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눌러 쓴 情 가을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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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윤동주의 시 '편지' 중에서>

요즘 우표값이 얼마나 하는지 아십니까? 150원 정도 할 때까지 사 본 기억은 있는데 잘 모르시겠다고요? 하얀 편지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아본 건 또 언제였습니까?

'삭풍설한에 기체후 일향 만강 하옵신지…'로 운을 떼던 '부모님 전 상서', 쓰고 지우고 고쳐 쓰고 지우다 달뜬 마음을 곱게 물든 단풍잎에 대신 띄워 보내던 연애편지….

느리게 써지고 더디게 전달되는 편지. e-메일의 편리함에 밀리고 문자메시지의 속도감에 쫓겨난 편지는 빛바랜 편지지처럼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편지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우편물 중 육필 편지의 비중이 채 1%도 안된다고 합니다.

번거롭고 느리지만 그래서 편지는 더 아름답습니다.

편지를 받아들고 반가워 할 이를 떠올리며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고르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쓴 편지에는 애틋한 그리움과 따뜻한 정이 함께 배달됩니다. 향수를 뿌리고 낙엽을 끼운 편지,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이 전해집니다.

행여나 오늘은 올까 우편함을 뒤적거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배달부가 전해준 편지를 받아들면 세상의 누군가로부터 위안 받고 사랑받는다는 행복감에 젖어듭니다. 이 가을, 눈물 나게 그립고 소중한 이들에게 편지를 띄워보세요.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은 쌀쌀한 날씨에 움츠린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 줄 겁니다.

동해의 외떨어진 섬 독도에서, 눈덮인 지리산 장터목산장에서 오늘도 빨간 우체통은 사람들의 발길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글=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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