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역사] 괴승 라스푸틴(1916.12.30)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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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술주정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연도는 명확치 않아 1869년 혹은 1872년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를 다녔으나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다. 18세 때 수도원에 잠시 들어가 신비주의 종파를 접한 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예언을 하고 병을 고쳐주며 명성을 쌓았다.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는 혈우병을 앓는 황태자가 있었다. 의사도 치료를 포기한 황태자를 라스푸틴이 치료함으로써 황제와 황후의 신임을 얻었다. 신기하게도 라스푸틴의 기도와 말 몇마디에 황태자의 출혈이 멈추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황후 알렉산드라는 숭배에 가까운 신뢰를 보냈다.

궁중을 마음대로 출입하게 된 라스푸틴은 점차 내정에 간섭하며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황제가 전선으로 나간 사이 황후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았다. 뇌물을 받아 사리사욕을 채우고 측근 인사를 중용했으며 반대파는 가차없이 해고했다. 황후를 통해 전장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작전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라스푸틴은 궁내에서는 겸손한 수도사처럼 행세했지만 궁 밖에서는 음탕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하며 수많은 여성들을 농락했다.

이쯤되면 반발 세력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황제의 조카사위인 유수포프 공이 몇몇 귀족들과 함께 라스푸틴을 제거하기로 모의하고 1916년 12월 30일 그를 자신의 저택으로 유인했다. 독이 든 빵과 포도주를 먹고도 라스푸틴이 끄떡없자 유수포프 일당은 총을 쏘고 은촛대로 머리를 내리친 후 밧줄로 몸을 묶어 네바강 속에 던져 넣었다. 사흘 뒤 시체는 참혹한 모습으로 건져올려졌다. 그리고 두 달 후 혁명이 일어나 왕조는 무너졌다. 정광용 기자 kyjeong@


△인도 국민회의파 창립대회(1885.12.28)

△한국인권운동협의회 결성(1977.12.29)

△한국-중국 무역협정 체결(1991.12.31)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1877.1.1)

△태조실록 편찬 시작(1410.1.2)

△작가 J. R. R. 톨킨 출생(18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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