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 40년 만에 '상처받은 사람들'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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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집 '낯선 시간 위에서'로 수상 소설가 정건영

제27회 요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건영 소설가를 지난 13일 서울 경복궁에서 만났다.

"원래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요. 지난달부터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의 입주작가가 된 뒤로 2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나온답니다." 집에 잠시 왔다가 원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경복궁에 들른 것인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큰 인연이라는 말이었다. 20년 지인으로 지내고 있다는 고창수 사진작가가 마침 동행하고 있었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서로 뒤섞이는 한 낮의 경복궁은 각국·각지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베트남 전쟁을 매개로 다국적 시대의 여러 풍경들을 드리우고 있는 그의 소설집 '낯선 시간 위에서'가 문득 떠올랐다.

이주여성 등 다채로운 시선으로 현실 조우
베트남·한국 관계 '전생의 인연'처럼 지속
요산의 정신 '귀감'… 현실에 더 천착할 것


-문학청년, 해병대 장교, 월남전 참전, 교사 생활, 늦깎이 소설가 등단…. 독특한 이력입니다.

△해방 5년 전에 태어나 벌써 나이 일흔에 닿았으니, 꽤 많이 살았지요? 학창시절은 문학청년의 꿈으로 가슴 부푼 시절이었습니다. 문재(文才)라는 소리도 제법 들었더랬습니다. 군대를 빨리 갔다오려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는데, 소속 부대가 그만 파월 부대로 결정되는 바람에 제 의지와 상관 없이 1966년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됐어요. 그 뒤 문학과는 담을 쌓았습니다. 그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만족하고 살았던 거지요. 60~70년대 저는 문단의 방관자였습니다. 다시 펜을 잡기까지 스무 해 가까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문학열정을 짓밟았다가 다시 피워올린 역설의 사건이 베트남 전쟁이군요.

△눈앞에서 목과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개울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시체의 악취로 눈조차 매울 지경이었습니다. 독한 전투 뒤의 전장은 잘려나간 손과 발들로 수북했습니다. 문학이 이런 참혹한 현실 앞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총구 앞에 죽어간 무고한 민간인들은 어떤 생이란 말인가. 회의감과 자괴감으로 절망했습니다. 다행히 세월의 풍화와 함께 상처는 차츰 옅어져 갔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문학이 맡아야 할 것은 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무언가에 있는 건 아닐까, 깨닫게 된 거지요. 참 이상하지 않나요. 전쟁으로 그렇게 앓았는데, 이젠 그걸로 상까지 받게 되다니.



-월남전 참전 40여 년 만에 그것을 담은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베트남을 내면 속에만 감춰 둔 채 꺼집어내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베트남을 세 차례 답사하면서 베트남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습다. 그제서야 터진 둑의 봇물처럼 글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소설집에 수록된 중·단편 6편은 베트남 참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상을 찾아 그들의 내면과 정서를 탐구한 결과물들입니다. '호아글레이·호아글레이'는 특히 뼈아픈 실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민간인 마을을 공격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던 한국군 장교와 그때 살아남았던 한 소녀가 40년 만에 노인이 돼 다시 만나는 눈물겨운 이야기지요.



-이미 베트남 전쟁을 다룬 소설들은 많습니다. 그것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베트남을 그린 당시의 소설들은 대중 영합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모든 걸 다 가라앉힌 뒤 베트남을 통해 인생을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수상작 소설집에서)베트남 전쟁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결 고리로 라이 따이한의 삶,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문제, 베트남에 정착한 한국인 이야기 등 다채로운 시선을 취했던 것도 그런 이유지요. 이미 세상은 다문화·다국적 시대가 아닙니까?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시대와 현실에 조응하는 저마다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베트남은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외세의 개입과 통치가 그렇고 남북전쟁이 그렇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상한 애착이 가는 나라입니다. 또 한국에는 지금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베트남과 우리의 관계는 마치 전생의 인연처럼 지속되는 것 같아요. 베트남인들은 이제 70% 이상이 종전 이후 태어난 이들입니다. 한국인에 대한 적의가 없어요. 놀랍게도 과거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체제 또한 무늬만 사회주의 같다는 인상입니다. 두 나라는 연결돼 있습니다. 이념을 넘어서 함께 손잡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요산문학상 수상 소식에 무척 놀랐다고 들었습니다.

△귀국 뒤 파월 군인들을 교육하는 임무를 맡았던 저는 군인들을 실어보내러 부산항에 3주에 한번씩 들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요산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늘 각별하게 품었던 정신의 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산과 요산이 이렇게 저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작품이 지역에서 읽히고 평가 받았다는 사실이 소중합니다. 존경하는 요산 선생의 치열한 정신을 따라 묵묵히 작가의 길을 걷겠습니다. 요즘 토지문학관에서 더욱 현실에 치열하게 천착하는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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