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집비둘기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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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사람 가까이서/사람과 같이 사랑하고/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일부다. 비둘기는 극지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느 곳이나 흔한 새다. 총 289종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를 비롯해 5종이 서식한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으로 시작하는 가요도 있지만 무리 지어 생활하는 비둘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부부의 사랑 또는 군신의 신뢰를 상징하는 새로 여겼다. 조선시대 공이 많은 70세 이상 되는 벼슬아치에게 왕이 내렸던 지팡이의 손잡이에도 비둘기 장식을 새겼다. 이름이 구장(鳩杖)인 이유다.

서양에서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대홍수 당시 방주를 타고 피신한 노아가 홍수가 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보낸 데서 유래한다. 방향 감각과 귀소 본능이 뛰어나고 장거리 비행도 능해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서구(傳書鳩)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오늘날 비둘기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한 집비둘기는 분변이 문화재나 건물을 손상시키고 질병을 옮길 뿐 아니라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지난해 유해조수로 지정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시 조사에 따르면 12개 자치구 30곳에 2천800여 마리의 집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다. 조류퇴치제 살포 등으로 개체수 감소를 유도할 방침이란다. 시의 구절처럼 '사랑과 평화의 새'에서 '?i기는 새'가 된 비둘기가 새삼 애처롭다.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집비둘기가 없다면 도시의 풍광 역시 허전할 것 같다.

이명관 수석논설위원 l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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