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오지마을 사파·박하] 인정 많았던 '우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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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의 소도시 박하에 일요일 장이 서자 멀리서도 사람들이 몰려 복닥거린다. 소수민족에 속한 한 여성이 언덕 위에서 장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파(Sa Pa)와 박하(Bac Ha)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베트남 북부 고산 지역입니다. 그동안 생각했던 베트남과는 너무 달라 이렇게 지명을 앞에다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하면 먼저 덥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여기는 선선하다 못해 겨울에는 눈까지 내립니다. 베트남에 내리는 눈, 기분이 묘합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중국과의 국경 도시 라오까이(Lao Cai) 행 야간 침대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국의 열차 여행에는 늘 낭만이 함께 합니다. 덜컹덜컹거리는 열차의 진동, 몸은 어느새 그 불편함에 익숙해집니다.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가 했더니 곧이어 차장이 문을 두드려 승객들을 깨웁니다. 진한 베트남 커피의 향이 아침이라 더욱 좋게 느껴집니다.

라오까이에서 사파까지 꼬불꼬불한 길을 미니버스로 천천히 달렸습니다. 사파의 서쪽에는 해발고도가 3,143m이나 되는 베트남 최고봉 판시판 산이 솟아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붕'과 붙어 있으니 길이 험할 수밖에요. 그곳까지 뭐 하러 갔냐고요? 글쎄요….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인 20세기 초부터 피서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답니다. 고산지대에 아기자기한 카페도 많아 마치 유럽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도 생깁니다. 이곳에는 베트남의 소수민족이 자리를 잡고는 제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통 복장을 한 여자들은 모두 등에다 대나무 바구니 하나씩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게 각자 삶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토요일 밤 사파에서는 '쩌띤(러브 마켓)'이라 불리는 파티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집단 맞선이라고 할까요. 스무 살 남짓한 청춘남녀가 모여서 춤을 추며 공개적으로 구혼 작전을 펼친답니다.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흥미진진합니다. 다음 날에는 박하로 옮겨서 일요일에 열린다는 장을 구경할 예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은 소수민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대감에 부풀어 음식점에 들어가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습니다. 흑돼지를 방목해서 키우는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반찬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꺼내자 일하는 분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보았다며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여기도 한류 바람이 거센가 봅니다. 김치를 좀 나눠주었더니 답례로 독한 베트남 소주가 돌아왔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한 잔이 아니라 두 잔을 마셔야 한다며 다시 권합니다. 한 번이면 정이 없다는 우리 풍습과 참 비슷하지 않습니까. 금방 훈훈해지는 게 꼭 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멀리 베트남에까지 온 까닭. 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 사파·박하=글·사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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