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군 의료전문기자의 生生 건강이야기] 의사 대신 기기가 수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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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병원 다빈치 로봇

동아대병원 비뇨기과 성경탁 교수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로봇수술에 성공한 로봇수술 권위자입니다. 성 교수는 2004년에는 첫 국내 환자를 싱가포르 제너럴 병원에 데려가 다빈치 로봇으로 전립선암 수술을 성공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05년 7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봇수술을 시행한 것보다 시기적으로 앞섭니다. 이런 유명세 때문에 성 교수는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지요.

지난 3월 개원한 해운대백병원에도 이달 말께 다빈치 로봇이 도입될 예정입니다. 다빈치 로봇 한 대 가격은 30억 원에 육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술비도 700만~1천400만 원 정도로 만만찮습니다.

부산 경남지역에서 고가의 수술비를 부담하면서 로봇수술을 받으려는 환자가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환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31대의 다빈치 로봇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본 8대, 타이완 8대, 싱가포르 8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아시아 전체에 60대가량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절반이 국내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무리하게 고가 장비를 들여오다 보니 굳이 안해도 되는 수술도 로봇으로 하도록 권하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학병원의 모 교수는 "최신장비가 없으면 환자가 안 오니까 할 수 없이 들여놓는데 국가적인 낭비다"라고 직언하기도 합니다.

다빈치 로봇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의 고가 의료장비가 과잉상태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건의료자원 배분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고가장비 도급률이 OECD 국가 평균의 2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담석제거 등에 사용되는 체외충격파쇄석기(ESWL)의 경우 우리나라가 인구 100만 명당 12.4대로 OECD 국가(평균 2.9대) 중 가장 높습니다. 유방촬영장치는 OECD 평균의 2.1배, 전산화단층촬영장치(CT)는 1.9배,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는 1.6배로 조사됐습니다. 방사선치료장비(RTE)만 OECD 평균을 밑돌았을 뿐입니다.

조기에 암을 진단하는 PET-CT의 경우도 대형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구입비만도 수십 억 원을 호가하고 검사비도 100만 원이 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앞다퉈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신대 복음병원은 1대로는 부족해 추가로 1대를 더 구입하기도 했지요.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낮은 보험수가가 자리잡고 있기에 병원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닙니다. 보험수가가 낮으니 병원들이 비급여 영역의 진료를 늘려 수익을 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필요하게 많이 도입되다 보니 당연히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령 CT의 경우 외국에서는 활용도가 80% 수준이면 우리는 50%도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 의료계에선 '우리나라처럼 최신 최첨단 기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다'는 농담을 자주 합니다. '의사가 수술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수술을 한다'는 비아냥도 들립니다. 보건당국이 장비구입과 효율적인 관리문제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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