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정크 선과 정화가 타고나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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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이야기 6 / 중국의 돛배들

중국 전통 범선 정크, 쓰레기 배(?)

우리가 중국의 전통 범선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정크 선이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말의 어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이 영어의 쓰레기나 폐품 등을 뜻하는 junk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고유어의 발음이 정크와 유사한 데서 초래된 현상일 뿐이다. 영어사전에도 junk는 “쓰레기나 폐품”이란 뜻과 “평평한 중국 범선”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렇다면, “평평한 중국 범선”이 영어에서는 왜 junk로 표기되게 되었을까? 유럽의 제국주의 운운하는 사람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범선에 비해 중국의 전통 범선은 쓰레기 수준이라고 비하하여 junk라고 붙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법도 하다.
그러나 중국어 어원을 알고 보면 중국의 배를 junk라고 표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랍의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기록에 의하면, “원 나라 시대 중국 선박은 3개 등급으로 나뉘었는데, 가장 큰 것을 진극(眞克), 중간 것을 조(曹), 작은 것을 객극(喀克)이라 했다. 대선인 진극은 1천 명이 승선할 수 있는데, 그 중 선원이 600명이고, 나머지 400명은 병사들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법한데, 원대의 대선인 진극의 중국어 발음이 젠커이다. 따라서 ‘젠커’가 아랍인들이나 유럽인들 귀에는 ‘정크’로 들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국의 4대 범선

중국이 대륙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중국에는 광대한 대륙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많은 강들과 운하, 그리고 엄청난 길이의 해안선이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기 쉽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중국의 배>라는 문고판 책을 펴낸 적이 있는데, 그 다양한 종류와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배는 사용하는 수역에 따라 ‘강 배’, ‘바다 배’, ‘특수 배’로 나누었는데, 이 글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4대 해선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 모래톱에 내려 앉을 수 있는 사선(沙船) = 우리가 보통 ‘정크 선’하면 떠올리게 되는 선형이 사선이다. 중국의 북부 연안은 사주가 많은데, 이런 해역을 항해할 때는 첨저선은 좌주할 경우 전복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선저가 평평한 사선을 개발하였다. 청 건륭 연간에 발간된 <숭명현지>에 따르면, “사선은 모래톱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선은 주로 수심이 얕은 중국 북방 해역에서 항해하였지만,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등의 사원벽에도 사선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남아시아까지 항해하였다. 사선을 조선공학적인 견지에서 특징짓는 것은 편용골, 대랍, 수밀 횡창벽이다. 먼저 편용골은 선저의 평평하고 넓적한 용골을 뜻하고, 대랍은 사선의 양현에 선수미 방향으로 설치한 두꺼운 선각판으로 좌우 동요시 전복을 방지할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밀 횡창벽은 사선의 횡강도를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각 선창마다 수밀 구역으로 만들어서 횡강도를 유지하고 침수시 침몰을 방지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밖에 사선에는 피수판이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는 선저가 평평하여 너울이나 물결에 떠밀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 맞바람이 불 때 역풍항해할 때도 이용되었다.
대형 사선에는 돛 4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주돛대, 선수돛대, 선미돛대와 선수돛대 앞쪽 좌측에 설치한 ‘두칭(頭稱)’이라 부르는 작은 돛대가 있다. 키 자루(舵柄)의 길이는 2장이며, 닻은 3개인데, 무게는 각각 700kg, 600kg, 350kg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대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선은 1984년 출토되었고 1990년 복원되어 현재 중국 펑라이(蓬萊, 봉래) 둥주(登州, 등주) 고선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원대의 선박이다. 발굴 당시 잔존한 선체의 길이는 28m이며, 선폭의 가장 좁은 곳은 1.1m이고 가장 넓은 곳은 5.6m, 높이는 1.2m이다.

사선
자료 : Luc Cuyvers, Setting Sail, p.106.

