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인+간)] 부산 출신 명품 조연 나의 인생 나의 연기 조진웅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종의 칼 무휼' 어디 가고 '부산깡패'로 언제나 배역 속 인물로 살아갑니다

조진웅이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전성시대를 활짝 연 데는 이유가 있다. 캐릭터에 따라 몸무게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노력도 그중 하나다. 박희만 기자 phman@

 요즘 부산 출신 배우 조진웅(36)의 주가가 고공 행진이다.

지난 2003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찍으며 충무로에 입문한 이후 올해로 10년.

어느덧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조진웅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를 만나 '나의 인생, 나의 연기'를 놓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예명은 알고 보니 부친 성함

조진웅의 본명은 조원준. 그렇다면 예명은 어떻게 지은 것일까. "아버지 이름이에요."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왜 그랬을까. "영화를 할 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아버지께 '이름을 예명으로 써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젠 이름도 갖고 가냐'고 시큰둥해하며 허락해 주셨죠."

다섯 살 위의 누나를 둔 그는 1남 1녀 중 막내.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태어나 인근 성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동파이프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부친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그 역시 부산을 떠나야 했다. 이후 잦은 이사로 당시 서울의 변두리 격인 세곡동, 오류동과 경기도 성남으로 오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꼬마' 조진웅은 붙임성과 사교성이 좋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부산서 전학 오니까 아이들이 꽤 놀렸죠. 조막만 한 아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어떤 놈입니까. 그 친구들 잔뜩 모아놓고 아예 사투리를 가르쳐줬지요."

학창 시절 그는 연기와 그다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영화 관람을 좋아했고 고교 시절 연극반에 들어간 것이 고작인 '보통소년'이었다. 그가 오늘날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고교 때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수능 성적을 받고 고향에 있는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는데 덜컥 합격한 거죠."


경성대시절 연극이 곧 종교
입학하면서 극단활동 병행
수십 편 무대 선 '무식한 연극쟁이'
우연히 '말죽거리 잔혹사' 출연
충무로 러브콜 쏟아져

'뿌리 깊은 나무'선 무사
'범죄와의 전쟁'선 조폭
출연작마다 미친 존재감
안방·스크린 오가며 인기몰이



■연극이 종교 같았던 대학 시절

보따리를 싸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왔다. 연기에 갈증을 느끼던 그에게 대학 생활은 '물 만난 고기' 같았다. 그러곤 연극을 운명 삼아 '인생 2막'을 열어나갔다. 입학하자마자 학교 수업과 극단 활동을 병행했다. 대개의 연극은 3개월 연습 후 1개월 공연이었는데 겹치기 출연이 많았다. 배우층이 엷은 탓에 청년에서 노인까지 역할도 다양했다. "제 덩치가 좀 크잖아요. 만약 서울 대학로에 일찍 진출했다면 신체적 조건 때문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을 텐데 부산 연극판은 좁은 바람에 안 해 본 역할이 없을 정도로 다 해 봤어요."

성격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불같다. 술을 마셔도 술통에 빠지듯 폭음을 했다. 연극을 하면서도 이런 모습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스스로 마음속으로 '선언문'을 썼죠. 좀 유치할지 몰라도 '연극을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뭐 이런 거였죠." 그런 모습을 본 후배들이 "형은 연극을 종교처럼 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번은 서울에서 1964년 창단한 세계적 극단인 프랑스 태양극단이 공연차 방한했다. 연극에 굶주렸던 그는 후배들을 챙기고 승합차를 빌려 한걸음에 서울로 올라와 관람했다. "그때가 2001년이었는데 그토록 선망했던 극단이 한국을 찾은 거죠. 도저히 부산에 있을 수 없어 서울 공연을 보았는데 입이 쩍 벌어지는 거예요. 전 그때 '우리 같은 사람도 저런 연극을 할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죠. 당시 눈물을 흘리는 후배도 있었고요. 충격을 받은 듯 부산에 내려올 때 모두들 차 안에서 한마디도 못하는 거예요. 전 다짐했죠. '태양극단을 따라잡자'고 말이죠."




