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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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의 공간, 희망 칠하는 덕포1동 주민들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는 봉사단원들. 사상구청 제공

"몸서리쳤던 '살인의 추억' 우리 손으로 지웁니다."

지난 2010년 2월 여중생 살인·유기 사건인 '김길태 사건'이 발생했던 부산 사상구 덕포1동 마을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엔 경찰과 구청의 제도적·행정적 뒷받침 위주였지만 이번에는 시계를 범죄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주민과 봉사단체들이 '스스로' 발 벗고 나선 것이다.

23일 오후 1시께 사상구 덕포1동 주민센터 인근 골목길. 좁은 골목길은 어두침침한 회색빛 시멘트벽 대신 하늘색, 분홍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환하게 바뀐 담벼락은 국민들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김길태 사건'의 기억을 지우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대변하는 듯했다.

"끔찍한 김길태 사건
어두운 과거 걷어내자"
어두운 골목 담벼락 등
화사한 페인트 도색
피해 주택은 주민쉼터로


골목길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불법 광고물과 여기저기 방치돼 있던 생활쓰레기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벽화로 장식됐다. 골목길을 지나던 김 모(68) 할머니는 "아이고. 이제 좀 살겠데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민들은 재개발에 발 묶여 동네가 더 이상 범죄의 온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난 4월부터 스스로 나서 마을 개선 사업을 추진해 왔다. 덕포1동 주민자치위원회, 지역 주민, 새마을금고 직원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덕포1동 희망 디딤돌 사업 추진위원회'가 지난 4월 출범했다.

추진위원회는 가장 먼저 어두운 골목길 담벼락을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탈바꿈시켰다. 주민들과 사상구 내 '작은사랑나눔봉사대' 등은 십시일반 출연한 찬조금 50만 원과 덕포1동 새마을금고에서 기증한 200만 원으로 페인트를 구입해 도색 작업에 직접 나섰다. 이들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2년여간 마을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분위기를 걷어내려 최선을 다했다. 골목길 입구에 있는 김 할머니의 집 담벼락은 인근 신라대 미술학과 학생들이 그린 벽화로 채워졌다.

끔찍한 범행이 일어났던 이 양의 집도 옛 모습을 지우기 위한 개조작업을 앞두고 있다. 추진위는 피해자 여중생의 가족으로부터 집을 무상임대 받아 리모델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2층으로 된 피해자의 집 1층은 마을 학생들의 공부방과 쉼터로, 2층은 집이 없는 저소득계층이 저렴한 가격에 머무를 수 있는 임시 거처 등으로 바뀔 예정이다.

추진위는 구청이 마련해 둔 '사랑의 에너지나눔사업기금' 중 1천200만 원을 지원받아 리모델링에 나설 예정이지만 공부방에 들어갈 책걸상 등의 집기는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오선희(60·여) 11통 통장은 "2년 넘게 주민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날의 기억이 조금씩 잊히는 것 같다"며 "조금씩 바뀌어가는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더욱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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