△ 뾰족한 선수, 선미 넓은 복선(福船) = 복선은 푸젠성 연해에서 건조된 선박을 가리키는데, 그 형상은 선수가 뾰족하고 선미가 넓다. 양현은 밖으로 두드러져 나왔으며, 갑판은 평평하고 넓다. 일부 복선의 선수창 또는 선미창은 활수창(活水艙)으로 만들었다. 활수창이란 부력창이라고도 하는데, 만재흘수선 아래에 작은 구멍을 만든다. 항해할 때 선미나 선수가 수면 아래로 내려갈 때는 이 구멍을 통해 물이 유입되고, 수면 위로 올라올 때는 선창에 유입되었던 물이 서서히 배출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체의 급격한 상승을 방지하였다.
복선의 특징 중 하나는 선수 양쪽에 눈 모양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복선에는 대복선(大福船), 초선(哨船), 동선(冬船)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대복선이 가장 대표적인 복선이라 할 수 있다.
복선은 해전에도 활용되었는데, 선수미가 높이 치켜들려 있고, 선체가 거대하고 선저는 칼날같이 뾰족하고 갑판은 넓어 백여 명의 병사들이 승선할 수 있었다. 선체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를 꽂아 적들이 배에 기어오르는 것을 막았다.
선체는 4층으로 건조, 1층에는 흙이나 돌을 적재하여 선박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이용되었고, 2층은 병사들의 활동장소이며, 3층은 취사실과 돛, 닻 등의 선박비품을 놓아두는 곳이고, 4층은 노대(露臺)로서 대포를 장치하거나 활을 쏘는 곳이다. 병사들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적선을 공격할 수 있다. 대복선은 선체가 거대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고 풍력에 의해서만이 항행이 가능한데 순풍일 때는 위력이 상당하다.

복선
자료 : 石龍飛, <中國造船史>, f.1.

△ 흘수 크고 항해성능 좋은 광선(廣船) = 광선은 광둥성에서 건조된 해선으로 선수가 뾰족하고, 선체가 긴 특징이 있다. 광선은 흘수가 비교적 크고, 갑판의 굴곡이 작아 항해성능이 좋다. 선체는 횡으로 밀집된 늑골과 격창판으로 구성되었으며, 종으로는 용골과 대랍으로 이루어졌다. 광선의 앞쪽 양 뱃전에는 수직으로 움직일 수 있고, 선저 아래까지 뻗은 삽판(揷板)이 있다.
선미는 평형타를 장착하였는데, 개공타(開孔舵)로서 타엽에는 능형(菱形)으로 된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런 키는 조종할 때 힘이 적게 들고, 또한 키의 성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장점이 있다. 대형 광선은 선미돛대와 중간돛대가 모두 앞으로 기울었으며, 돛은 경범이다. 돛에 사용된 활대는 약간 굵고, 활대와 활대 사이의 거리는 약간 넓다. 돛의 변두리는 철사로 꿰맸다. 그리고 중소형 선박에는 모두 노와 장을 장치하였다.
광선의 역사는 아주 유구하다. 진나라 사람 배연이 쓴 『광주기(廣州記)』에서는 “광저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박건조를 업으로 하고 있으며 벌목하여 배와 노를 만들어 수운에 종사한다”고 적었다. 당 현종 개원년(開元年) 후 “광저우에서 해외로 가는 항로”는 중국 대외무역의 주요한 항로였고, 광저우 역시 그 당시 대외무역의 중요한 항구였다. 그 당시 광저우 항에는 중국의 많은 선박들이 정박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선박들도 많았다. 광선도 복선과 마찬가지로 무역선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선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전선으로 사용되었던 광선은 그 선형이 누선, 몽동, 두함, 주가, 해골 따위가 있다.

