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근대를 걷다] ② 산업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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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대륙침략의 '손발' 철도 항만… 현대인에겐 살아있는 근대사 교과서

부산에는 공공시설만큼이나 근대 산업시설 또한 그 흔적들이 즐비하다. 근대 산업시설 중에서도 철도와 항만, 교량 관련 시설은 부산의 지리적 조건 덕분에 열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 창고 건물 속 구조적 아름다움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동 코레일(KORAIL) 부산철도차량정비단. 시내 한복판에 있지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조차 이곳을 방문해 본 사람은 손꼽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 건립된 건물이 즐비한 이곳은 근대사의 보고(寶庫)이다.

부산철도차량정비단 일반기지(일반·화물차량 수리와 검사) 내 70여 개 건물 중 9개 건물이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부산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대륙 침략 전초기지였다. 되돌아보면 동래역이나 부산철도차량정비단 내 시설들이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애초 이곳은 1905년 우리나라 철도 개설과 동시에 초량기계공장이란 이름의 차량정비시설로 건설됐다. 6·25전쟁 때는 부산항을 통한 군수물자 조달과 수송 기능을 담당했다.



부산철도차량정비창 건물들

지붕 창·환기 구멍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

근대건축 빼어난 구조미 선봬



아이들이 공장 건물을 그릴 때 흔히 표현하는 삼각파도 형태의 지붕이 먼저 눈길을 끈다. 도장 작업을 목적으로 지어진 객차 도장 작업장이다. 도장을 하는 공간이라 원활한 통풍이 급선무이다 보니 지붕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낸 둥근 환기 구멍이 독특하다.

객차 강판작업장은 더 특이하다. 창고 지붕이 일본 무사들이 머리에 쓰는 투구와 흡사하다(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창고에서조차 일본풍이 느껴져 씁쓸했다). 외부에서는 4개의 지붕으로 돼 있어 각기 다른 창고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하나의 건물이다. 지붕에는 3m 정도 간격으로 환기시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동행한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시 이런 창고 건물을 만들 땐 빛과 환기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요즘 창고 건물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환기 구멍과 천장의 창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 건물의 지붕엔 채광시설이 돼 있다.

대차작업장 창고는 길이가 족히 80m는 됨직하다. 천장 높이도 다른 창고보다 훨씬 높다. 크레인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사방으로 두꺼운 H자 모양의 철 기둥 수십 개가 창고를 열 지어 받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천장에는 빛이 들어 올 수 있게 2개의 긴 수평 창을 냈다. 천장에 설치된 철골 트러스가 눈부시다. 동아대 건축공학과 안재철 연구원은 "공장 건물로 지어졌지만, 트러스의 반복과 이를 통한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은 근대 건축 최고의 구조미를 보여준다"고 했다.

어긋난 사다리꼴 형태를 한 객차봉공작업장, 팔자(八)모양의 박공지붕을 가진 디젤기관차 제1작업장. 당시 흔치 않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경리 1창고, 영화촬영지로 인기 있는 구청사도 있다. 하지만 몇몇 건물을 제외하곤 대부분 작업 중이라 건물 내부가 공개되지 않아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성지곡 수원지로 옮겼다.

■ 100년 넘은 성지곡 수원지

등록문화재 제376호인 성지곡 수원지(부산 부산진구 초읍동)는 부산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한 최초의 근대적 수도시설이다. 수도용으로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높이가 28m, 길이가 112m에 달한다. 상수도가 각 가정에 본격적으로 공급된 것은 서울이 가장 이르다. 하지만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 처음 도입된 것으로 따진다면 부산이 서울보다 앞선다. 성지곡 수원지 때문이다. 성지곡 수원지는 일본 기술진에 의해 1907년 5월 공사를 시작해 3년여 만에 완공했다.

부산, 인천과 같은 개항장 도시들은 1876년 개항 이후 외국인의 급속한 증가로 상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대두했다.공사 기간을 수원지 댐 중간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축 중앙에 새긴 비에는 공사 기간과 기술진의 이름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비명에는 일본인 기술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댐 단면을 보면, 물에 접하는 안쪽은 수직에 가깝다. 반면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급격하게 폭이 줄어드는 형태다. 그래서 댐의 곡선이 미려하다.

댐 아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석축 오른편 상단에 댐의 축조 연대를 적은 표석이 보인다. 표석에는 '융희 3년 준공'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애초 그 옆에 일본식 연호('명치 O년')가 새겨져 있었으나 시멘트로 메워 놓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조금 더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수문에는 '물을 마시며 수원을 생각하라'는 뜻의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 현판도 볼 수 있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소리에 문득 깊은 숲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에 빠진다. 안타까운 것은 수원지 어디에도 성지곡 수원지의 역사를 말해주는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다는 것. 댐 오른편에 붙어 있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현판이 쓸쓸해 보인다.

이 밖에도 근대 산업시설로는 영도대교(1932년), 구포대교(1933년) 등의 교량, 수정산 배수지(1910년), 복병산 배수지(1910년), 법기수원지(1932년)와 같은 수도시설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적 수도시설

성지곡 수원지 콘크리트 댐

영도·구포대교, 복병산 배수지 등

교육의 장 활용방안 모색해야



■ 살아 숨 쉬는 산업시설 어떻게 할까

코레일(KORAIL)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 대해서는 근래 이전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전하면 이곳을 의료특구로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심지어 아파트로 개발하겠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김 교수는 "이전하더라도 하야리아 내 건물처럼 깡그리 없애버릴 게 아니라 창고 건물만큼은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철도산업이나 항만은 근대 도시가 만들어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다. 김 교수는 "당장 이전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산업 문화유산으로써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에 19세기까지 사용되던 조선소 건물을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한 이탈리아 베니스가 문득 떠올랐다.

근대 산업시설물을 활용한 사례는 일본 하코다테의 가나모리 창고가 대표적이다. 1909~1910년에 건설된 가나모리 창고는 1980년대 들어 세이칸 연락선의 운행이 중지되고 물류 시스템이 바뀌면서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지역 활성화의 장치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가나모리 창고는 '히스토리플라자'를 거쳐 1991년 '하코다테 유니언스쿼어'라는 문화상업시설로 탈바꿈한다. 가나모리 창고의 사례는 일본 역사적 건조물 재활용 범위에 '창고'가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근대사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적 시기로 우리의 민족사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시기다. 하지만 그동안 외세의 강점과 항거라는 일면적 시각에 머물러 제대로 된 접근을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였고, 문화였다.

글=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부산일보, 동아대 건축학과 역사이론연구실, 도시건축재생연구소 '건전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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