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53> 울주 고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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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안개 여기가 어딘지… 언젠가 그리울 봄날 雨中山行

고헌봉 아래에는 높이 1m 남짓한 돌무덤 수십 기가 산재해 있다. 돌무덤 숲 사이로 진달래꽃이 만개하고, 안개까지 피어오르니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다.

산을 오르는 일은 어찌 보면 인생의 축소판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능선이 높으면 골도 깊다. 인생의 긴 여정에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이, 산도 마냥 맑은 날에만 탈 수는 없다. 이번 주 '산&산' 취재를 떠날 때도 봄비가 내렸다. 좀 망설이다 우중산행(雨中山行)을 결심했다. 고난을 이겨내면 삶이 풍요로워지듯이 빗속 산행은 색다른 재미를 안겨 줬다. 산행지는 울산 울주군의 고헌산(高獻山·1.034m)이다.

고헌산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과 두서면, 언양읍에 걸쳐 있다.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등과 더불어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7개 산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 가장 낮다. 큰 바위들이 기세등등한 다른 산과 달리 고헌산은 흙산으로 볼품이 다소 떨어진다.


바위 별로 없는 호젓한 흙산
가뭄 들면 기우제 지내던 곳

잦은 비에 숲은 생기가 가득
맑은 날엔 가지산 신불산 조망



산행길도 줄곧 숲 속으로 뻗어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도 시원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산을 찾는 이들이 비교적 적어 한적하다. 하지만, 싱그러운 숲 속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호젓하게 걷는다면 이만한 호사가 없다. 산행 코스는 상북면 신기마을 보성빌라 입구~김해김씨 가족묘~5푼 능선 전망바위~너덜 지대~7푼 능선 전망바위~고헌봉~고헌산~산불초소~쉼터~소나무봉~능선 갈림길~건천못~굴다리~상북면 주민자치센터다. 모두 13.2㎞로 4시간 30분가량 걸렸다.

고헌산은 특이하게 '바칠 헌(獻)'자가 이름에 들어 있는데 아무래도 기우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고헌산은 산 전체가 흙산으로 물을 많이 품고 있는 산이다. 계곡에 물이 많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언양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고헌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높은 곳(高)에서, 기우제를 드린(獻)' 데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산행은 울주군 상북면 신기마을에서 시작한다. 들머리에서 본격 산행에 돌입하는 초입 구간이 상당히 복잡해 신경 써야 한다. 일단, 승용차로 상북면사무소에서 궁근교 방면으로 지방도로를 타고 들어가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1분 정도 달리다 보성빌라가 보이면 차를 세운다. 보성빌라를 정면에 두고 왼쪽 길을 잡아 동네로 접어든다. 첫 번째 동네 골목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방향을 튼다. 정면에 광천아파트가 나타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산을 향해 나아간다. 동네를 빠져 나오면 시멘트 임도를 만난다.

동네를 빠져 나오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임도는 숲을 향해 펼쳐졌다. 부쩍 높아진 기온에, 비까지 자주 뿌려주니 숲은 생기가 가득하다. 여름을 앞둔 활엽수 잎은 벌써 아기 손바닥 크기로 자랐다. 산 아래 진달래는 꽃잎을 떨어뜨리고 잎을 키우고 있다.

임도를 따라 2분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비석 없는 묘지가 하나 있고, 다시 1분가량 전진하면 경주 김씨 가족 묘지가 나온다. 시멘트 임도가 끝나고 폭 1.3m가량의 비포장 임도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인내심 테스트다. 고헌봉(1,035m)에 오를 때까지 2시간가량 줄곧 오르막이 펼쳐진다. 몸은 비에 젖어 무겁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그나마 공기가 싱그러워 참을 만하다.

경주 김씨 가족묘지에서 100m가량 올라오면 갈림길이다. 넓은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꺾어 지능선을 타고 올라간다. 지능선으로 2분여 올라가면 무덤 수십 기가 불규칙하게 배치된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묘지 사이 오솔길을 따라 계속 전진한다.



조금 뒤 지능선들이 합류하는 갈림길이다. 아까 버린 임도도 이곳에서 합류한다. 계속 전진한다. 5분가량 오르니 왼쪽에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오늘 산행길은 숲에 둘러싸여 좀처럼 전망이 트이지 않았는데 반가웠다. 전망바위에 오르니 가지산 쌀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곧 구름에 둘러싸여 버렸다. 전망바위에서 다시 5분가량 오르면 오솔길이 두 개로 갈리는데, 오른쪽으로 꺾어 너덜지대를 지나 701.8봉이 왼쪽에 보이는 전망바위까지 단숨에 치고 오른다. 20분 소요.

7푼 능선을 넘어서니 풍경은 이른 봄으로 바뀐다. 진달래가 아직까지 피어 있고, 활엽수들은 이제야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지난가을부터 쌓였던 낙엽들도 그대로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빗방울이 낙엽 위로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에 젖은 낙엽은 미끄럽다. 몇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지길 반복했으나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흙산인 고헌산의 등산로가 푸슬거리는데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 푹신했다.

경사 급한 등산로를 따라 30분가량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9푼 능선에 또 다른 전망바위가 있다. 바위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인데, 안개 때문에 사방 분간이 어렵다. 절벽 주변으로 진달래가 하염없이 피었고 철쭉도 꽃봉오리를 맺은 상태다. 봉오리를 뜯어 보니 붉은 잎을 머금었다. 1~2주 안에 필 것 같다. 진달래 꽃잎을 한 움큼 뜯어 입에 넣으려 하자 동행한 산행대장이 말린다. 요즘 진달래를 함부로 먹지 말란다. 독성이 있는 철쭉꽃과 구분이 어려워 중독될 수 있다고 한다.

9푼 능선 전망대에서 5분가량 더 오르니 마침내 고헌봉이다. 정상석 주변으로 30~40㎡ 정도 평지에는 키 작은 진달래가 피어서 정상석을 둥글게 감쌌다. 오늘 코스 중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좁고 옹색하다. 한층 사나워진 빗방울과 안개로 사위는 꽉 막혔다.



여기서 길을 잘 잡아야 한다. 이정표가 없고 등산로가 사방으로 나 있기 때문에 고헌산으로 향하는 경로에서 벗어나기 쉽다. '산&산'도 기왓골 방면으로 경로를 잘못 잡아서 1시간가량 시간을 허비했다. 정북향을 향한 상태에서 오른쪽 3시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고헌산으로 갈 수 있다.

고헌봉에서 고헌산 정상은 5분 거리다. 가는 길에는 높이 1m 남짓한 돌무덤 수십 기가 산재해 있다. 볼품없는 돌들을 쌓아 만든 탑의 모양 역시 볼품없다. 하지만 수십 기가 숲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로 진달래꽃이 만개하고, 안개까지 피어오르니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같은 느낌이다.

고헌산 정상에서도 전망 구경은 불가능했다. 맑은 날이면 영남알프스의 맹주인 가지산과 신불산이 보인다고 한다.

비에 젖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다. 고헌산 정상 이정표에 따라 소나무봉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하산길 초반엔 길이 뚜렷하다. 6분 남짓 내려가면 만나는 산불초소 갈림길에서는 쉼터 방면으로 직진한다. 6~7분 능선을 내려가다 바위가 살짝 솟은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후 능선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이내 왼쪽으로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된다. 무성한 철쭉 군락지를 지나 단조로운 내리막이 계속된다. 소나무봉을 지나 30분가량 내려가면 능선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1시간가량 내려가면 날머리인 상북면 주민자치센터가 나온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울주 고헌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울주 고헌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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