△ 새처럼 빠른 조선(鳥船) = 조선은 소형쾌속선이며, 사선, 복선, 광선과 함께 해선의 주요한 선형에 속한다. 주요 건조지는 저쟝(浙江) 연해지역이다. 청나라 『절강해운전안(浙江海運全案)』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선수가 좁고, 선폭이 넓으며, 선체가 길고 곧다. 돛대와 돛 그리고 양측에 두 개의 노가 있어 바람이 있을 때는 돛을 이용하고 바람이 없을 때는 노를 저어서 항행하는데 속력이 빠르고 민첩하다. 돛과 노를 이용하여 항행하는 모습이 마치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 조선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은 길이가 30여 미터, 너비 6~7.5미터, 흘수는 4~5미터이다.

조선
자료 : Luc Cuyvers, Setting Sail, p.107.


이상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것처럼, 사선, 복선, 광선, 조선은 중국의 대표적인 4대 해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4대 해선도 그 목적과 크기에 따라 범장이 달라지기 마련이어서 그 변종까지 친다면 중국 해선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중국 함대, 1421년 카리브까지 항해?

중국의 문물이나 제도를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데, 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은 중국 명대의 대항해자인 정화가 7회에 이르는 하서양(河西洋)을 첫 출항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개방으로 자신감을 획득한 중국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화의 기함인 보선(寶船)을 복원하여 항해를 시도하였다.
정화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러한 이벤트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퇴역장교가 펴낸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멘지스(Mezies)는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책을 통해 정화 함대의 일부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서해안을 항해하다 대서양을 횡단하여 카리브해까지 항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말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만하다. 왜냐하면 정화 함대보다 반 세기 뒤에 카리브해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위업은 빛이 바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멘지스의 주장은 세계를 놀라게 하여 BBC까지 나서서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들이 충분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 또한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정화
자료 : 중국의 대항해자 정화의 배와 항해, f.455.


정화 함대 보선, 축구장보다 길었다?

먼저 정화 함대의 일부가 카리브해까지 항해했다는 주장 외에 논란이 되었던 것은 정화의 기함인 보선의 크기 문제였다. 사료에는 정화의 보선이 길이 44장 4척, 너비 18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대로 한다면 보선은 축구장보다 긴 길이 134.5m(44장 x 3.03m + 4척 x 0.303m), 너비 54.5m(18장 x 3.03m)에 이르게 된다. 멘지스도 이 사료를 인용하여 보선이 “길이 150m, 폭 60미터로서 당시 세계 최대였다”고 적었는데, 서울대학교의 주경철 교수 또한 이 주장을 아무런 검증 없이 사실처럼 인용하고 있다(『대항해시대』, p.14).
그러나 보선이 크기를 신뢰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는 사료의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보선의 크기에 관해서는 정화 당대의 원사료가 모두 파기된 뒤, 후대에 라무등(羅懋登)이라는 작가가 쓴 『三寶太監下西洋記通俗演義』라는 다소 허황된 창작집에 기록된 길이 44장 4척, 너비 18장이라는 수치를 『明史』의 「정화전」 등의 사료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둘째는 목선으로서 150미터에 이르는 선박을 건조한다는 것이 현대의 조선공학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화 보선의 크기에 대해서는 중국 조선사가들조차도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대만 해양대학의 수밍양은 길이 74m, 너비 12.8m 정도로, 상해교통대학 교수였던 故 신웬어우 교수는 600톤 내지 800톤급으로, 중국 해군 공정학원의 탕즈바는 정화 보선을  길이 55.5m, 선폭 15.3m, 배수량 1500톤급으로 각각 축소해서 추정하였다. 현재 복원된 대다수의 정화 보선은 대체로 1000~1500톤 정도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 크기가 실제로 어땠는지는 현재 파악할 수 없지만, 15세기 초에 1000톤이 넘는 원양 항해선을 나무로 건조했고, 아프리카까지 항해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인들의 선박건조술과 항해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선
자료 : 石龍飛, <中國造船史>, f.5.

글= 김성준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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