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초대석 차 한잔] 최학림 라이프팀장이 만난 유청길·전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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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맛 비밀은 어머니 손으로 직접 빚은 누룩에 있죠"

막걸리 열풍 속에서 이번 주는 '막걸리 한 잔'이다. 또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만났다.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의 유청길(51) 대표와, 누룩을 만드는 그의 어머니 전남선(77) 할머니. 요즘 모주꾼들이 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정산성막걸리'의 맛이 기가 차다." 그 맛의 비결이 누룩이다. 젊은층은 "쿰쿰하다" "무거운 하드코어 막걸리"라며 싫어하는 그 냄새가 막걸리 맛의 비결이다. 싫어하는 것은 향의 겉면만 느끼기 때문. 유 대표가 말했다. "최근 와인 전문가인 소믈리에들이 '금정산성막걸리'의 맛을 두고 바디(body)감이 꽉 차 있으며 다른 막걸리와 달리 단만 신맛 감칠맛 등이 조화롭게 느껴진다고 평가했어요." 이 희한한 맛의 비밀이 '수제 누룩 막걸리'에 있다. 우리 전통 방식의 막걸리 '누룩 막걸리'가 돌아오고 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속주 1호'로 지정된 술이 '금정산성막걸리'다.

지금은 100% 국산 쌀 사용 

하루 750㎖ 최고 1만병 생산


27일 '금정산성토산주'의 술 도가는 분주했다. 일하는 사람도 몇배 늘고 술 생산량도 많이 늘었다. "하루 750ml들이 8천~1만병을 생산해요." 지난 봄엔 하루 1천300병을 생산했으니 6배 이상 늘었다.



-생산량을 갑자기 너무 많이 늘인 것은 아닌가요?

△"하루 1만5천병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문제는 없어요."

-막걸리 병에 누룩을 들고 있는 유 대표의 사진도 박았네요.

△"막걸리 병에 제조자 얼굴을 국내 처음으로 넣었어요.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죠."

그간 변한 것이 또 있다. '산성마을 막걸리'에서 '금정산성 막걸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전에 수입산 쌀을 썼는데 이제는 100% 국산쌀을 사용하고 있다. 대량으로 빚으면서 수제 누룩을 사용하는 곳도 이곳이 유일하다. '정신'이 깃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누룩 막걸리로 가는 길이다. "100% 국산쌀 사용은 몇몇 가양주를 제외한다면 우리밖에 없어요."

숙성실에 들어서니 향이 코를 찌른다. 오래 맡으면 취하는 술 익는 향이다. "막걸리는 누룩과 고두밥, 그리고 금정산의 지하 250m 암반수를 섞어 빚어요. 고두밥은 물을 넣지 않고 증기로만 찌는 밥이죠. 이걸 잘게 깬 누룩과 함께 물로 버무려 섞어놓으면 저절로 막걸리로 발효합니다. 물론 복잡한 중간 과정이 있어요. 고두밥 320kg, 누룩 80~90kg을 물과 함께 한번에 섞는데 그러면 720L 두 통에서 막걸리가 알코올 도수 16도로 익죠. 그걸 다시 물과 1대 1로 섞어 알코올 도수 8도로 낮춰 병에 넣습니다."

누룩을 빚는 전남선(77) 할머니는 양로당에 있었다.

-몇 년간 누룩을 빚었어요?

△"물금에서 시집을 왔는데 시어머니가 누룩을 빚으시더군요. 이 동네가 누룩을 빚어 살더라고, 그러니 저절로 배웠지. 62년이 됐네.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무서에서 단속을 나와 누룩을 빼앗아가고 벌금이다, 집행유예다, 별의별 짓을 다하고 별의별 경우를 다 당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단속이 심해 김해로 가서 2년간 누룩과 술을 빚었지요. 그런데 제 술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다시 산성마을로 돌아왔지요." 할머니의 이 말에 우리 술의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다. 산성 누룩의 역사는 300여년을 잡는다.

300년간 누룩의 종균은 산성마을의 자연조건에 적응하면서 막걸리에 적당한 종균으로 진화 발전해왔다는 것. 그래서 다른 곳에서 누룩을 빚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막걸리가 품고 있는 '총체성'이다. 그 총체성에 장소뿐 아니라 할머니의 누룩, 아들 유 사장의 술빚기, 아니 두 사람의 성품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람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이런 것이 한국의 막걸리다.

-누룩은 어떻게 빚어요?

△"먼저 빨간 통밀(외국산)을 기계에서 굵게 갈아 밀가루와 섞어 반죽을 하지요. '디딘다'고 하는데 헝겊을 씌운 반죽을 까만 신발을 신고 밟아서 도리뱅뱅한 모양을 만들어내요. 가장자리가 통통해 마치 피자 모양 같지요. 견학 와 맛있다며 술을 꼴딱꼴딱 마시는 서양사람들에게 '이 피자로 술을 만들었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발로 밟은 누룩과 기계로 찍어낸 누룩으로 각각 담은 술의 맛은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 기운이 들어간 것이 훨씬 구수하다. 그것이 희한하다. 누룩은 후끈한 누룩방에서 7일간 메주를 띄우듯이 띄운다. 누룩방을 여니 안경에 김이 서린다. 연탄화로가 보인다. "누룩방은 날마다 온도 조절을 해야 하는데 나는 온도가 몇도인지는 모르고 대신 얼굴만 갖다대면 느껴지는 기라. 내 얼굴이 온도계라. 누룩을 사흘 띄우면 김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냄새가 정말 구수한기라." 할머니의 누룩방은 3개로 일주일에 모두 900판의 누룩이 나온다. 이걸 모두 아들이 빚는 '금정산성막걸리'에 사용한다.