■춥고 배고팠던 부산 연극판 10년

제대한 이후 그는 더욱 연극에 매달렸다. 20대 시절 어림잡아 30편가량 무대에 섰다. "연극이 배고픈 직업이기는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잖아요."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제가 서른다섯 살이 되도록 경제 개념이 없었어요. 금리도 몰랐고 주택청약도 금시초문이었죠. 영화와 드라마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고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해서 챙겨보기는 했는데, 그걸 예술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하지만 연극 무대는 춥고 배고팠다. 또 연극은 부산을 떠나 어디에서도 가능했기에 이따금 서울 대학로를 찾곤 했다.

이즈음 그는 우연히 '영화'를 만나게 된다. "2003년 서울의 길거리를 걷다가 군대 고참을 만났고 어느 술집에 들어가 소주 한 잔 걸쳤죠. 당시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연출부에 있었던 고참이 '너 영화 한 번 해라'고 권유했고 그게 인연이 돼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영화란 장르는 금세 조진웅을 유혹했다. 그렇게 부정하던 영화에 대한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영화 연기도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말죽거리 잔혹사' 촬영이 끝나고 다시 부산에 내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엔 충무로가 빙빙 맴돌았다.



■혼신의 힘 쏟아부은 '신인 시절'

그러던 어느 날 원빈과 신하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우리 형' 캐스팅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 연극계의 선배이자 영화 '완득이' 제작사인 유비유필름 김동우 대표가 "오디션 한 번 보라"고 귀띔해 준 것. 굵직한 조연이라서 3차까지 가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게 웬일. 작품의 연출자인 안권태 감독은 조진웅과는 경성대 연극영화과 동기로 다섯 살 많은 형이 아닌가. 아는 처지임에도 오디션을 세 번이나 보라고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화가 났다. 서울에서 마지막 오디션을 마치고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안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진웅아. 역할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캐스팅 통과 소식을 알렸다. 그 역시 '괘씸했던' 오디션 과정을 안 감독에게 물었다. "다른 배우와 너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었던 거니 오해하지 마라. 아는 사람 있다고 작품에 들어간 거 아니니 자신감 갖고 연기했으면 좋겠고…." 인생 선배의 사려 깊은 행동에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온 힘을 다했다. 비교적 큰 덩치임에도 안 감독이 바보 두식 역할을 위해 기형적으로 살진 몸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비슷한 체형의 자폐아를 찾아내 관찰하고, 정신과 병원에 가서 자료를 받기도 했다. 몸무게를 128㎏까지 불리며 영화 속으로 푹 빠졌다.
 

10년간 연극하며 깨친 진리?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역할 작을수록 더 꼼꼼히 하죠
배역 따라 40㎏ 찌웠다 뺐다
밥 먹듯 체중조절 합니다

내 연기의 젖줄은 부산
쉴 때도 고향 내려가 재충전…
혼신 다해 연기한 10년
나! 끊임없이 변하는 광대가 좋다

조진웅의 출연작. '뿌리 깊은 나무' '퍼펙트 게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글러브' '고지전'.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 알린 '뿌리깊은 나무'
 
굵직한 작품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여전히 충무로에서 그는 '신인'이었다. 감독과 제작사 사이에서 조진웅을 놓고 '제대로 된 물건 하나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라는 곳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조진웅이 바빠졌다. '쌍화점' '폭력써클' '마이 뉴 파트너' '미녀는 괴로워' '베스트셀러 극장' '고지전' '글러브' 등 비록 역할은 작았지만, 출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 '솔약국집 아들들' 등 안방극장으로 나들이도 분주해졌다.
 
지난해 SBS '뿌리깊은 나무'로 비로소 대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로 본격 얼굴을 알렸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명을 수행할 것입니다"란 명대사를 남기며 세종대왕(한석규)에 헌신하는 호위무사 무휼 역으로 그는 시청자들에게 꽤 긴 잔상을 남겼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한 뒤 8년 동안 40여 편에 출연했는데 이 드라마를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라고 주저 없이 꼽는다.
 


■카리스마 넘치는 '신 스틸러'
 
조진웅은 요즘 관객 300만 명에 육박하며 흥행몰이가 한창인 '범죄와의 전쟁'에서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주연은 아니지만 강렬한 연기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명품 조연'이란 뜻이다.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넘버원'이 되고자 했던 나쁜 놈들의 한판 대결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비열한 조폭 보스 김판호를 맡았다.
 
