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근대를 걷다] 4. 군집시설
인파로 북적이던 군부대·시장… '사람의 공간'으로 재활용해야
일찍부터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던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제 관련 건축물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군사시설은 특성상 군집을 이루며 특정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다. 가덕도 외양포에 있었던 일본 군사시설이 대표적이다. 아직도 이곳은 그 시설물이 곳곳에 남아 아픈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미군부대로 사용됐던 옛 하야리아 부대나 남포동 건어물도매시장 역시, 군집시설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하야리아 부대 내 건물은 대부분 헐리고 일부만 남아 있다. 남포동 건어물도매시장 또한 일식 상가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색하게 현대 구조물로 옷을 바꿔입고 있다.
■ 마을 전체가 군사시설의 흔적
부산 강서구 가덕도 외양리 외양포. 가덕도 남단에 있는 포구로 가덕도 내에서는 가장 작은 포구다. 이곳에는 일제가 구한말부터 축조해 패망 직전까지 가동했던 군사시설 유적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1904년부터 러일 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설치한 포대진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인공적으로 만든 언덕이 바로 그것이다. 가덕도 서쪽으로는 일제가 구축한 군항인 진해항을 끼고 있어 부산항과 진해항을 막아주는 방어기지로는 적격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내쫓고 토지를 강제로 사들여 포대사령부실과 부속시설, 포대진지를 설치했다. 이후 그들은 패망 때까지 수차례 증·개축을 통해 외양포를 요새화한다.
버려진 마을 '가덕도 포대진지'
전쟁 상흔 돌아보는 역사교훈지로
남포동건어물시장 오래된 가게 등
조금만 손질하면 '근대사 보고'
포대진지 입구에는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 소화십일년(昭和十一年)' 등의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비석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새롭게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아치형의 수많은 벽체로 된 임시포탄저장소와 각종 탄약류를 저장해 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탄약고 형태의 저장 창고도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포대진지는 폭 18m, 길이 78m의 장방형 평면으로 바닥은 시멘트로 평탄하게 정리돼 있다. 사방에 인위적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대나무 따위를 심었다. 저수지를 언덕으로 둘러싼 형상이다. 언덕 위로 올라가 공중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내부를 전혀 알 수 없게 한 구조다. 적의 포탄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흙을 얹고 풀과 나무를 심은 엄폐부도 있다.
포대진지는 관리가 안 돼 거의 버려진 형국이다. 탄약고 곳곳엔 건초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포대진지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마을로 이어진다. 동행했던 상지건축부설연구소 선임연구원 홍순연 박사는 "이 마을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포대진지를 증·개축(1904~1936년)하면서 군대막사나 창고로 만들어진 일제 건물"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 중에는 한눈에 군대막사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을에는 현재 일본군 막사나 창고로 사용했던 건물 20여 동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흔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동네에 남아있는 우물. 4곳 가운데 3곳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1곳은 아치식으로 만든 구조물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어 역사의 흔적을 고증하고 있다. 마을엔 애초 9개의 우물이 건설됐다는데, 우물의 규모로 미뤄 당시 1천 명이 넘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 대항리 해안에는 암벽을 뚫어 철근콘크리트로 구축한 포대진지도 남아 있다.
■ 시장은 살아있는 근대건축물 보고(寶庫)
부산 중구 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엔 부산 특유의 바다 냄새가 난다. 현재 150개 상가(번영회 기준)가 옹기종기 모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상가가 여러 곳 밀집해 골목을 이루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은 70~80여 년 전 시작됐다고 한다. 1930년대 남항 해안이 매립되고, 영도대교가 개통했던 1934년부터 상가가 조성돼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 현재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건물은 그 무렵 만든 것으로 보면 된다.
시장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식 가옥들은 대부분 2층 규모다. 1층은 가게로, 2층은 집으로 사용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시장에서 형제상회를 운영하는 김형두(66) 씨는 "세월이 흘러 지금은 2층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곳이 다반사다. 나도 2층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일식 가옥은 목구조 형태에 눈썹지붕을 기본 모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로 된 비늘판을 겹겹이 붙인 외벽으로 마무리한 건물도 간혹 보인다. 부산 최초로 야간 카바레로 사용했다는 건물도 시장 안에 있다. 1층이 리모델링돼 2층 일부 전면부 벽체만 옛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 건물이 공들여 만든 서양식 건물임은 창의 모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부 건물 지붕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만든 방화벽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부산진구 범전동, 연지동 옛 하야리아 부대 내 건물도 근대 건축물로 보존할 가치가 컸다. 하야리아 부지는 미군 점유의 역사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흔적까지 근·현대사의 단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야리아 부지에 남아있던 300여 동의 건축물은 근·현대사의 단면을 묵묵히 말해주던 산증인이었다. 하지만 시민공원을 조성한다며 건물 대부분을 헐어버렸다. 현재는 일부 건물만이 역사의 흔적을 뒤로하며 그 자리를 외롭게 지키고 있다.
■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나
가덕도 외양리 외양포 포대진지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다. 도시건축재생연구소 '건전지' 나춘선 대표는 "이런 포대시설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시설이다. 언제까지 수풀과 쓰레기장으로 내버려둘 수 없다. 이런 시설을 이렇게 버려둘 게 아니라 관광자원화하면 얼마든지 좋은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이곳을 아픈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교육과 체험 공간으로 이용한다든지, 혹은 조금만 손을 봐서 여름 음악회나 야외 전시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덕도 내 다른 유적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양포 일본군 포대진지 인근에는 가덕등대(1909년 건립)가 있고, 가덕도 내엔 왜성과 연대산 봉수대, 흥선대원군 척화비, 두문 지석묘 등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아우르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과 관련해서는, 마구잡이로 시장 건물을 헐어버리고 현대시설을 지을 것이 아니라 일식 가옥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낼 방안을 상인들과 협의해 모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고 제안했다. -끝-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부산일보, 동아대 건축학과 역사이론연구실, 도시건축재생연구소 '건전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