"불 갈아넣고 내가 힘듭니다." 지금은 할머니의 두 딸이 누룩 빚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 유 대표는 "어머니의 누룩 띄우는 기술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이런 것을 정부 차원에서 보존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눙쳤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금정산성막걸리'와 염소불고기를 앞에 두고 유 대표와 다시 마주앉았다. 염소불고기보다 막걸리가 더 달고 구수하다.

-막걸리가 도대체 뭡니까?

△"저는 밥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 농사 지으면서 막걸리 힘으로 일했잖아요. 막걸리에 영양가가 없으면 그게 가능했겠어요."

-막걸이에 대한 아픈 기억은?

△"중학교 때였지요. 어머니가 군용담요를 싸서 빚어놓은 막걸리 독이 방에 있는 거예요. 진짜로 은은하고 구수한 향이 흘러나와 코를 비트는 거예요. 홀찍홀짝, 반 독을 비웠지요. 깼는데 하루를 꼬박 자고 다음날 저녁이었어요. 아침인 줄 알고 가방을 들고 학교 가려고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웃는 거예요. 그날 아버지에게 밤새도록 두들겨 맞았지요. 아이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네요. 하하."

'금정산성토산주'에 최근 산성마을 출신의 김지수(32)씨가 부장으로 들어왔다. 프랑스에서 2004년부터 3년간 요리공부를 했으며 그 중 프랑스 보르도의 한 와이너리에서 1년간 와인을 공부했다.

유 대표는 "와인 못지않게 우리의 막걸리를 세계화시켜야 하지 않겠나"라며 "김 부장 같은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막걸리를 와인과 견주면?

△"누룩으로 발효를 시키면 술이 익을 때 달콤한 과일향이 나요. 사과향 딸기향 파인애플향…. 발효하면서 단맛이 나오는데 그게 신기하더군요. 술이 익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자꾸 당기는데 이 맛이 바로 손으로 빚은 어머니의 누룩에서 나오는 것이죠. 참 오묘한 맛이에요. 와인 못지 않죠." 2002년 부산 보건환경연구원이 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금정산성막걸리'에는 14가지의 아미노산이 들어 있으며 일반 막걸리보다 향균 능력이 더 뛰어나다. 누룩의 힘이다.

일반 막걸리는 배양한 종균을 고두밥에 뿌리는 식. 이를 '입국(入麴)'이라 한다. 종균을 뿌리는 대신 수제 누룩을 부수어 고두밥과 섞어 술을 빚으면 훨씬 더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함양용추미 햅쌀로 유기농막걸리를 1병에 5천원으로 냈는데 인기 폭발이었어요. 와인에 못지 않다는 반응이었어요. 서울 강남에서 1병에 2만원 주고 팔아도 되겠다는 거예요. 햅쌀유기농막걸리를 12월부터 서울의 3대 백화점에 매일 1천병을 공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숙성실의 막걸리 향은 취할 정도로 독하던데요.

△"발효 가스에 시력이 가는 경우가 많아요. 몸 바쳐 술을 빚는 거죠."

-산성마을 술에 얽힌 얘기는?

△"남녀가 따로 올라왔다가 산성막걸리를 마시고 손을 잡고 내려가 부부로 맺어진 경우도 있어요. 하하 농담 같죠."

-소원이 뭡니까?

△"산성마을이 술 익는 마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곳이 산성막걸리 특구가 되는 것입니다. 김치처럼 집집마다 제각기 제맛의 술을 담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고 기술이 더 개발되는 것입니다. 이대로 머물러서는 10~20년 안에 일본에 따라잡힐 수 있습니다. 수제 누룩 막걸리가 진짜 막걸리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술 기운이 오르고 인터뷰는 흥이 나서 재미있어졌다. "막걸리가 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또 물었다. 유 대표가 답했다. "선조들이 수백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그것이 과학입니다. 막걸리, 그것은 결국 사람이더군요." theos@ busan.com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유청길·전남선은 누구? 

수제 누룩 막걸리 지킴이


유청길 대표는 58년생 개띠로 산성마을 토박이다. 12대째 살고 있다. 첫 인상이 '막걸리 인상'을 푸근하게 풍긴다. "사람이 곧 막걸리"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남대 사범대를 나와 86년부터 몇년간 고교 일어교사를 했다. 14년 전에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의 사장을 맡았다. 이 유한회사는 산성마을 주민 144명이 각 2계좌(1계좌 액면가 7만원), 총 288계좌로 시작한 회사. 경북대 대학원 미생물학과를 다니는 딸은 막걸리를 빚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아버지가 5~6년간 밤잠을 못자고 고생한 것을 뻔히 알기 때문. 유 대표는 "금정산성막걸리 마니아들이 많아요. 꼭 초심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누룩 막걸리를 계속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유 대표의 어머니 전남선 할머니는 "누룩에서 술맛이 나온다. 참 고생 많이 했다. 누룩이 내 평생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곧 막걸리"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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