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억겁의 시간이 고인 이승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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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든다. 사진은 마차푸차레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구간을 묵묵히 오르고 있는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어느 날, 여기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내가 그림 같은 해변이 펼쳐지는 휴양지로 떠나는 걸로 생각했다. 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선택했다. 이름만 들어도 험해 보이는 그곳, 그것도 여자 둘이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 높은 데를 왜 가는데. 돈 받고 올라 가는 거야?" 이런 질문이 쏟아졌다.



네팔은 전 세계 8,000m가 넘는 산 14개 중 8개가 있는 '세계의 지붕'이다. 네팔의 인구는 3천만 명이 안 되지만 그보다 많은 3천300만의 신이 있는 '신의 나라'이기도 하다. 순백의 안나푸르나('풍요의 여신'이라는 뜻) 설산을 만난다는 생각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시작도 해 보지 않고 겁부터 먹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어느 길을 가든 정하기 나름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코스로 결정했다. 한발 한발 올라가다 안 되면 그때 돌아 내려오면 된다. 약간의 사전 정보와 고산병 처방약만 가지고 네팔로 떠났다. 준비되지 않은 부분은 행운으로 채워지리라 믿었다.(혈관확장제인 비아그라가 고산증 약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200㎞ 떨어진 포카라에는 히말라야에 오르려는 전 세계 트레커들이 모여들었다. 포카라에서 히말라야 설산의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페와 호수를 만났다. 눈이 녹은 맑은 물에 잠긴 마차푸차르(6,998m)의 그림자,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둘로 갈라져 보였다.

산길을 걸으며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었다. 산을 보며 저절로 명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누추해도 몸을 누일 수만 있는 작은 공간만 있어도 행복해졌다(편안한 내 방 침대가 그렇게 고마울 줄이야). 산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동안 마주치는 여행자들과 "나마스떼(당신 안의 신께 경배)"라고 인사하는 동안 마음은 경건해졌다. 풍요의 여신은 일상을 돌아보고,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비록 최고의 날씨에 최고의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안나푸르나 설산 트레킹은 충분히 멋졌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주어진 그때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멋진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



지금 처한 위치, 가진 것이 불만이라면 안나푸르나로 한번 떠나보라고 권하게 되었다. 산에서 단순한 삶을 살며 "나마스떼"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가진 행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왜 거길 가느냐고? 자연의 최고 지점에서 나와의 만남! 이 맛에 안나푸르나를 간다.



안나푸르나=박나리 기자 nari@busan.com

사진=이혜정 자유여행가 anr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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