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해양노마드 1 / 지중해의 무법자
고대의 바다에 펼쳐진 이동과 정주의 ‘길항’
인류의 출현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온 이동. 그 이동은 초원에서는 유목민의 말과 수레로, 바다에서는 페니키아인의 갤리선, 바이킹의 오세베르와 대항해시대의 범선을 타고 이어졌다. 이동하기 위해 정착했던 이들은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노략질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지배했다.
그 가운데 배라는 수단을 통해 해양을 누비며 세상을 지배한 사람들. 지중해와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나라의 근원을 이룬 그리스와 페니키아인들, 북구의 바이킹과 베네치아인들은 해양의 유목민 바로 ‘오션 노마드’다.
오션 노마드들이 쉼 없이 이동하면서 전파하며 나누고 개발한 것에는 돛과 키와 향신료, 나침반뿐만 아니라 경험과 지식과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다. 글자, 법, 지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관까지 모두 노마드들의 발명품이며 그들이 날라준 것들이다.
호머는 인간이 왜 끊임없는 여행을 하는지 설명하고 있으니 그 작품이 바로 ‘오디세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해 저문 수평선에 배를 띄운 오디세이와 바그다드의 신드바드도 나폴레옹만큼 의미 있는 역사의 주인공이지만 언제나 세계사의 변방에 밀려나 있었다. 이 오션 노마드 이야기, 정착민들의 이야기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SEA&은 새해부터 다룬다.
인간은 땅을 소유하면서 정착의 유혹에 빠진다. 승리와 정복이라는 땅의 절대적 개념에 고착된다. 그것이 바로 울타리치기이다. 결코 쉼이 없고, 빚이 탕감되지 않으며 종들이 풀려나지 못하고 모든 종류의 변화를 멈추어버린다. 그러나 바다에는 울타리가 없다. 바다는 변화무쌍한 상호소통, 경계허물기의 무대다.
‘오션 노마드’에는 고대 해양세력과 그리스 로마시대 지중해를 무대로 세력을 넓혀간 해적들, 사라센의 무법자와 북대서양을 종횡으로 누빈 바이킹, 신세계를 들었다 놓은 카리브해의 해적들, 인도양의 방랑자들과 중국의 해적들, 동북아의 왜구세력, 이슬람의 해상세력 바그다드의 상인, 신드바드와 바다의 실크로드의 중심 멜라카 한자의 동맹 등의 항로를 12번에 걸쳐 따라가 본다.
글 차례
1. 지중해의 첫 무법자
2. 로마가 물러간 바다
3. 북구의 낯선 얼굴
4. 르네상스와 동고동락
5. 신대륙의 주변인
6. 불멸의 해적 전설 온상
7. 노략질의 바다로 나간 어부들
8. 아시아의 바다를 내집 드나들 듯
9.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한 세력들
10. 지중해를 쥐락펴락한 상인들
11. 돈의 바다로 나온 ‘노스 페이스’
12. 에필로그
페니키아인 지중해의 패권 잡다
지중해는 태평양과 대서양과는 달리 내해다. 바다 주변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과 같은 육지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내해인 탓에 지중해는 이렇다 할 바람과 해류 수초가 없어 수중에선 산소와 먹이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육지에서 흘러드는 강물이 다량의 석회 성분을 함유해 어종 역시 다양하지 않다. 그나마 잡힌다 해도 별다른 맛이 없다. 자연히 어업보다는 항해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중해는 어로의 터전이 아니라 해상무역의 활동무대였고 주변 국가들은 해양국으로 발전했다.
