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500m 고산지대의 삶 그 얘기 한번 들어 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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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두건으로 멋을 낸 자오족 여성. 그녀는 올해 60세라고 했다.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 에서 고산지대 소수민족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새벽 안개에 뒤덮인 산 속 마을은 신비롭다. 식사를 하다 창 쪽을 바라보니 구름이 발밑에 걸려 있다. 구름 위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 해발 1,500m가 넘는 베트남 고산지역이 이렇게 다가왔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소수민족들은 평지를 놔두고 왜 높은 산으로 올라왔을까. 많은 게 부족한 산에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또 문명의 혜택을 받아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기 위해 굳이 여기까지 찾아가는 것일까.


변해가는 고산 마을 '사파'

밤 10시가 다 되어 하노이를 출발한 기차가 오전 7시 무렵 라오까이에 도착했다. 라오까이는 중국 윈난 성(雲南省)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하노이~쿤밍을 연결하는 국제열차도 라오까이에서 중국으로 향한다. 역 앞에서 '사파'라고 써 붙인 미니버스 가운데 한 대를 골라 탔다.

사파는 고산지대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사파까지 가는 길에 비가 내리며 물비린내가 났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반팔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점퍼를 꺼내서 걸쳤다. 같은 베트남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요기를 하러 갔다. 베트남에 왔으면 쌀국수를 꼭 먹어야 한다. 따끈한 국물에 몸이 금방 훈훈해졌다.


사파에는 우리나라 남해의 다랑이 논 같은 계단식 논이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어 장관이다. 보기에는 좋지만 경작지가 적어 생활이 궁핍하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들은 여행자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산을 내려온다. 관광객만 보면 몰려들어 물건을 사 달라고 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다. 순박했던 이들도 점차 변해간다. 만(Man)족은 이게 보기 싫었던지 머리를 깎고 더 높은 지역으로 옮겨갔단다.

사파에는 흐몽(H'mong)족이 가장 많이 산다. 19세기에 중국에서 내려온 흐몽족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 중 하나. 흐몽족 안에도 제각각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가진 블랙, 화이트, 레드, 그린, 플라워로 명명된 여러 개의 그룹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파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칙칙한 남색 옷을 입은 블랙 흐몽족이 가장 눈에 많이 띈다. 또 다른 소수민족 자오(Dzao)족은 빨간색 두건으로 멋을 냈다. 사파의 소수민족은 서로 부족은 달라도 아직도 전통의상만을 고집하는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여기서는 이게 럭셔리 투어다)를 빌려 마을 구경에 나섰다. 가축은 물론 아이들까지 방목한다. 돼지는 아침밥만 먹여서 내보내고, 아이들은 물소를 타고 논다. 사진을 찍는 이방인을 물소와 아이가 되레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틴사 폭포 앞에서 이곳의 전통 춤 공연을 구경했다. 옛날에 틴사 폭포에 7명의 선녀가 목욕을 하러 내려왔단다. 흐몽족의 총각이 옷을 훔쳐가는 바람에 선녀 한 사람만 남아서 아이를 낳고 살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이야기가 베트남에 전래되는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16~17살만 되면 결혼을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때를 놓친 노총각 노처녀인 20대가 '쩌띤(러브 마켓)'으로 가지 않을까. 토요일 저녁이 되어 사파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관광객들만 잔뜩 모여있지 쩌띤은 열리지 않는다.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현지인 한 분이 "사람들이 이제 TV, 컴퓨터, 핸드폰에 빠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쉽다. 하지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애써 자위를 한다.



아름다운 시장을 보다 '박하'

박하는 사파에서 93㎞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박하 시장 때문이다.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몇 년 새 훨씬 더 커졌다고 했다. 시장은 일요일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린다. 오지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은 여기에 오기 위해 3~4시간을 걷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하는 사파와는 때깔부터 다르다. 화려한 색깔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장'이라고 표현했던 말에 공감을 한다.


박하 주변에는 다이, 자오, 흐몽족이 섞여 산다. 박하 시장의 주인공은 흐몽족 가운데 단연 '꽃몽족(Flower H'mong)'. 빨강, 분홍, 노랑, 파랑, 초록이 섞인 옷을 입어 마치 꽃을 보는 것 같다. 이들은 행복을 부르는 색이라고 믿는단다. 스카프, 블라우스, 스커트, 앞치마에도 정교한 자수가 들어가 있다.

시장에는 평소보다 더 화려한 새 옷 꽃단장에 반지나 목걸이까지 하고 온다. 예쁘게 보이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키까지 아담해서 마치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들 같다. 옷을 고르는 여인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시장 구경은 즐겁다. 이발사들은 노천에서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이발에 열심이다. 빗자루 장수는 장사가 잘되었는지 돈을 세는 표정이 밝아 보인다.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 둘이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고 불러야겠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한 여성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한쪽 모퉁이에서 가축시장을 발견했다. 다리가 묶인 닭이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다. 빨간 플라스틱 양동이 안에 담긴 강아지가 혀를 날름날름하며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언덕 위에서는 소시장이 한창이다. 소 한 마리 가격이 1천500달러란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도 보인다. 예전에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을 베트남에 와서 만났다.

점심 때가 다가오자 먹을거리를 파는 난전 주변이 떠들썩하다. 쌀국수는 물론 내장탕에 순대까지, 우리 음식과 큰 차이가 없다. 가격이 저렴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옆자리의 현지 젊은이들과 소주잔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직까지 베트남 사파·박하지역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유럽에서 온 관광객은 많았지만 한국인은 만나지 못했다.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겠다.

같은 21세기를 살지만 우리와 참 많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들도 점점 더 우리와 비슷해지겠지만….

베트남 사파·박하=글·사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취재협조=베트남항공·한신항공·투어클릭


찾아가는 길

사파와 박하에 가려면 먼저 하노이에서 라오까이까지 이동해야 한다. 열차로 8시간 30분~10시간 20분, 버스로 12시간 걸린다. 열차는 급행(SP)과 완행(LC)으로 구분되는데, 열차 좌석은 여행사에서만 판매한다. 4인승 침대칸이 30달러 전후. 라오까이에서 사파까지 가는 미니버스는 10달러 전후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파에서 박하로 가는 차편은 각 호텔에서 일요일까지 모객해서 출발한다.

베트남 전문브랜드 투어클릭(www.tourclick.net)은 홈페이지에 사파 열차 시간표를 고지하고 사파, 박하로 가는 여행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단체 문의는 홈페이지에 나온 회원여행사를 통해 할 수 있다. 하노이행 베트남항공을 이용하면 라오까이까지 가는 기차를 당일 탑승할 수 있다. 한신항공(051-255-1686)을 통해 발권이 가능하다.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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