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순한 사람, 독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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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배짱으로 살아라' 이런 유의 처세술을 필자는 매우 싫어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염치없음을 용인해주는 온순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배짱 좋게 살아가는 것은 순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만일 배짱 좋은 자가 더 배짱 좋은 자를 만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개념은 이미 진화적 안정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모두 독한 사람 되면 혼란 극치

어떤 집단이 모두 순하디 순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모두 얌전하며, 그들끼리 서로 양보하는 착한 생활만을 한다면 그들 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별종의 인간이 돌연변이로 나타나 제 마음대로, 염치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마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 물건을 허락없이 집어가서 쓰는 것은 물론이고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남들의 소극적인 수근거림, 손가락질 정도에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데도 늠름하게 새치기를 하는 인간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주위 사람이 모두 순하다면 그러한 행동에 불편해 하겠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새치기는 최대의 이득을 보장하는 매우 유용한 처세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순하게 당하고만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끼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새치기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된다. 이윽고 새치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뻔뻔스러운 사람이 전체의 절반 정도에 이르면 순한 사람은 끝도 없는 새치기로 말미암아 아예 표를 사지도 못할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거의 모든 개체가 경쟁적으로 뻔뻔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독한 사람으로 변할 즈음이 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그간 자신만의 특기라고 생각한 새치기의 달인 앞에 더 뻔뻔스러운 인간이 다시 새치기를 한다면 아마도 그들 간에는 격투기에 준하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독한 사람들 간의 싸움은 한 쪽의 완전한 항복이나, 쌍방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로 더 이상 싸움이 진행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백주 대로변에서 폭력배 150명이 집단 난투극으로 수십 명이 크게 부상당한 사건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상당수는 체포되어 갇힌 몸이 될 것이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분들의 용맹무쌍한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이어지기에는 매우 불리하게 될 것이다.

공격적인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 간의 죽기살기식 싸움으로 인하여 그들은 자손을 퍼뜨릴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고 궁극에는 생태계에서 소수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유순한 종들은 가늘고 길게 생명을 연장하여 자손을 퍼뜨리는 데 성공하고, 이로 인하여 생태계는 또 다시 유순한 개체들로 점차 채워지게 된다.

더 독한 사람을 권하는 각박한 사회

사람을 비롯한 모든 개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유순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삶을 살 것인가를 이득의 최대화라는 관점에서 결정하게 된다. 이 두 전략을 가진 개체 수가 변하는 과정이 반복되다가, 궁극에는 그 어떤 식으로 살아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 차이가 없는 상태인 진화적 안정화된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독수리가 비둘기보다 적은 이유, 세상에 그래도 순하고 착한 사람이 많은 이유가 이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요즘 학교나 사회에서 더 독한 사람이 되기를 권하고 있어 걱정이다. 사람마다 가슴 속에 칼 하나씩을 품고 사는 각박한 시절이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특히나 이 이론을 한번 공부해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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