이같은 지중해를 먼저 장악했던 민족은 뛰어난 항해술을 가졌던 페니키아 사람이었다. 이들은 이미 기원전 2700년에 무역을 위해 항해를 했고 기원전 1000년경 페니키아 사람들은 지중해에서 가장 뛰어난 항해술을 자랑하였다. 하늘의 해와 별을 보고 항해하는 천문 항해술을 개발, 밤에는 물론 며칠 이상씩 걸리는 장거리 항해도 가능케 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아프리카와 유럽 곳곳으로 이동해간다. 그리고 그곳 해안에 성벽과 대를 쌓고 정착하는 폴리스를 이룬다. 아프리카 끝 지역에 가서 세운 도시가 카르타고이고 스페인북단에 닿아서 도시를 건설한다. 성서에는 요나가 신탁을 거스르고 가려고 했던 ‘다시스’가 스페인 남단의 페니키아 식민지 타르테수스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바울이 기독교 전파를 위해 당시 로마제국의 무역로를 따라 서바나(스페인)로 가려고 많은 애를 쏟았다는 기록이 신약성서에도 나온다.
페니키아인들이 가는 곳엔 각지에서 흘러온 부가 넘쳐났다. 무역으로 성시를 이룬 곳에 약탈자들도 따라다니는 법. 때문에 이 시기에 바다의 불청객 약탈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북아프리카나 사르데냐, 그리스 섬의 그늘에서 페니키아 인들의 부를 노린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나타난다. 바다의 이동자 해적들의 출몰이다.
피라미드 보다 앞선 해적들
고대 지중해의 해적 이야기는 피라미드가 건설되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3천 년부터 무역이 있는 곳에 양념처럼 등장하였지만 그러나 기록에 등장하는 해적은 BC 14세기 해상무역과 이동의 중심 지중해를 공포로 몰아넣은 ‘루카’라는 이름의 해적들로 현재의 터키가 있는 해안 아나톨리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강도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아멘호텝 3세(BC 1390~1352) 시대부터 이집트의 지중해안 지역을 침략하였다. 아켄아텐(BC 1352~1336) 때 이르러 아나톨리아 출신 루카에 관한 언급이 등장한다. 현재 키프로 지역을 다스린 알라시아의 왕이 이집트 파라오에게 보낸 외교문서에는 “알라시아가 마치 이집트 해안을 약탈하는 ‘루카 족’을 사주하거나 도와주는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데 알라시아 자체도 ‘루카 족’의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
당시엔 이미 이집트에서 발명된 돛과 키를 장착, 높은 이동성을 가진 배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초기의 해적들은 노를 젓는 일종의 갤리선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에 10~25개의 노를 가진 갑판이 개방된 작은 배였다. 이에 비에 상인들의 배는 화물을 적재하기 위해 갑판이 넓은 배였기에 날렵한 해적선을 따돌릴 수 없었다. 해적들은 섬 뒤에 숨어 있다가 상선이 나타나면 날쌘 배를 이용하거나 더 작고 빠른 배로 소아시아를 항해하던 선박을 공격해 화물을 빼앗거나 사람들을 끌고 가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지중해를 휘젓고 다니면서 약탈과 노략질을 감행했고 이집트의 적인 히타이트 제국과도 나라로서 동맹을 맺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이들의 쇠퇴와 소멸은 이후 나타난 ‘해양민족’으로 알려진 또 다른 오션 노마드에게 동화된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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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람세스 3세(1184~1153) 때는 나일 강변으로 다가오는 해양민족의 함선을 향해 해안을 따라 사수들을 배치하고 화살을 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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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돌고래로 묘사된 해적들이호시탐탐 노리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고대 그리스의 배 |
노략의 행보 리뉴얼의 원천
고대 중근동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도로인 바다루트를 장악한 루카스 해적과 해양민족, 그리스 해적들은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을 이용, 각지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재창조하고 다시 세계로 전파하는 오션노마드였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해적은 아니라도 크게 보아서 해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지중해 세계는 번번이 해양노마드에 의해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들의 왕성한 이동과 침략과 노략의 행보는 고대중근동과 지중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해양민족과 해적들의 문화는 약탈과 파괴 그리고 재창조의 문화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약탈해야했고 파괴해야했다. 그것에 대항하는 도시들은 때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했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고대 지중해의 첫 유랑민들은 중근동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역동적으로 창조한 세력이었다.
SEA&강승철기자ds5bsn@busanilbo.com
도움말=이스라엘 연구소 이일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