는 것보다 삶길 권한다. 퓨린은 물에 쉽게 용해되는 성질이 있어, 삶아 먹으면 그 함유량을 상당량 줄일 수 있다. 수분이 요산 배출을 촉진하므로,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환자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남성인만큼 '음주'에 민감하다. 맥주가 퓨린 함유량가 많아 통풍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맥주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발효주가 퓨린 함유량이 많다. 통풍을 앓고 있으면서도 굳이 '술을 마셔야겠다'는 분들은 발효주보다는 증류주를 마시는 것이 좋다. 발효주 중에서는 그나마 와인이 좀 낫다고 한다. 와인에는 폴리페놀이 들어 있어 염증 감소 효과를 보태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식이요법보다는 약물 치료를 통해 요산 수치를 줄이는 것이 대세다. 아픈 것도 고통이지만,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 역시 그 못지 않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도움말=부산백병원 정형외과 공규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