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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대표적인 미래 상상화. 효자동닷컴 제공 |
어린 시절 학교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그림을 종종 그리곤 했다. 서로 다른 크레파스로 색색이 칠했지만 또래들의 상상은 큰 차이가 없었다. 높은 건물들을 휘어감은 고가도로, 그런 도로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휙휙 나는 자동차들이 모든 도화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도화지엔 외계인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 모두는 그 미래에 살고 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아직 타고 다니지 못하지만, 건물은 그때의 상상만큼이나 희한해지고 높아졌다. 꼬불꼬불 건물을 감고 오르는 도로는 없어도 섬을 잇는 다리와 바다 속 터널을 달리기는 한다. 외계인과의 만남은 아쉽게도 아직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크고 신기한 건물이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아예 날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해버렸다. 부모님 세대는 책 보따리를 들고 10 리를 걸어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아이들은 바다 건너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의를 제 책상에 앉아 보고 들을 수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에 이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그 사람에게 가야할 필요도 없어졌다. 주머니 속의 기계를 주섬주섬 꺼내어 마치 옆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아이가 그려내던 거대하고 멋진 모양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작은 모습으로 기술은 우리 삶의 근본을 바꾸고 있다.
기술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려고 하면, 그 시절의 어린 마음이 된다. 그런데 아이만 미래를 그리는 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유명인들도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오판을 많이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단정했고, 캠브리지 대학의 한 교수는 프랭크 휘틀의 제트 엔진 계획을 보고는 재미있지만 동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래를 점치는 데에 명성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가 보다.
예측하기 힘들다고 해서 두 손을 놓고 쳐다만 볼 수는 없다. 어디로 갈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한다. 애플사에서 여는 세계계발자대회(WWDC)가 올해도 열렸다. 이번 대회의 기조연설에서 기술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동영상을 복잡한 기술 설명에 앞서 상영되었다. 한 시각 장애인은 전화기의 도움을 받아 홀로 숲을 산책하고는 "내게 자유를 되돌려 주어 고맙다"라는 말을 하였다. 기술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간은 기술에 끌려갔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삶이 가야할 방향을 구현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게임에 대한 시선도 이런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게임은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게임 기술은 아이들의 정상적인 발달과 교육을 방해하고, 그릇된 정신을 심어주는 '사파무공'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무림비급'이다. 그러나 기술에 '정사(正邪)'가 있을 수 없다.
얼마전 '게임'과 관련한 자문요청에 응했다가 '사행성 게임'의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사행성 게임'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사행성'에 있는 것이지 '게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마치 '플라스틱 화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플라스틱'을 문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제 게임에 대한 논의는 이 게임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인간의 삶에 복무하게 할 것인지에 집중되기를 기대해 본다. 게임을 어떻게 활용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게임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거야 이것저것 이미 다 만들었고 뻔하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1899년 미국 특허청장은 "발명할 수 있는 것은 다 발명되었다"라고 했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것이 발명되었는지 잘 알지 않는가. 우리의 고민은 무엇을 발명할 것인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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