우연히 히로뽕을 손에 넣은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이 폭력배 두목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판호는 '경주 최씨 일가' 익현과 형배가 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인물이다. 비위에 거슬리는 이들에게 무차별 린치를 가한다. 비열한 미소에 왼쪽 뺨에 큰 흉터가 있는 파마머리 판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이죽거릴 땐 '세종의 칼' 무휼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개봉과 방영시기는 달랐지만, 지난해 '뿌리깊은 나무' '퍼펙트 게임' '범죄와의 전쟁' 세 작품을 동시에 촬영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 촬영장과 드라마 촬영장을 오가야 했지만 거기서 생긴 혼란은 없었죠. 영화는 영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는 사전 제작 작품이 아닌 경우 매회 때마다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그런 재미가 덜하죠. 연극은 실시간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매력이 만만치 않고요." 
 

범죄와의 전쟁'에서 비열한 조폭 두목 김판호 역을 맡은 조진웅은 '나쁜 남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부산은 조진웅 연기의 젖줄
 
'명품 조연'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의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다. "연기 입문 10년째인데 이제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연기관이 궁금했다. "연기도 야구처럼 일종의 '멘탈' 게임인 것 같아요. 캐릭터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끝까지 가봐야 하는데 전 현장에서도 '좋은 장면 뽑아낼 때까지 무조건 가자'고 늘 얘기하죠. '퍼펙트 게임'에서 최동원과 팀을 위해 끝장 승부를 외치는 김용철처럼 말입니다."
 
그는 캐릭터 분석력이 뛰어나다. "캐릭터를 연구하지 않고는 현장에 가지 않아요. 10년간 연극을 하며 깨친 진리죠. 작은 역할일수록 더 꼼꼼히 고민하고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를 완전히 버리죠." 어디 그뿐인가. 그는 체중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이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우리 형' 때는 128㎏, '마이 뉴 파트너'  때는 78㎏이었고,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때는 120㎏이 됐다가 '퍼펙트 게임' 때는 85㎏으로 내려갔다. 그가 들려주는 '체중 지론'이 재미있다. "집안 자체의 골격이 커요. 이렇게 나온 거 어쩔 수 없잖아요.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 리암 니슨이나 포레스트 휘태커는 큰 덩치지만 연기가 좋고 저 역시 이런 신체적 특징을 장점으로 살려야죠."
 
그에게 고향이자 대학 시절을 보낸 부산은 어떤 곳일까. "젖줄 같아요. 제 연기의 출발점이잖아요. 그래서 연기를 쉴 때 무작정 부산을 내려가 마음의 평화를 얻죠." 인터뷰 말미,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그동안 제 작품을 보고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던 아버지가 '범죄와의 전쟁'을 보곤 한마디 하시더군요. '연기 아주 좋았다'고 말이에요. 경상도 사람들의 반응이 좀 늦잖아요. 제가 배우 입문 이후 아버지로부터 칭찬 들은 건 처음이었죠." 이름까지 슬쩍 빌려와 배우 예명으로 쓰고 있는, 그래서 가장 까다로운 관객인 아버지에게서 들은 찬사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그러곤 촬영 중인 방은진 감독의 '완전한 사랑' 현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약력

1976년 3월 3일생 (본명 조원준)
조진웅-박정순 씨의 1남 1녀 중 막내
부산 성동초등-서울 오류중 -경기 성인고- 경성대 연극영화과

▶ 연극
'바리데기' '앵무가' '맥베드' 등 30여 편 출연

▶ 뮤지컬
'남자넌센스' '밟아' 외 다수

▶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뿌리깊은 나무'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 '우리형' '강적' '비열한 거리' '폭력써클' '마이 뉴 파트너' 'GP506' '날아라 펭귄' '쌍화점' '달콤한 거짓말' '맨발의꿈' '베스트셀러' '부산' '국가대표' '살생유희' '퍼펙트 게임' '글러브' '고지전' '범죄와의 전쟁' '완전한 사랑' 촬영 중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