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도 피폭 '보이지 않는 뱀'에 계속 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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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반핵단체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 여자들' 쿠로다 세츠코 씨

21일 부산 부산진구청 강당에서 반핵아시아포럼 행사가 열렸다. 발표자인 쿠로다 세츠코 씨는 일본 후쿠시마 난민들은 생계 때문에 핵물질 오염지역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고 증언했다. 강선배 기자 ksun@

"삶의 터전이 방사능으로 뒤범벅됐지만 떠날 수 없는 이가 태반입니다."

21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청 대회의실 무대에 선 쿠로다 세츠코(61·여) 씨는 갈 곳을 잃은 '후쿠시마 난민'의 피끓는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그녀는 26~27일 서울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선 '2012반핵아시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과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에서 몰려든 30명의 반핵활동가 가운데 1명이다.

쿠로다 씨가 속한 반핵 여성단체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 여자들'에 따르면 후쿠시마 현 인구 200만 명 가운데 제 발로 도시를 버리고 떠난 이는 겨우 7만여 명에 불과하다. 당국에 의해 강제 이주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민이 방사선보다 당장 산 입에 거미줄 칠 게 두려워 후쿠시마로 돌아왔다. 쿠로다 씨는 "장기 대출로 집을 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현지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은 친구가 있는 곳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후쿠시마를 떠난 이도 인근 현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가족만 떠나보내고 직장 다니는 '기러기 아빠'는 남겨둔 상태라고.

쿠로다 씨가 살고 있는 고리야마 시는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60km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북서풍이 불면서 상대적으로 방사능 피폭이 심했다. 방 안에서도 0.10~0.15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이 측정될 정도. 방 안에 누워만 있어도 정상적인 자연 방사선의 3~4배에 달하는 피폭을 당하고 있다.

최근 후쿠시마 현을 방문한 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 크리스 버스비 과학사무국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리에는 장을 보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모두 감지기로는 '보이지 않는 뱀'에 계속 물리고 있는 셈이다. 쿠로다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놀러오던 딸과 손자를 이제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됐다"며 "그 날부터 팽개쳐진 장난감과 인형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사고 1년을 지나 후쿠시마 현에서는 학교마다 운동장 표토 제염작업이 한창이다. 제염이라고는 하지만 불도저로 운동장 표면을 깎아 다시 한 쪽 구석에 묻을 뿐이다. 가로수의 껍질을 벗기고 건물 지붕은 고압수로 씻어내리고 있지만 그렇게 흘러간 방사능은 하수구 처리장에 오니 형태로 농축될 뿐이다.

일본 정부는 어용학자를 동원하는 한편 '힘내라, 후쿠시마' 캠페인 등으로 귀촌을 대대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쿠로다 씨는 "캠페인과 제염 작업에 20~30년간 10조 엔 이상을 쏟아붓겠다는데 이는 결국 핵발전소 재가동과 핵발전소 수출의 수순이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쿠로다 씨는 후쿠시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서글픈 처지를 한 주부가 남긴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이라는 시로 전했다.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 내가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심호흡 하는 습관이 없어진 것/ 예를 들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방사선 선량계와 마스크를 챙겨나가는 딸의 뒷모습에 가슴이 아프다는 것/ 예를 들어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그래도 우리 지역은 선량이 낮다"며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한다는 것/ 예를 들어 6살 딸이 장래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 …매일 화내는 것. 매일 비는 것.' 권상국 기자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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