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로지르기] 장기하, 혹은 우리 시대의 하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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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하 문학평론가

자동차 여행엔 로큰롤이 최고다. 텅 빈 고속도로라면 그 속도감을 강하고 짧은 비트에 실어서 좋고, 짜증나게 막히는 주말 도로에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뻗댈 뿐인 그 내용에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어 좋다. 
한 번은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카네이션이라도 달아드릴 양으로 나선 길에, 아뿔싸, 세상에 그렇게 효녀효자들이 많은지 몰랐다. 하여 듣고 있던 고상한 것을 얼른 빼고 '장기하와 얼굴들'을 넣었다.

그랬는데, 어쭈, 이건 완전 대박이다. 내가 별나게 즐거워하니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가 발매된 지 1년도 더 지난 앨범에 무슨 때늦은 환호냐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수록된 모든 곡들을 하나하나 쓰다듬듯 들으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얼굴에 신중현과 김창완, 조용필과 송골매, 노브레인과 윤도현 등을 떠올렸다. 

모든 록음악이 그렇듯, 세상의 온갖 찬란한 것들에 등을 돌린 채 도시 변두리 황량한 곳에 시시껄렁하게 서서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비웃는 품새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그 촌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한 효과음이라니….

조금 과장된 표현일진 몰라도 장기하의 곡들을 들으면서, 나는 전광석화처럼 유승환 감독의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를 떠올렸다. 
최근 UCC가 억압되어 왔던 대중들의 표현 욕구를 일거에 해소시켰듯, 10년 전의 유승환의 이 시도는 자본에 통제되어 왔던 영화라는 장르의 해방을 상징적으로 제시한 시대적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자각하지도 못한 일종의 문화변동이 갑자기 우리 앞에 도래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어리둥절함과 놀라움 같은 것이 감지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왕의 미적 잣대로는 촌스럽고 경박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 미적 자질들이 반영하는 대중들의 생래적 저급함에 대한 거대한 포용력은, '거지에게 자비를' 따위의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에게 정치권력을 던져 줘버리는 전복적인 태도 변화가 분명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기하의 이 앨범은 메이저 방송사의 연예프로를 타깃으로 한 기획물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그런 기획물들이 화려한 비주얼과 글로벌한 리듬에 목숨을 걸 때, 이들은 작은 공연장과 관객과의 직접적 대면을 추구하고 있고, 그래서 그의 노래엔 요동치는 삶의 구체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비록 그것이 빛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무시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생의 기갈 때문에 싸구려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셔대야 하고, 반지하방 습기 때문에 쩍쩍 달라붙는 방바닥이 나인지 내가 방바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도시의 일상적 삶일지라도 그것들은 허망한 사랑 타령으로 묻어버려야 할 것들이 아니라 그렇기에 오히려 더 분명하게 미적으로 재현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에 대한 응답이 바로 장기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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