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세평] 부산탑과 울산공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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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희 울산대 교수 공공정책연구소장

부산 하면 오륙도 형상의 서면로터리 '부산탑'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산탑은 부산이 1963년 1월 직할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여 그해 12월에 건립됐다. 당초에는 '국가재건비'로 명명되었지만, '부산 재건의 탑'으로 더 잘 알려졌다. 탑은 높이 23m로 컸고, 중간에는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 청동상이 자리 잡았으며, 탑의 상부에는 부산시 마크와 오륙도로 조형화했다. 전차가 아래로 지나는 아치형 탑과 탑 상부의 오륙도는 부산의 명물이 되어 부산시의 각종 간행물 표지나 포스터 등에 단골로 등장하였다.

잘살아 보자는 염원 담은 상징물

작은 모형은 가정집 대문 위에 장식물로도 걸렸고, 학생들의 모표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이같이 시민의 사랑을 받아오던 부산탑은 지난 1981년 지하철 건설공사로 철거돼 공중분해되었다. 남녀청동상은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설치되어 있지만 탑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탑의 건립 취지가 담긴 기념 비석도 박물관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원로 기업인인 협성해운 왕상은 회장과 부산일보 덕분에 지난해에야 햇빛을 보게 되었다. 부산진구청 앞마당과 북구 만덕로에 설치되어 있는 부산탑의 조잡한 축소 모형을 보면서 사라진 주탑이 더욱 그리워진다.

기념 비석 비문은 '이 탑은…새로이 출발한 직할시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자손만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온 시민의 정성으로 모아진 것이다'라고 건립취지를 말하고 있다. 또한 건립을 후원한 강석진, 구인회, 김지태, 이병철, 정태성 씨 등 14명의 부산상공회의소 기업인 명단도 들어 있다. 후원 기업인이었던 왕 회장은 "부산탑은 기업인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역사적 기념물"이라고 했다. 창업 1세대들의 불타는 기업가 정신과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절, 잘살아 보자는 꿈은 부산시민, 기업인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었다. 탑은 희망이었고 부산시민들의 자존심이었다. 부산탑은 평양예술학교 조각학과를 졸업하고 1·4후퇴 때 월남한 박칠성 씨가 제작했다. 피난시절 부산 군수기지사령부에서 화가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그의 본명은 박봉춘. 박 씨는 해운대에서 부두노동을 할 때 어머니를 생각하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다, '칠성'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칠갑산 입구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박 씨는 많은 탑을 제작하였는데, 울산공업탑도 그의 작품이다.

울산공업탑은 '울산공업센터기념 건립탑'이다. 공업탑은 울산이 공업지구로 지정되고 1962년 2월 공업센터 기공을 기념하여 1967년에 세워졌다. 울산공업탑과 부산탑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탑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두 탑은 철근 콘크리트의 재질로 백색을 띤 탑신, 남녀 청동상 횃불을 들고 있다. 수차례의 철거 논란도 함께 경험하였다. 공업탑은 울산이 우리나라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시발점이라는 징표인 반면, 부산탑은 부산이 수출한국의 명실상부한 전초기지임을 선언한 상징이다.

두 탑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징표이기도 하다. 부산탑에는 동명의 강석진, LG의 구인회, 제일제당의 이병철, 국제의 양정모, 성창의 정태성, 그리고 공업탑에는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효성의 조홍제, SK의 최종현, 삼양의 김연수 등 지금은 고인이 된 창업 1세대들의 성공과 실패, 좌절의 교훈과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곳에는 팔도강산에서 고향을 등지고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수많은 근로자의 애환과 땀이 배어 있다.

복원해 '지역 희망의 등대'로 다시 밝혀야

그동안 우리는 부산탑과 공업탑에 대한 대접이 형편 없었다. 부산은 우리나라 수출의 30%를 차지할 만큼 1960~70년대 경제발전을 주도하였다. 부산기업의 추락을 예견이라도 하듯 부산탑은 내버려졌고, 시들어가는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듯 공업탑은 녹슬어 갔다. 부산탑과 공업탑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어 기업가 정신과 장인정신의 횃불을 지피자. 다행히 울산시는 43년 묵은 탑을 정비, 보수하고 있다. 박 씨에게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부산탑의 명예 회복도 절실하다. 동명목재와 국제상사의 명예 회복도 있었다. 2013년은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서면 재개발에 맞춰 부산탑을 복원하자. 과거 부산경제의 호황을 재연하는 출발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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