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진을 재발견하다 신진작가 포트폴리오] ⑩ 고래를 기다리며 / 김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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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깃든 기다림

고래를 기다리며-울산 용연동, 2004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오래된 바위그림들이 있다. 벽화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사냥에 대한 염원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최대 고래 출몰지 답게 고래의 다양한 모습이 눈에 띈다. 김남효 작가는 1999년부터 지난 10여 년간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하는 회유해면을 따라 인근 주민 삶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흘러 들어왔다고 말하는 곳. 공업도시 울산은 오디세우스와 같이 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소위 먹고 살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타향민들의 생활기지이다. 오래전부터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갔던 장생포 어촌마을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공단에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하고, 고래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다. 떠나온 자와 이제 떠나야만 하는 자. 타향민과 실향민. 그 둘은 상반된 듯 하지만 고향을 잃고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슬픔을 지닌다.

김남효의 작품은 이처럼 애잔함과 공허함을 안고 표류하는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결코 놓을 수 없는 뿌리와 지나간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다. 그의 작품 속에 투영된 애상적 그리움은 일순간 귀를 멍멍하게 만들면서, 마치 블랙홀처럼 가슴을 끝없이 파고든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화면구성은 잠시나마 감미로운 위안을 안겨준다.

'고래를 기다리며' 시리즈는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막연하고 아련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방파제에서 손자를 업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의미 없는 뜀박질을 해대고 바다 건너를 무심히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침묵의 순간, 즉 기다림을 포착한다. 두 번째는 고래탐사선을 타고 기다림의 대상을 향해 바다로 직접 찾아 나선다. 부표를 지나 먼바다를 향하는 어선의 뱃머리는 이리저리 요동치는 파도에 마구 흔들린다. 기관실의 GPS기계는 고래가 있는 곳을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만 같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고래는 찾아 볼 수 없다. 배의 밑창에 서서 동그랗게 난 작은 창 밖을 바라본다.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절박한 마음. 그 염원을 뒤로한 채 컨테이너 선박 한 척이 유유히 지나간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비켜설 곳도 없는 그곳에서 작가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바로 고래가 아닌 자신이다. 뜻밖에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작가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안식을 얻고, 진정한 본연의 나와 조우한다.

결국 고래는 무엇이고, 기다림이란 뭔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기다림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각자의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때론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린다. 인간의 삶에 내재된 보편적 기다림.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 깃든 희망이다.

김남효에게 기다림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고 자기연민이다. 짧고 달콤한 결과보다 길고 쓰디쓴 과정이 더욱 값지고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경험이고 우리는 단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있을 뿐이다.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를 품고서. 그래서 기다림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글=박현희 사진평론가







김남효

◇약력=1967년 경남 하동 출생. 울산 한화케미칼 재직. 개인전 '고래를 기다리며' (2010년, 울산 와우갤러리), 단체전 'Odyssey-태홧강' (2011년, 울산 영상아트갤러리) 등 30여 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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