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04> 함양 삼정산
유서깊은 암자·사찰, 산세와 조화 이루는 곳
봄의 진객 진달래가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까지 짙어가는 봄의 걸음걸음에 길을 내주고 철쭉의 만개를 기다리는 지금 시기는 꽃산행을 잠시 쉬어도 좋을 듯하다. 절정을 넘어서는 봄 산자락은 온갖 야생화들로 어딜 가나 꽃산행을 피할 수 없으니 꽃산행을 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진달래 감상을 내년으로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 옳지만….
무성하게 자란 '산죽' 친구 삼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빨치산 은신처' 바위비트 역사의 아픔 전하는 듯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리산 자락을 찾아 웅석봉에 발을 담갔다가 지리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이왕 지리산 자락에 발을 들여놓은 참에 지리산 조망이 좋은 산 한 군데를 더 들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지리산 조망뿐만 아니라 5월 2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유서 깊은 암자들과 사찰이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곳을 찾을 수도 있다는 설명에 결정적으로 마음이 동했다.
어차피 봄을 즐기는 산행은 눈과 코와 마음이 맛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 꽃향기를 제외하고도 눈과 마음이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기에.
이렇게 해서 찾은 산이 경남 함양의 삼정산(해발 1,261m). 웅석봉이 지리산의 동쪽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조망처라면 삼정산은 지리산의 북서쪽에서 지리산의 능선을 모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조망처다. 이곳에서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뚜렷하게 바라다보면서 지리산 종주 경험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새로운 지리산 종주 도전을 꿈꿈 직하다.
산행 코스는 영원사 표지석~민박집~식수대~상무주암~문수암~헬기장~삼정산 정상~영원령~전망바위~도근점~영원사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 휴식 포함 6시간40분이 걸린다.
들머리는 삼정마을에서 백무동 자연휴양림 쪽으로 직진하다 눈에 띄는 영원사 간판과 표지석이 있는 빈터다. 빈터에서 출발해 5분쯤 뒤 다리를 건너면 삼정마을에서 양정마을로 걸어 들어오는 길과 마주친다. 이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삼정마을에서 하차할 경우 올라오는 길이다.
다리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10분가량 올라간 지점에 민박집이 위치해 있다. 5분 뒤 임도 앞으로 암봉이 보이고 다시 5분을 더 간 곳에 식수대와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방향을 표시하는 표지가 다 떨어져 나간 이 이정표 오른쪽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은 초입부터 퍽 가파르다. 6분 뒤 오른쪽에 '산죽비트'를 설명하는 루트 안내문이 설치돼 있는 것이 보인다. 지리산 자락마다 사람이 조금만 다니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난다는 이 산죽은 대나무와 잎이 비슷하게 생겼다. 큰 산죽은 사람 키 높이만큼 자라기 때문에 산죽 서식군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사람을 식별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무대로 유격 생활을 했던 빨치산들이 산죽을 은신처로 사용했다는 것이 안내문의 설명 내용이다. 자세히 보니 안내문 옆으로 산죽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다. 삼정산 등산 내내 이 산죽을 지겹도록 보게 될 줄 그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다시 5분 뒤 '바위비트' 안내문. 너덜겅의 연속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웅석봉과 닮은 산길은 빨치산들이 바위를 은신처로 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지리산 자락은 이렇게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다.
8분 뒤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샘물을 왼쪽으로 지나쳐 12분을 더 가면 주능선 안부에 다다른다. 이정표에는 상무주암까지 300m를 더 가야 한다고 표시돼 있다.
그 300m의 된비알을 12분 동안 올라가면 마침내 상무주암.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한 이곳을 들르기 전에 그대로 직진하면 문수암을 다녀올 수 있다. 왕복 2㎞로 꽤나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지만 큰 바위 아래 아담한 요사채가 있는 문수암에서 바라다 본 막힘없는 풍경은 눈이 번쩍 떠지는 개안의 경지랄까. 40분간 힘든 왕복길이 전혀 아깝지 않다.
다시 상무주암을 왼쪽으로 돌아 뒤편 산길을 올라 삼정산 정상을 향한다. 10분 뒤 헬기장이 나오고 다시 5분 뒤 삼정산 정상석이 보인다. '해발 1,181m'. 함양군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정상석으로 인해 삼정산이 제 높이를 못 찾고 있다. 최근 발행된 1대 2만5천 지도에는 삼정산의 해발 고도가 1,261m로 나와 있으니 하루 빨리 수정해야 할 듯하다.
다시 갔던 길을 15분가량 되돌아 내려와 이정표가 영원사를 가리키는 오른쪽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산죽의 향연이 시작된다. 아직까지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길이 뚜렷해 길옆으로만 산죽이 무성하다. 20분 뒤 영원령 갈림길. 왼쪽으로 내려가면 곧장 영원사로 향하는 길이고 직진하면 다른 능선길을 둘러 영원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체력이 충분히 남았으므로 능선길을 직진한다. 오르락내리락 능선길이 산죽과 함께 펼쳐진다. 조금씩 길이 옅어지면서 산죽이 더욱 무성해진다.
20분 뒤 전망바위. 뒤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이 깨끗하게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좋다. 다시 능선을 따라 20분. 도근점이 설치된 이 지점에는 달리 아무런 표지가 없으나 인근 봉우리가 다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해발(1,289m)을 자랑한다. 이곳을 영원령이라고 표시한 지도도 있으니 한 번쯤 영원령의 정확한 위치를 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하산을 위해서는 능선을 따라 15분가량 간 뒤에 왼쪽으로 길을 꺾어 내려가야 한다. 무성한 산죽이 자칫 길을 잃게 만들 수 있으니 길을 잘 더듬어 내려가야 한다. 익숙지 않은 등산객들을 위해 산행 팀은 거의 10m 간격으로 촘촘히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50분가량 산죽을 뚫고 내려가면 계곡 오른편으로 비교적 널따란 산길을 만날 수 있다. 18분 뒤 영원사에 다다른다.
영원사에서는 임도를 따라 12분가량 내려간 곳에서 이정표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산길을 따라 하산길을 잡는다. 25분 뒤 다시 임도와 마주치고 그대로 길을 따라 가면 산행 들머리에 이른다. 산행 문의: 레포츠부 051-461-4162,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