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률 160,000 대 1… 차라리 밤하늘 별을 딸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신인가수 공개 오디션장을 가다

"우와~ 웬 사람들이 이렇게…. 오늘 벡스코에서 무슨 콘서트 있어요?"

"가수 뽑는 오디션 한다나 봐요."

"도대체 몇 명이나 뽑는데 저렇게 몰려왔데요?"

"딱 한 명이래요."

엠넷미디어 '슈퍼스타 K' 예선 부산서만 2만5천 명 몰려
초등생부터 중년까지…'재미 삼아'부터 전국구 스타까지
전국서 100명 선발 합숙…서바이벌 통해 최후 1인 뽑아

지난 13일 오전 10시 부산 해운대 벡스코. 오전 8시부터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한 인파는 2시간 만에 벡스코 광장의 절반을 메웠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참가자들은 따가운 땡볕 아래 손부채질을 해가며 오디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 요원들이 질서 유지에 나섰고 진행자는 아예 마이크를 들고 고공 크레인 위로 올라섰다.

이날은 음악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엠넷미디어'가 신인가수를 발굴하기 위해 진행하는 대국민 공개 오디션 '슈퍼스타K'의 부산지역 2차 예선이 열리는 날. 전국 8개 도시에서 진행되는 지역 예선은 지난달 3일 인천을 시작으로 강릉, 제주, 대전, 대구, 광주를 거쳐 부산까지 오게 됐다.

최종 우승자 1명에게 가수 데뷔 기회와 함께 상금 1억원을 내건 이번 오디션에는 부산에서만 2만5천 명, 전국적으로 노래깨나 한다는 16만 명의 가수지망생이 지원했다. 16만 대 1. 말 그대로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것이다. 자동응답전화(ARS)와 홈페이지 UCC 동영상을 통해 진행된 1차 예선에서 이들 중 절반가량이 추려졌다. 부산지역에서는 1만3천여 명이 이날 열리는 2차 예선에 진출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던 오디션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2시간이 지난 낮 12시가 돼서야 간신히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접수순으로 수백 명 단위로 끊어 오디션장이 마련된 벡스코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나이 지긋한 중년들도 어색한 표정으로 간간이 섞여 있다. 필리핀에서 시집 왔다는 이주 여성도 눈에 띈다.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큰 소리로 목청을 가다듬는 '벼락치기 연습파', 손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는 '비주얼파',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하는 '될 대로 되라파'까지…. 참가자들의 면면만큼이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오디션은 휘장으로 둘러쳐 내부가 보이지 않는 10개의 부스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1인당 주어진 시간은 딱 2분. 자기소개부터 노래, 개인기까지 2분 안에 소화해야 한다. 무반주로 마이크 없이 생목소리로 불러야 한다.

"자, 시작하세요"

"고등학교 2학년이고요, 김나연입니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하겠습니다. 아… 아,직도 너~언 호, 혼잔거니…"

"네, 됐습니다."

1번으로 들어간 김양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우물거리다 채 20초를 채우지 못하고 부스를 나왔다. 김양은 "평소 노래좀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심사위원 앞에 서니까 너무 주눅이 들어서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며 시뻘게진 얼굴로 오디션장을 떠났다.

"내 모습 그대로 내 멋대로 할꺼야~"

오디션장을 쩌렁쩌렁 뒤흔드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참가자들 사이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대구에서 친구 6명과 오디션을 보러 부산에 내려왔다는 김은숙(21·여)씨는 대구 동성로가요제 본선에 진출하고 지상파 방송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한 실력파. 심사위원의 요청에 따라 '앙코르 송'으로 제니퍼 허드슨의 '원 나잇 온리'까지 부르고 나온 김씨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고 있다며 합격을 자신한 듯했다.

큼직한 링귀걸이에 짙은 스모키 화장, 레이스가 달린 검정 치마를 입은 초등생 김수아(11)양. 김양은 손담비도 뜨끔할 정도의 강렬한 눈빛으로 허리와 어깨를 흐느적거리며 '토요일 밤에' 안무를 끈적끈적하게 소화해 냈다. 화끈한 섹시 댄스는 2년전부터 재즈 댄스 학원에 다니면서 갈고 닦은 결과. 김양은 "손담비 같은 댄스 가수가 되고 싶다"며 "젊은 시절 가수를 꿈꿨던 엄마가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기대 반 재미 반'으로 오디션에 지원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록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중인 김하나(20·여)씨는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밴드 멤버들이 마음껏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있다"며 "상금 1억원을 타서 나만의 스튜디오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오렌지색 셔츠에 얼룩 무늬 바지,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한 무대 의상이 예사롭지 않은 중년 여성. 자신을 '부산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밤부대 스타'라고 소개했다. "음반도 취입했고 부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원했다"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운을 띄운 이 '지역구 스타'는 '행사 뛰러 가야한다'며 서둘러 사라졌다.

오디션도 보기 전에 '현장 스타'도 탄생했다. 빅뱅의 탑을 빼닮은 외모의 박우진(10)군은 '누나 부대'를 몰고 다니며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우진아, 빅뱅의 '거짓말'." 매니저인 엄마 강미홍(37)씨의 말이 떨어지자 랩을 흥얼거리며 '즉석 콘서트'를 연다. 탑의 의상을 그대로 따라 한 티셔츠와 스카프, 귀고리 등 무대의상은 강씨가 국제시장을 훑어서 마련한 것. 강씨는 "노래와 춤에 자질이 있어서 아이돌 스타로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디션 열기가 뜨거운 행사장 바깥은 참가자들이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가족들로 북적거린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흡사 수험장 바깥에서 기다리는 부모 심정 같다.

초등생 아들이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박선자(42·여)씨는 "애가 몇 일전부터 잠도 안자고 노래 연습한다고 난리여서 경험 한 번 해보라고 데려왔다"며 "이 길이 너무 힘든 걸 알기 때문에 사실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오디션을 주관한 엠넷미디어측은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참가자들의 실력도 빼어나고 세련된 매너나 넘치는 끼를 가진 지원자들이 많았다"며 "특정 가수의 모창을 하는 것처럼 지나친 기교로 덧칠된 목소리보다는 담백하고 깨끗하게 노래를 소화해낼 수 있는 특색있는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우선 선발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디션은 오후 9시가 돼서야 끝났다. 60여 명이 2차 예선을 통과했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지만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 첫발을 올려놓은 것뿐이다. 3차 예선을 통해 전국에서 100명의 지원자가 추려지고 합숙을 거쳐 최종 10명이 본선에 진출한다. 그리고 다시 혹독한 서바이벌 끝에 마지막에 웃는 것은 오직 한 명뿐이다. 

글=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